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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이 발의한 대형마트·방폐장 법안, 야당이 발목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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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지난 2월 대구의 한 마트 입구에 휴무를 알리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대구의 한 마트 입구에 휴무를 알리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이 발의했는데, 민주당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있다. 대형마트 영업 규제 완화를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과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장 설치를 위한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안의 현주소다. 산업계·학계 등은 2년 넘게 계류 중인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둔 만큼 연내 통과가 안 되면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7일 국회·정부 등에 따르면 2012년 만들어진 유통산업발전법은 전통시장·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의 야간·휴일 영업 등을 제한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시행 후 경제적 실효성과 e커머스에서 소외된 소비자의 불편함 같은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의 야간·휴일 온라인 배송 제한을 풀어주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2020년 7월), 민주당 고용진 의원(2021년 6월) 등이 대표발의했다.

두 법안 심사는 지난달 재개됐다. 여기엔 지난 6월 전국상인연합회·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체인스토어협회가 법 개정을 적극 지원하는 대신, 기금 조성 등으로 소상공인을 돕자는 원칙에 합의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온라인 중심의 유통 환경 변화에 대응해 대형마트 영업 규제를 합리화하는 대신 중소 유통업계의 배송 역량 등을 키워준다는 취지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규제학회장)는 “경쟁 자체를 막아버리는 현행법상 이익은 e커머스 업계만 가져갈 수밖에 없다. 온라인 배송이라도 풀어줘야 대형마트 숨통이 트이고, 배송망이 열악한 지방 소비자 등의 편의성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달 21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골목상권 피해 등을 내세워 같은 당 발의안에도 부정적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상생 협의에 참여한 (소상공인) 단체 대표성이 부족하다”라거나 “대형마트 온라인 배송 허용에 따른 영향 분석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고 지적하는 식이었다. 결국 이날 논의는 뚜렷한 결론 없이 마무리됐다.

원전 소재 지방 자치단체 행정협의회 소속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 신속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원전 소재 지방 자치단체 행정협의회 소속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 신속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고준위 특별법도 비슷한 상황이다. 2021년 9월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시작으로 국민의힘 김영식·이인선 의원(2022년 8월) 등 여야에서 3건을 나란히 발의했다. 사용후핵연료가 쌓이면서 ‘화장실 없는 집’ 우려가 커진 원전의 안전한 운영을 위해선 영구 방폐장 설치가 필수란 공감대가 깔렸다.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전국 원전 내 고준위 방폐물의 포화가 시작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부터 특별법 논의가 본격화됐다. 하지만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확대 기조에 대한 반발 등으로 법안 통과에 소극적이다. 특히 민주당 내에선 법안을 직접 발의한 김성환 의원이 나서 부정적 의견을 강하게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소위에서도 “원전을 지어 놓은 이상 고준위 영구 폐기장을 지어야 되지만, 이 정부가 원전을 계속 확대하려는 상황에서 이 법 처리하는 게 곤란하다는 얘기를 명확히 한 바 있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김 의원 발의안 그대로라도 일단 통과시키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핀란드·캐나다 등은 이미 방폐장 운영 준비에서 앞서가는데, 한국만 미래 세대에 숙제를 떠넘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윤종일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발의 후 2년이란 충분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국회가 숙제를 못 풀고 있다. 안전한 방폐물 처분을 위한 법안인데 정치적으로 바라보면 입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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