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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비 주는 통큰 형님 vs 허언증 사이비 기자…김만배 두 얼굴

중앙일보

입력

김만배의 허언증과 과시욕이 선명하게 보였다.”

지난 7일 공개된 ‘김만배-신학림 인터뷰’ 전문에 대해 김만배씨와 함께 일했던 A씨는 이렇게 말했다. A씨는 김씨의 허위 인터뷰 의혹 자체보다 김씨가 정관계 인사들을 “형”이라고 부르며 친분을 과시한 것에 주목했다.

녹음파일은 김씨가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에게 “내가 대통령하고도 가깝고”, “(최)순실 존재, 정윤회 존재를 다 알고 있었지”, “(최)재경이 형하고도 금방 통화했어”, “김태호(의원)도 내가 의형제잖아”라고 말하는 등 인맥 과시로 가득했다. A씨는 “김씨가 검사·정치인 등 유력인사의 이름을 거론하며 수시로 ‘00형도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며 ‘통큰 로비스트’로 기억했다.

 대장동 업자 김만배 씨가 지난 7일 0시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돼 서울구치소에서 나오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의왕=연합뉴스

대장동 업자 김만배 씨가 지난 7일 0시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돼 서울구치소에서 나오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의왕=연합뉴스

2021년 9월 대장동 개발 비리가 보도되며 ‘김만배’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했다. 이후 2년 동안 김씨는 대장동 의혹의 중심이었다. 2011년 대장동 사업에 뛰어든 김씨는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된 ‘이재명 성남시’를 상대로 대관(對官) 업무를 하는 ‘해결사’로 투입됐다. 2015년 화천대유자산관리를 만든 김씨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주도했다. 최근에는 2021년 ‘윤석열 대선 후보가 수사를 무마해줬다’는 허위 보도에도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대선 개입’을 시도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휴가비 주는 ‘통큰 형님’ vs “돈 빌려달라”…두 얼굴의 김만배

대장동 사업 동업자, 김씨의 오랜 지인들, 김씨를 수사한 검찰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김씨가 평소 돈과 관련해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증언했다.

언론사 법조팀장으로 일했던 김씨는 기자 후배들과 판·검사들에게 ‘통큰 형님’의 면모를 보였다. 2000년 중후반 김씨의 본가가 있던 경기 수원시 이목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김씨 집안은 토지 보상금을 두둑이 챙겼다고 한다. 김씨 집안은 보상금으로 아파트와 상가 등에 다시 투자했고, 김씨는 이후 재력가로 탈바꿈해 ‘밥 잘 사고, 술 사주는 선배’로 거듭났다.

김씨 회사 동료들은 “김씨는 늘 현금이 든 봉투를 준비하고 있었고, 후배들의 경조사뿐 아니라 휴가비도 챙겨줬다”고 기억했다. 대장동 사업을 함께 한 남욱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재판에서 “김씨한테 돈을 받은 검사가 많아서 검찰이 대장동 사건을 수사하지 못할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돈을 쓰는 만큼 돈에 대한 집착도 강했다. 김씨의 대장동 동업자들은 김씨가 늘 “돈이 없다. 돈 좀 빌려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했다. 또 로비를 해야 한다며 수시로 동업자들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남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법정에서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성남시장 재선에 도전한 이재명 대표의 선거 자금 명목으로 김씨에게 12억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최소 5억~6억원이 이 대표 측근들에게 전달됐다고도 했다.

김씨는 화천대유 관계사인 천화동인 5호 소유주인 정영학 회계사에게 ‘50억 클럽’을 언급하며 “남욱 뒤처리 다 해줬으니 곽상도·박영수 등에 대해서도 남욱이 돈을 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씨는 기자 시절이던 2007~2008년 제일저축은행 임원 유모씨가 강원랜드에서 도박을 한 사실을 취재했지만, 기사를 쓰지 않는 대가로 2억원을 뜯어내기도 했다. 이후 유씨가 대출 비리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자 수사 무마와 접대비 등을 이유로 8억원을 또 챙기는 등 약점을 활용해 수년에 걸쳐 금품을 뜯어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내가 언제 그런 말 했나”…불리하면 모르쇠
김씨의 이중성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김씨를 수사한 경험이 있는 검찰 관계자들은 “김씨가 진술할 때마다 매번 말을 바꿔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수사팀이 “왜 진술을 바꾸느냐”고 물으면 김씨는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나요?”라면서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한다. 또 수사팀이 김씨 진술의 모순점을 파고들거나 조금이라도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 갑자기 의자를 돌려 앉은 뒤 수사 검사가 교체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전략을 취하기도 했다.

김씨의 오락가락 진술은 법정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6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뇌물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씨는 2014년 남욱 변호사가 김 전 부원장에게 이 대표 성남시장 재선을 위해 선거 자금을 건넸다는 진술에 대해 “돈을 전달받았다거나 전달했다는 사실은 기억이 안 난다”면서도 “인정하고 책임지겠다”는 대답을 동시에 했다. 그러자 재판장이 “사실이 아닌 걸 얘기할 거면 거부권을 행사하라”며 진술 태도를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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