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원배의 시선

피프티피프티법 꼭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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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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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자 미국의 빌보드 핫100 차트가 6일(현지시간) 발표됐는데 K팝 3곡이 순위에 들었다. 방탄소년단 정국(28위)과 걸그룹 뉴진스(95위)의 곡이 포함됐으며 나머지 한 곡이 걸그룹 피프티피프티의 큐피드(48위)다. 큐피드는 24주간 핫100에 들었는데 K팝 가수 사상 3번째이며 걸그룹으론 역대 최장 기록이다.

 대형기획사도 힘든 일을 막 데뷔한 중소기획사 출신이 이뤘다고 해서 '중소돌의 기적'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예상 못 한 큰 성공은 분란을 낳고 말았다. 멤버들은 지난 6월 소속사인 어트랙트를 상대로 정산의 불투명과 건강권 침해 이유를 들어 전속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걸그룹 멤버 빼가기 논란 커져
기술 탈취 수준의 처벌은 과도
정치권 개입, 규제만 늘릴 수도

 아이돌 그룹은 소속사의 선투자에 의해 데뷔를 하는데 수익이 그동안 들어간 비용을 넘는 시점부터 정산이 이뤄진다. 대형기획사가 아닌 이상 정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데뷔 7개월여 만에 정산을 문제 삼아 가처분까지 낸 것이 이례적이라 여론도 피프티피프티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소속사는 가처분 소송을 당하기 전 외부 세력이 전속 계약 중인 멤버들을 중간에 빼가려 했다는 탬퍼링(tampering) 의혹을 제기했다. 돈을 투자해 어렵게 키운 그룹을 중간에 데려가면 소속사 입장에선 큰 손실이다.

미국 빌보트 메인차트 핫100에 진입한 4인조 걸그룹 피프티피프티 [연합뉴스]

미국 빌보트 메인차트 핫100에 진입한 4인조 걸그룹 피프티피프티 [연합뉴스]

 여권 일부에선 탬퍼링을 중소기업 기술 탈취로 보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기류가 있다고 한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중소 기획사를 보호하기 위한 탬퍼링 방지 법안, 이른바 피프티피프티법을 발의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취지는 공감한다. 업계 1위 기획사인 하이브도 방탄소년단의 성공 전에는 중소기획사에 불과했다. 중소기획사의 도전이 계속돼야 경쟁과 혁신이 이뤄지고 K팝 산업의 성공도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바로 법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보통 사업상 분쟁이 나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상대방을 형사 고소를 하고 수사기관이 개입하게 하여 상대방을 압박하는 것이 빈번하다. 이번 피프티피트티 분쟁에서도 관련자들이 수사기관에 서로를 고소했다. 법에 명시적 처벌 조항이 있으면 고소·고발이 늘어날 수 있다.

 하 의원 측도 탬퍼링을 기술 탈취와 같은 형태로 처벌하는 것에는 회의적이었다. 아이돌 가수가 가진 것이 과연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인가. 그보다는 매력과 재능일 것이다. 하 의원 측 관계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해 이달 중 법 개정안 발의를 목표로 하고 있다. 법에 표준전속계약서 사용에 대한 근거 조항을 넣고 중소기획사에 상담 지원을 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법이 아닌 표준전속계약서를 개정해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도 고려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유인촌 대통령실 문화체육특별보좌관도 연예계 단체를 만나 피프티피프티 분쟁과 관련한 의견을 들었다고 하니 정부·여당이 어떻게 대처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새로운 법 조항을 만들기보다는 기존 법 틀에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번 사건 자체가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필요하다면 기존의 표준전속계약서를 현실에 맞게 개정할 수는 있겠다. 이것도 한쪽으로 너무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의 섣부른 개입이 결과적으로 규제만 양산할 수도 있다. 연예계는 자율이 생명이 아닌가.

 아이돌 가수의 입장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즘 기업들은 MZ세대 직원의 근무 만족도를 높이는 데 힘을 쏟는다. 이들은 전 세대와는 다른 태도를 갖고 있다. 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냈을 때 보상을 해 달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직장 근로자와 프리랜서인 아이돌 가수는 성격이 다르지만 MZ세대의 정서는 공유한다고 본다. 기획사 입장에선 계약의 엄중함을 알리는 것과 함께 이들과 어떻게 소통하느냐도 주요한 과제가 됐다. 『공정한 보상』의 저자인 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는 단기 보상에 민감하다. 당장 보상을 하지 못하더라도 시스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납득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피프티피프티 멤버들이 낸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지만 항고를 하고 본안 소송을 진행할 움직임을 보였다. 소속사인 어트랙트도 1차 승리를 얻었지만 소속 걸그룹의 인기에 걸맞은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선 소속사와 걸그룹 모두 패자일 것이다. 소속사와 아이돌 가수는 한배를 탄 사람이다. 이익 배분은 기여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정신만은 피프티피프티(50대 50)를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