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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신도시 난항…광명 시흥 토지 보상부터 막히고, 하남 교산 첫 삽도 못 떠 [인플레 암초에 막힌 주택 공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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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6호 09면

지난 4일 오후 인천광역시 계양구 동양동 계양신도시 부지 일대. 오유진 기자

지난 4일 오후 인천광역시 계양구 동양동 계양신도시 부지 일대. 오유진 기자

SPECIAL REPORT

4일 오후, 인천시 계양구 동양동 일대는 신도시 공사 현장이라고 보긴 어려울 만큼 조용했다. 이 일대는 2018년 12월 3기 신도시로 지정된 인천 계양지구가 들어서는 곳이다. 지난해 11월 착공한 만큼 한창 공사 소음과 오가는 중장비로 붐빌 줄 알았으나 포클레인 한 대만이 유일하게 계양지구 예정지를 오가고 있었다. 계양지구 인근의 I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사전청약을 했던 2021년에나 화제가 됐지 지금은 신도시에 별 관심이 없다”며 “아마 사전청약한 사람들만 애간장이 타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인근의 S부동산중개업소 사장도 “공사 현장이면 떠들썩해야 정상인데 몇 달째 조용한 상태”라며 “계양지구보다 늦게 시작한 민간 재개발은 이미 입주가 끝났는데 신도시는 2030년에도 입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주택 공급의 또 다른 축인 수도권 3기 신도시 개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수도권 3기 신도시는 문재인 정부가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일자 임기 말 추진했던 개발 사업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신도시보다는 주택 수요가 많은 도심에서의 주택 공급을 강조했다. 그러나 대규모로 주택을 공급하기에는 신도시만한 게 없는 데다 문 정부에서 사업이 시작돼 윤석열 정부도 3기 신도시 공급 물량에 도심 재개발·재건축 물량을 더해 주택 공급 방안을 내놨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하지만 3기 신도시 개발 사업은 토지주와 시행사 간 마찰, 보상 지연 등으로 당초 계획보다 지연되고 있다. 2018년 12월 신도시로 지정된 하남 교산지구의 경우 올해 3월 토지보상이 완료됐지만 철거 사업권 문제를 두고 사업 시행사와 토지주 간 마찰이 생기면서 아직 착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개발 계획대로라면 교산지구는 이미 6월 착공했어야 한다. 3기 신도시 중 주택 수가 가장 많은 광명 시흥지구는 당초 예상했던 토지보상 일정이 2년 이상 지연돼 2026년에나 보상이 시작될 전망이다. 이에 박승원 광명시장과 임병택 시흥시장은 5일 광명시청 대회의실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3기 신도시에 대한 신속한 토지 보상과 특단의 주민 피해 구제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들은 “LH의 재정건전성 악화 등으로 사업 장기화는 기정사실이 됐고, 보상 지연으로 원주민의 재산상 손실과 정신적 피해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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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별로 사업 일정이 계속 미뤄지면서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도 매년 착공·입주 시기를 늦추고 있다. 문 정부 때인 2020년 8월 국토부는 3기 신도시 입주 시기를 2025~2026년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국토부가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토부는 3기 신도시 6곳의 입주 시기로 2026~2027년을 예상하고 있다. 3기 신도시 중 가장 사업 속도가 빠른 인천 계양지구만 해도 당초 2025년 입주가 목표였으나 지금은 2026년 하반기로 입주 목표가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예견된 수순이라고 입을 모은다.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던 문 정부가 집값이 폭등하자 부랴부랴 3기 신도시 개발에 착수한 때문이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는 “3기 신도시는 계획 발표 당시부터 개발 일정을 촉박하게 잡아 예정대로 주택이 공급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면서 “당시 시장에 주택을 대거 공급하겠다는 시그널을 주기 위해 공급 물량만 강조한 부분이 없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3기 신도시 자체가 집값이 급등하면서 졸속 시행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정부가 주택 공급 일정을 무리하게 앞당겨 입주를 시작하더라도 기반·편의시설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도시 건설의 주축인 LH의 철근 누락 사건이 확산하면서 3기 신도시 개발은 더욱 지연될 전망이다. LH는 올해 초 중점 추진 과제로 3기 신도시 토지보상과 착공을 꼽으며 3분기 이내에 3기 신도시 보상을 완료하고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7월 말 철근이 누락된 LH 아파트가 공개되고, 이후 LH가 전관 카르텔을 끊겠다며 신규 계약을 전면 중단하면서 신규 공사 발주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LH는 3기 신도시 전체 공급 물량 중 80.6%를 추진하고 있다. LH 관계자는 “현재 중단된 건 설계, 감리 용역 부문이기 때문에 신도시 착공에는 큰 영향이 없다”며 “착공이 늦어진다고 해서 실제 입주까지 미뤄진다는 것은 과도한 걱정”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LH가 올해 하반기 발주, 착공 예정이었던 공사는 계속 지연되고 있다. LH에 따르면 올해 7월 발주 예정이었던 남양주 왕숙2지구 2공구 조성공사는 9월 말~10월 초로 발주 계획이 연기됐다. LH 신도시계획처는 “10월 초까지 발주가 진행되면 계획된 내년 6월 착공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이행 절차 중단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착공이 미뤄져 (사업 일정이) 연달아 지연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 교수는 “속도가 가장 빠른 계양지구도 여전히 사업 초기 단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2~3년은 더 지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도시 접근성을 결정하는 광역교통개선대책도 줄줄이 미뤄지고 있다. 하남 교산의 경우 ‘감일지구~고골 간 도로신설’은 당초 2025년 개통이 목표였으나 2031년으로 6년가량 늦췄다. 고양 창릉은 중앙로~제2자유로 연결도로 연장이 2029년에나 마무리될 예정이다. 신도시가 계획대로 입주한다고 해도 상당기간 교통난을 감내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업이 더 지연된다면 3기 신도시는 윤 정부 임기 내에 입주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보통 아파트 청약 후 입주까지는 3년 정도가 걸린다. 그런데 국토부는 사전청약 물량의 본청약 시점을 2024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3기 신도시 아파트의 첫 입주는 빨라야 2027년이라는 얘기다. 윤 정부의 임기는 2027년 5월까지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사비 급등 등으로 민간의 주택 공급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신도시까지 지연되면 정부의 주택 공급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대중 서강대 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임기 내 270만 가구 공급’이라는 국정과제는 입주가 아니라 인허가 기준이기 때문에 국정과제 자체는 실현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3기 신도시 입주 때까지는 주택 공급 절벽에 시달리면서 주택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3기 신도시 입주가 지연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1만6000명이 넘는 사전청약 당첨자들이다. 국토부는 2021년 7월 인천 계양지구를 시작으로 남양주 왕숙, 부천 대장, 고양 창릉, 하남 교산지구에서 1만6111가구에 대한 사전청약을 실시했다. 문 정부는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른바 ‘패닉바잉’(공황 매수) 나타나자 본청약보다 1~2년 앞서 사전청약을 진행했다.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당시 평균 20대 1의 청약 경쟁률을 뚫었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분양가와 입주시기가 미정이다. 특히 입주 때까지 무주택 요건을 지켜야 해 기약 없이 전·월셋집을 떠돌아야 한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3기 신도시는 수도권 공급 물량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의지를 갖고 사업 속도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PF 대출 연장해주고 비금융 규제 풀어줄 듯

공급 축소로 인한 주택 수급을 걱정하는 목소리에 정부는 이달 중 공급 대책을 내놓겠다고 나섰다. 대통령실은 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건도 있고 하니 공급이 제대로 되겠느냐(는 우려가 있다)”며 “부동산 공급 활성화 방안을 9월 중에 마련해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5일 “9월 20~25일 사이에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금융 지원과 비금융 규제 완화를 병행해 공공과 민간 공급을 앞당길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건설 업계에서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강화나 대출 만기 연장 등 금융 지원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국토부도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과 협의를 통해 금융지원 방향과 범위를 논의하고 있다. 원 장관은 “대규모 사업장을 가진 일부 건설사의 경우 만기가 돌아오는 채무를 당장은 막을 수 있는데, 그 다음이 불확실하다”며 “추가 출자, 추가 담보 제공, 사업장 매각 등의 자구책을 당국과 조율 중인 업체가 있다”고 말했다. 주택 사업자의 현금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 상황 개선 없이 주택 금융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PF 대출 만기를 연장해도 공급이 늘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구조조정을 통해 주택 수요가 회복됐을 때 사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또한 “시장 상황이 좋아지면 민간 업체들은 알아서 공급량을 늘린다”며 “과도한 시장 개입보다는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카드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국토부는 공공 부문 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LH의 토지 제공, 발주, 사업진척 상황을 직접 챙겨 인허가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원 장관은 “현재 할 수 있는 것을 총동원해야 반전시킬 수 있다”며 “12월 정도에는 공급이나 인허가 물량은 어느 정도 목표를 맞추거나 넘길 수 있게 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완화나 실거주 의무 폐지 등 국회에 묶여있는 법 개정안의 빠른 통과도 촉구하고 있다. 원 장관은 “초과이익환수나 실거주 의무 등 거래를 중단시키는 (규제 완화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못 넘고 있는데 12월 정기국회까지는 될 것이라고 보지만 가급적 빨리 해보려고 한다”며 “또 토지공급 인허가를 당겨 공급에 속도를 내는 것도 앞당겨서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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