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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탑승률 0.3%뿐" 전장연 요구 '휠체어 고속버스' 올스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9년 10월 28일 휠체어 탑승설비를 갖춘 고속버스가 첫 시범운행을 시작했다. 연합뉴스

2019년 10월 28일 휠체어 탑승설비를 갖춘 고속버스가 첫 시범운행을 시작했다. 연합뉴스

 4년 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의 요구로 전동휠체어 탑승설비를 갖춘 고속버스 10대가 서울~부산 등 4개 노선에서 시범운행을 시작했지만, 현재는 모두 운영을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1년 8개월의 시범운행 기간 서울~부산 노선에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단 1명만 타는 등 4개 노선 전체의 탑승률이 0.3%로 극히 저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국토교통부와 고속·시외버스업계에 따르면 전동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리프트를 설치하고, 휠체어용 좌석 확보가 가능토록 개조한 고속버스 10대가 시범운행에 나선 건 지난 2019년 10월 28일이었다.

 금호·한화·동양·충남고속 등 10개 회사가 각각 1대씩을 개조해 참여했으며, 운행 노선은 서울~부산·서울~강릉·서울~전주·서울~당진 등 4개였다. 이 같은 휠체어 탑승 고속·시외버스 도입은 전장연 등 장애인 단체에서 강하게 요구해온 사안이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도 2017년 휠체어 탑승버스 도입을 권고했다. 이 때문에 시범운행 첫날엔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박경석 전장연 공동상임대표 등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이 나와 해당 버스를 타려는 장애인들과 악수를 하는 등 축하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2019년 10월 28일 전동 휠체어를 탄 시민이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한 고속버스에 탑승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2019년 10월 28일 전동 휠체어를 탄 시민이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한 고속버스에 탑승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2021년 6월까지 20개월간 진행된 시범운행 결과, 4개 노선의 휠체어 장애인 탑승률은 0.3%에 그쳤다. 승객 1000명당 3명에 불과한 수치로 서울~부산 노선은 해당 기간 동안 단 1명만 이용했다. 또 서울~강릉은 5명, 서울~전주 노선은 7명이 탑승했다.

 서울~당진 노선이 12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이것도 거의 두 달에 1명이 탄 수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시범운행이 종료된 뒤 9개 회사가 운행을 중단했고, 서울~당진 노선에만 1대가 운행을 계속했지만 이 역시 지난 8월 관련 설비 고장으로 멈춰섰다. 운행 재개 여부도 불투명하다.

 게다가 기존 버스를 개조해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한 탓에 고장이 잦았고, 이를 운용하기 위한 별도의 기사 교육도 필요해 운행회사 사이에선 불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국토부가 202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교통약자 장거리 이동지원 사업'에 고속·시외버스회사들이 단 한 곳도 지원하지 않아 관련 예산이 계속 불용처리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 사업은 시외·고속버스에 휠체어 탑승설비 설치 등 차량 개조비(대당 5000만원)와 터미널·휴게소 시설 개선비(개소당 5000만원)를 정부와 지자체가 각각 50%씩 나눠서 지원하는 내용이다.

현재 휠체어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고속,시외버스는 한 대도 없다. 뉴스1

현재 휠체어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고속,시외버스는 한 대도 없다. 뉴스1

 국토부는 2021년과 2022년 모두 3차례씩 공모를 진행했으나 지원회사가 없어 책정예산 5억원이 불용처리됐다. 올해도 4월과 6월에 관련 공고를 띄웠지만 역시 지원자가 전무했다. 최정민 국토부 생활교통복지과장은 “이대로라면 올해도 불용처리가 불가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순경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상무는 “휠체어 장애인이 탑승하면 일반버스는 5석, 우등버스는 3~4석 정도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며 “정부와 지자체에서 개조비만 지원할 뿐 운영 손실에 대한 보조가 없기 때문에 버스회사들이 참여를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김 상무는 또 “리프트가 고장 나면 부품이 없어서 제때 수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기존 버스의 옆을 잘라서 리프트를 설치했기 때문에 꼼꼼하게 마감을 했다고 해도 겨울엔 찬바람이 새어 들어와 춥다는 승객 불만도 많았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휠체어 탑승버스는 휠체어 장애인 2명이 탑승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주변 좌석을 앞뒤로 밀어서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개조돼 있다. 운행을 중단한 휠체어 탑승버스들은 해당 표를 팔지 않고, 일반버스처럼 운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장연 회원들이 지난 1월 서울 남부터미널 인근에서 시외버스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여합뉴스

전장연 회원들이 지난 1월 서울 남부터미널 인근에서 시외버스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여합뉴스

 상황이 이런데도 장애인단체는 휠체어 탑승 시외·고속버스의 확대와 저상버스 화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최정민 과장은 “시외·고속버스는 차량 아래쪽 화물칸에 여행 가방과 여러 종류의 짐을 실어야 하므로 저상버스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교통전문가는 “휠체어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고 중장거리 이동이 가능토록 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고속·시외버스터미널을 오가기도 쉽지 않고, 휴게소 이용 등 버스 운행 과정에도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최근 장애인 콜택시의 운행 범위를 인근 시·군과 인접 대도시까지 넓힌 점 등을 고려하면 장애인 콜택시 증차와 무료이용권 확대 지원 같은 맞춤형 서비스에 집중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며 “장거리 이동은 버스보다 탑승이 용이한 철도가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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