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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김태희 뭔 소용"…택배 칼조차 남다른 이 남자의 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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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명품’ 완결판 낸 윤광준 작가

본지에 3차례에 걸쳐 연재했던 ‘생활명품’ 시리즈 완결판을 출간한 윤광준 작가. 뒤쪽에 그가 자주 사용하는 생활명품들이 진열돼 있다. 김상선 기자

본지에 3차례에 걸쳐 연재했던 ‘생활명품’ 시리즈 완결판을 출간한 윤광준 작가. 뒤쪽에 그가 자주 사용하는 생활명품들이 진열돼 있다. 김상선 기자

그는 택배 상자도 아무 칼로 뜯지 않는다. 해마처럼 앙증맞게 생겼지만 안전하고 강력한 스테인리스 재질의 독일제 전용 커터(사진1)를 쓴다. 갈고리 모양 칼날이 손에 닿지 않으면서도 걸리적거리는 건 모두 잘라지니, 쓸 때마다 묘한 쾌감을 느낀다. 맥주 한 모금도 그의 입술을 그냥 통과할 수 없다. 맥주와 입술 사이 유리잔의 미묘한 두께 차이에서 쾌감의 질을 논한다.

하루키 소설에 나올법한 디테일한 취향을 가진 이 남자는 ‘생활명품 성애자’ 윤광준이다. 베스트셀러 『잘 찍은 사진 한 장』 『심미안수업』등으로 유명한 ‘글 쓰는 사진가’이자, 오디오 평론을 비롯해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아트 워커’다.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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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2002년부터 시작한 ‘생활명품’ 시리즈 완결판을 냈다. 그간 본지에 3차례에 걸쳐 연재한 내용 중 101가지를 엄선한 『윤광준의 생활명품 101』(을유문화사)인데, 이제 같은 주제의 글은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여년 전 ‘생활명품’이라는 단어를 창시한 의도가 관철되었기 때문이란다.

“2002년 첫 책에 대해 ‘개인의 취향을 이야기할 수 있는 다양화 시대의 출발로 보인다’는 리뷰가 나왔어요. 한국인들이 더 높은 세상의 가치에 매몰되어 있던 80~90년대 취재차 일본을 드나들면서 그 이상함에 영향을 받았거든요. 서점에 가면 역사·철학 같은 거대담론보다 사물에 관한 이야기 같은 미시적 관점의 책이 많더군요. 그 다채로움이 너무 신선해서 이런 관심도 필요하다며 시작했는데, 이제 나보다 더 다양한 걸 경험한 사람이 많아졌으니까요.”

택배 상자도 아무 칼로 안 뜯어

사물 이야기에서 개인을 발견한 건가요.
“세상에 원래부터 있던 물건은 없거든요. 누군가 만든 건데, 그 출발은 조직과 나라가 아닌 개인이더라고요. 구글이나 실리콘밸리 신화들도 유능한 한 사람의 머리에서 시작됐고, 물건이야말로 개인의 삶을 드러내는 가장 정확한 도구잖아요. 그런데 물건의 의미와 가치를 무시하고들 살아가요. 나는 이 하찮아 보이는 일상의 용품이야말로 너무나 중요한 자기 삶의 구성품이며, 그래서 무엇보다 아름다워야 한다고 주장한 거죠.”
‘일상에 돈을 써야 한다’고 했지만, 보통 특별한 날을 위해 돈을 모으잖아요.
“특별한 날이 있다고 믿는 게 바보 같아요. 생일이 중요하면 60년을 살아도 60번 밖에 없잖아요. 특별한 날에 별다른 느낌을 받는 것도 아니죠. 추운 날 차 한잔의 온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하지, 저 멀리 김태희가 무슨 소용인가요.(웃음) 인간의 행복이란 구체적인 모습을 띠어야 하고, 상태가 아니라 반복의 힘이라는 생각이에요. 어쩌다 한번 즐거울 게 아니라 그런 순간을 계속 이어가는 게 중요하고, 그래서 가장 예쁜 것들을 눈앞에 둬야 한다는 거죠.”
신간 '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커버 사진 원본. [사진 윤광준]

신간 '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커버 사진 원본. [사진 윤광준]

‘생활명품’에 파묻혀 살며 커피를 내릴 때 전용 저울로 무게까지 재는 세련된 사람이지만, 그는 유년기를 강원도 횡성 감자밭에서 보냈다. “척박한 시골에서 어린 나이에도 도시를 선망했어요. 유일한 오락 도구가 책이었는데, 아버지가 박봉에 사 주신 12권짜리 백과사전을 ‘ㄱ’부터 ‘ㅎ’까지 다 읽으며 꿈을 꾸고 호기심을 키웠죠. 그게 내 백과사전적 삶을 이끈 원동력이 됐습니다.”

사진을 전공한 그는 월간 ‘마당’과 ‘객석’ 기자를 거쳐 웅진출판에서 70권짜리 『한국의 자연탐험』 전집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한창 잘 나갈 때 직장을 박차고 나와 세계를 유랑한 희한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미안한 얘기지만 어느 날 문득 선배들이 하나도 매력적이지 않아 보였어요. 이대로 열심히 하면 10년 뒤 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자 바로 다음날 사표를 냈죠. 아내가 ‘대책은 있냐’고 묻는데, 있을 리 없죠. 대책 세우다 보면 막상 나올 용기가 없어질까 봐 무조건 뛰쳐나온 거니까요. 그냥 나는 새로운 일을 하련다, 작가가 될 거다 큰소리 쳤죠.”

회사 밖은 매력적이던가요.
“현실은 암담했죠. 아무 소득이 없을 때 IMF까지 터져서 황당했어요. 내가 원한 그림이 아니었던 거죠. 생활전선에 뛰어든 아내가 다행히 장사를 잘하더군요. 그래서 기왕 10년만 뒤를 봐주면 반드시 10배로 갚겠다고 제안했더니, 10배에 눈이 멀었는지 고맙게도 잘 버텨줬어요. 약속 지켰냐고요? 20여권의 책을 낸 지금도 현재진행중입니다(웃음).”
월간 ‘마당’ 시절 함께 일한 황석영·유홍준 등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고요.
“음악·미술 등 문화를 전반적으로 다룬 잡지라 삶의 지향점을 알려준 교과서였죠. 그런데 작가로서 세운 원칙은 관념이 아니라 실체의 세계를 다루겠다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겠다는 거였어요. 그러다 보니 사진·물건·공간·오디오만 남았는데, 원칙을 지키며 살다 보니 진정성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기더군요. 믿기 힘들겠지만 내 친구 중에 사장, 회장이 많은데, 다 독자로서 만나 친구가 됐어요. 그들은 나처럼 살고 싶다며 다가왔지만, 나는 빅 픽처를 그리는 그들에게서 세상을 배웠죠.”

암담한 프리랜서 현실에 돌파구를 뚫어준 사람도 독자였다. 첫 저서 『소리의 황홀』로 시작된 태창철강 유재성 회장과의 인연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자라고 해서 만났는데, 말이 통한다 싶으셨나 봐요. 한국 남자들이 보통 생업과 무관한 문화예술에는 철벽을 치고 사는데, 나는 뭘 물어도 대꾸를 하니까. 그 뒤로 지금까지 나를 보통사람이 경험할 수 없는 세계로 데려다 준 게 그분이에요. 덕분에 가난한 내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세상의 아름다움의 실체를 알게 됐죠. ‘네가 가진 재주를 세상에 풀어내는 게 나한테 보답하는 것’이라면서 많은 사람을 후원하는 분이에요. 문화의 중요성을 아는 기업인의 행동은 그렇게 다르더군요.”

독 취재 중 망막박리로 실명 위기도

유 회장 덕에 아름다움에 탐닉하게 됐다면, 최근 『창조적 시선』을 함께 출간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과 10년간 독일에 바우하우스 취재를 다닌 경험은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바우하우스란 게 스티브 잡스 때문에 역으로 관심이 일어난 것이지, 오히려 독일인들은 소홀히 생각해서 자료가 많지 않더군요. 5년쯤 맨땅에 헤딩하고 나니 방향성이 보이고, 그 후 5년간 정말 중요한 공부를 했어요. 감히 엄두도 못 냈던 서구세계의 내면을 들여다봤달까.”

들여다보니 어땠나요.
“서구문명이 동양을 압도한 근본을 목도했어요. 우리가 유교적 관념에 갇혀 있던 시대에 그들은 현실을 다뤘죠. 바람은 왜 불고 배는 어떻게 뜨고, 그런 구체성이 현대 서구문명을 이뤘다고 봐요. 실체와 현실을 다룬다는 건 질문할 힘을 길러주니까요. 증명될 수 없는 세계를 논하는 관념보다 증명되어질 수 있는 세계에 대한 관심이 우월하다는 거죠. 불편하면 불편함의 내용이 뭔지 알려고 해야 하는데, 우린 그러지 않았기에 차이가 생긴 거예요. 그걸 알고 나니 오히려 열등감이 사라지더군요.”
독일 취재 중에 망막 박리로 실명 위기까지 겪었는데.
“좋은 것을 너무 많이 보니 누가 시샘을 하나, 이제 그만 탐하라는 건가 싶었죠. 내 삶의 모든 수단을 뺏길 뻔 했는데, 다행히 수술이 잘 됐어요. 장애는 남아서 남들과 세상을 좀 다르게 보고 있죠.”
큰일 겪고 다시 태어나셨네요.
“더 좋은 것을 향해 가고, 공유하는 역할을 더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살죠. 좋은 것에 대한 기대가 더 커져서 이제 눈이 아플 수도, 죽을 수도 없게 됐어요(웃음). 그런 위험과 사고가 남의 일인 줄 알지만, 평생 몇 번은 누구도 예외 없이 겪게 되더군요. 우리는 구체성을 띠고 살지 않으니 위험조차 추상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위험을 구체화시킬 때 대비가 됩니다. 막상 위기일 때 대비한 사람과 안한 사람의 차이는 굉장히 크거든요. 101가지 생활명품 중 하나인 차량용 탈출도구를 늘 차에 두는 이유죠.”

생활명품 모두 내돈내산, 대체불가한 건 ‘촉각 손목시계’

사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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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일산의 주택가에 있는 그의 작업실 ‘비원’엔 온갖 생활명품이 가득했다. ‘명품’이라고 꼭 비싼 게 아니다. 화분부터 잉크·이불·변기·공기청정기까지 장르는 버라이어티하지만, 공통점이라면 반짝 유행이 아니라 세월을 견디고 시대를 초월하는 물건들이라는 거다. 책에 실린 거의 모든 품목을 실물 영접할 수 있었는데, 전부 ‘내돈내산’이란다. “내가 좋은 걸 하지, 광고는 하지 않는다는 게 중요한 원칙이었으니까요. 광고가 필요한 사람들이 온갖 루트로 물건을 보냈지만 받아본 적 없어요. 받았다면 지금까지 못했겠죠.”

101항목에 순서가 없어 보여요.
“일부러 카테고리화 안 시켰어요. 용도로 묶는다면 상품학이 되지만, ‘이게 물건으로 보이니?’라는 얘기를 하는 거니까요. 이걸 통해 인간의 삶이 깊어지고,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이 이어진다는 생각을 전하고 싶었던 거예요.”
물건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도 많죠.
“알몸소동 이후 구입한 도어스토퍼가 가장 강렬하죠. 외국 호텔에서 홀랑 벗은 채로 무심코 나갔다가 방문이 철컥 잠겨 버려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한 뒤로 여행 필수품이 됐어요.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은 무심코 저지르기 쉬운 실수라, 모두가 필요를 공감할 거예요(웃음).”
대체불가능한 하나만 고른다면.
“눈이 아플 때 시간 확인 때문에 애를 먹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각 손목시계(사진2)를 발견했어요. 한국인 유학생이 친구에 대한 배려의 마음으로 만든 건데, 모든 물건은 만든 사람의 심성을 담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죠. 내가 좋다고 생각한 물건을 만든 사람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다 멋있는 사람들이더군요.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걸 만드는데, 뭔가 다른 지혜를 갖고 있더라는 거죠. 이런 사람들이 많으니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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