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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 같은 사람 있네" 안되던 日만화 실사판, 글로벌 1위 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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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실사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우솝(제이컵 로메로 깁슨), 나미(에밀리 러드), 루피(이냐키 고도이), 상디(태즈 스카일러), 조로(마켄유). [사진 넷플릭스]

'원피스' 실사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우솝(제이컵 로메로 깁슨), 나미(에밀리 러드), 루피(이냐키 고도이), 상디(태즈 스카일러), 조로(마켄유). [사진 넷플릭스]

“너, 내 동료가 돼라!”  

악마의 열매를 먹고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소년 루피가 전설의 보물 원피스(One Piece)를 찾아 해적왕이 되겠다며 동료들을 모아 대항해를 떠나는 해양 모험물 ‘원피스’.

한국서만 넷플릭스 TV 부문 5위로 뜨뜻미지근

지난달 31일 공개된 실사판 드라마 ‘원피스’가 넷플릭스 내 주간 시청 시간 1위를 차지했다. 지난달 28일부터 3일까지 주간 시청시간을 집계해 발표하는 ‘글로벌 톱10’에서 공개 나흘 만에 1억 4010시간 시청을 기록하며 TV(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조회 수는 1850만 뷰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원피스’ 시리즈는 93개 나라에서 10위권에 진입했고, 원작이 나온 일본을 비롯한 46개국에서는 1위다. 한국에서는 ‘마스크걸’ ‘경이로운 소문 2’ 등 국내 제작 드라마들과 경쟁해 5위에 머물렀다.

'원피스' 실사판 [사진 넷플릭스]

'원피스' 실사판 [사진 넷플릭스]

“실패의 역사에 도전”

일본 만화의 실사화 콘텐트로서는 이례적인 성과다.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2017), 드라마 '카우보이 비밥'(2021), 영화 '드래곤볼 에볼루션'(2009), 영화 '데스노트'(2017) 등 일본 만화의 실사화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영화 ‘강철의 연금술사’(2022)는 원작과 달리 주요 배역을 모두 일본인으로 캐스팅해 어설픈 분장으로 '코스프레'라는 혹평까지 받았다. 원작 팬과 새로운 관객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은 과제였다. 실사판의 퀄리티가 따르지 못할 경우 원작의 팬이 많다는 게 약보다는 독인 경우가 더 많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한층 더 혹독한 평가와 평점을 내놓기 때문이다.

'원피스' 원작 만화는 1997년부터 26년째 일본 만화 잡지 주간 소년챔프에 연재 중이다. 전 세계 누적 판매량 5억 2000만부를 넘기며 일본 만화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작품에 올랐다.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은 2021년 1000화를 달성했다. 극장판으로도 여러 차례 제작됐는데, 15번째 극장판인 '원피스 필름: 레드'는 '탑건: 매버릭'을 제치고 지난해 일본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개성 있는 주인공 5명이 저마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꾸며 우정과 의리로 똘똘 뭉쳐 대양으로 나아가는 해적 모험담이 만화 강국 일본 내에서뿐 아니라 프런티어 정신과 스타트업을 중시하는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며 팬덤을 형성한 결과다. 이런 '원피스'를 할리우드에서 실사화한다고 발표했을 때 기대보다는 우려의 소리가 더 컸다.

원작 만화가인 오다 에이치로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하면서 팬들의 우려를 잠재웠다. 그는 ‘원피스’ 실사판 공개 전인 지난달 29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양한 만화가 실사화됐지만 실패의 역사가 있었다. 일본의 어느 누구도 성공적인 사례를 꼽을 수 없었다. 나는 대본을 읽고, 제대로 각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감시견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실사로 리메이크될 수 있는 만화를 그리는 일은 의미 없다고 여겼지만 '소림축구'(2002)를 보니 만화 같은 세계가 생생히 구현된 느낌을 받아서 마음을 바꾸었다"고도 했다. "원작의 실사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들이 만화 읽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재현할 수 있을까 여부"라며 "루피 같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수많은 오디션 중 이냐키를 찾아내고 웃음이 났다. 내가 만화에 그린 바로 그 사람"이라고 돌아봤다.

'원피스' 실사판 [사진 넷플릭스]

'원피스' 실사판 [사진 넷플릭스]

원작 존중 ‘초월 캐스팅’

루피(이냐키 고도이ㆍ멕시코)를 중심으로 항해사 나미(에밀리 러드ㆍ미국), 검객 롤로노아 조로(마켄유ㆍ일본), 거짓말쟁이 우솝(제이컵 로메로 깁슨ㆍ자메이카), 요리사 상디(태즈 스카일러ㆍ스페인) 등 밀짚모자 해적단 5명은 다양한 출신지와 인종ㆍ성별로 구성됐는데, 과거 원작에 공개됐던 주인공들의 국적에 맞춘 결과이기도 하다. 누구나 알 법한 스타 없이도 원작 팬들과 새로운 시청자를 만족시킨 캐스팅으로 평가받는다. 해적왕 골. D. 로저가 공개처형장에서 원피스의 존재를 알리는 도입부부터, 오크통에 담긴 채 표류하던 주인공 루피가 해적 여선장 알비다의 눈에 띄는 등장 신, 해군 처형장에서 해적 사냥꾼 검객 롤로노아 조로와 팀을 결성하는 장면처럼 원작의 주요 대목들뿐 아니라 나미의 빨간 머리, 조로의 초록 머리, 코비의 분홍 머리, 챙 달린 해군 모자 같은 의상까지 충실하게 재현했다.

애니메이션 '원피스' [사진 도에이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원피스' [사진 도에이 애니메이션]

이번에 공개된 ‘시즌 1’ 8편은 원작의 초반인 ‘이스트 블루’에서의 모험을 다뤘다. 회당 1800만 달러(약 240억 원), 총 1억 4400만 달러(1920억원)를 투자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등지에서 촬영했다. ‘왕좌의 게임’ 시즌8(2019)의 경우 회당 제작비가 1500만 달러 정도였다. 살이 고무처럼 늘어나는 루피, 장검 세 자루를 휘두르는 조로의 액션, 푸른 바다에서 펼쳐지는 선상 생활 등을 실감 나게 그렸고,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과감하게 압축해 속도감을 살렸다. "너무 심각하지도, 그렇다고 그 유치함을 미안해하지도 않는 시리즈"(할리우드 리포트), "기존 팬들과 새로운 팬 모두 좋아할 재미있고 기발한 각색"(엠파이어 매거진), "아이 같은 환희가 담긴 사탕 색깔 과자"(버라이어티) 등의 호평도 이어진다. 초반 성과에 힘입어 '시즌 2' 제작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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