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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교사,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 간다"…대전 교사 추모 발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대전 초등학교 교사의 발인이 이뤄진 뒤에도 분향소에는 여전히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고인의 넋을 위로한 시민들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숨진 교사의 억울함 있다면 반드시 풀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5일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이틀 뒤인 7일 숨진 초등학교 교사 A씨가 근무하던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 전국에서 보낸 수백여 개의 조화가 놓여져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5일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이틀 뒤인 7일 숨진 초등학교 교사 A씨가 근무하던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 전국에서 보낸 수백여 개의 조화가 놓여져 있다. 신진호 기자

10일 오전 9시30분 대전시 유성구 한 초등학교 현관. 지난 7일 숨진 초등학교 교사 A씨를 추모하는 분향소가 설치돼 있었다. 정문부터 현관까지 양쪽에는 대전은 물론 전국에서 보낸 조화로 가득했다. 휴일 오전 이른 시간인데도 검은색 옷을 입은 시민 조문객이 찾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딸의 손을 잡고 온 한 여성은 국화꽃을 놓고 묵념을 하는 내내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딸은 그런 엄마의 어깨를 꼭 감쌌다. 이 여성은 자신을 교사로 소개했다. “동료 교사로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숨진 교사 근무 학교 2곳에 분향소 설치 

하루 전인 9일 오후 A씨의 발인이 이뤄졌지만, 그가 생전에 근무했던 B초등학교에 설치된 분향소는 15일까지 운영한다. 대전지역 초등학교 교사들이 하루에 2시간씩 돌아가며 분향소를 지키기로 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분향소를 지킨 20대 교사는 “많은 분이 오셔서 선배님을 위로해주고 있다”며 “앞으로는 이런 일이 더는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5일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이틀 뒤인 7일 숨진 초등학교 교사 A씨가 근무하던 대전의 한 초등학교 벽에 그를 추모하는 글을 쓴 메모지가 붙어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5일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이틀 뒤인 7일 숨진 초등학교 교사 A씨가 근무하던 대전의 한 초등학교 벽에 그를 추모하는 글을 쓴 메모지가 붙어 있다. 신진호 기자

분향소 맞은편 벽은 동료 교사와 제자, 시민들이 붙인 메모지로 가득했다. 고인을 위로하는 글부터 대전시교육청과 학교의 안일한 대응을 강하게 질타하는 내용까지 벽면을 가득 채웠다. 한 시민은 “선생님을 악성 민원(인으로 몰고), 여론 선동을 (해) 간접 살인을 저지른 당신(학부모)은 진심으로 사죄하고 경찰에 자수하라”고 촉구했다. 한 교사는 “고인이 생전이 시달렸던 교권 침해와 언어폭력, 정서 폭력에 침묵하고 인격말살 범죄를 저지를 학부모를 강경 조치하지 않은 교육감과 교장은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동료 교사들 "교육감, 교장 책임져라" 촉구 

B초등학교에서 1㎞쯤 떨어진 C초등학교에도 A씨를 추모하는 분향소가 마련됐다. 이 학교는 A씨가 B초등학교로 옮기기 전 근무하던 학교다. C초등학교 분향소는 11일 오후 3시까지 운영한다. 이곳에도 동료 교사와 시민들이 보낸 조화 수백여 개가 놓였다. A씨는 C초등학교에 근무하던 2019년 1학년 담임을 맡았을 당시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경찰은 A씨를 송치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지난 5일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이틀 뒤인 7일 숨진 초등학교 교사 A씨가 근무했던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 분향소가 설치돼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5일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이틀 뒤인 7일 숨진 초등학교 교사 A씨가 근무했던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 분향소가 설치돼 있다. 신진호 기자

A씨 유족과 동료 교사들은 “(선생님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면서 힘들어하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 대전교사노조에 따르면 A씨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뒤 해당 학부모와 학생은 “그가 학교를 떠날 때까지 마주치기 싫다”며 지속해서 민원을 제기했다. A씨는 최근 서울에서 발생한 서이초 교사 사건 이후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어했다고 한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과 교권 회복을 주장하며 매주 토요일 서울 집회에도 참석했다.

숨진 교사, 신체조직 기증하고 떠나 

하지만 그는 지난 5일 자신의 집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고, 이틀 만인 7일 숨을 거뒀다. A씨가 사망 신고를 받은 뒤 유족은 신체조직(피부)을 기증했다. 그의 신체조직은 긴급 피부이식이 필요한 화상 환자 등 100여 명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A씨 유가족은 평소 그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이틀 뒤인 7일 숨진 초등학교 교사 A씨에게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학부모가 운영하는 매장에 비난성 글을 쓴 메모지가 가득 붙어 있다.신진호 기자

지난 5일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이틀 뒤인 7일 숨진 초등학교 교사 A씨에게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학부모가 운영하는 매장에 비난성 글을 쓴 메모지가 가득 붙어 있다.신진호 기자

A씨에게 수년간 민원을 제기했던 학부모가 운영하던 분식집 매장 이름이 온라인에 알려졌다. 이후 해당 매장은 사실상 영업을 중단했다. 이날 오전 찾은 매장 유리창에는 시민들이 붙여 놓은 메모지로 가득했다. 상당수 A씨의 죽음을 애도하고 학부모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일부 시민은 달걀을 던져 놓기도 했다. 자녀와 함께 매장을 찾은 한 시민은 “선생님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나.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A씨의 사망 사건을 처리한 경찰은 A씨 유족이나 관계 기관에서 해당 학부모를 상대로 고소·고발을 할 경우 엄정하게 수사할 방침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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