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고강도 수사를 이어간다면 2~3년 내로 국내에서 보이스피싱 범죄가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4일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서 만난 김호삼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 합동 수사단장은 국내 보이스피싱 범죄가 사라질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조심스럽게 자신감을 내비쳤다. 보이스피싱은 지난해 경찰청 집계 신고 건수 2만 1832건, 피해금액 5438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7월 합수단 출범식에서 이원석 검찰총장(당시 직무대리)은 “보이스피싱은 피해자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가는 악질적인 민생침해 범죄”라며 “합수단은 최말단의 인출책, 수거책, 명의 대여자, 중간단계의 콜센터 관리자, 배후에 숨은 조직수괴까지 발본색원하고 그 이익을 철저히 박탈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장은 당시 “한 도둑을 열 사람이 막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 만큼 여럿이 함께 힘을 모아야 16년간 해묵은 난제(2006년 첫 사례 보고)를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국민이 안심하고 안전하게 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총리실, 경찰, 국세청, 관세청, 금감원, 방통위, 검찰 등 정부 역량을 총동원해 협업한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경찰·국세청·관세청·금감원·방통위·출입국관리사무소 등에 소속된 56명이 손발을 맞춘 합수단은 출범 1년 만에 보이스피싱 피의자 284명을 입건하고, 국내외 총책 14명을 포함해 총 90명을 구속 기소했다. 김 단장의 지휘 아래 합수단은 이 총장의 의지를 상당부분 현실로 만든 셈이다.
조주빈 잡았던 그 법리, 보이스피싱에도 적용
김 단장은 범죄단체조직죄(형법 114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조직원을 일망타진하면서 형량(법정형: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을 높이고 범죄수익 환수를 극대화했다. 검찰은 2015년부터 보이스피싱 일당 처벌에 이 죄목을 활용하기 시작했지만 이같은 수사가 일반적으로 정착되진 않았었다. 다수의 구성원과 공동의 범죄 목적 외에도 최소한의 통솔체계와 조직의 계속성 등의 입증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성립 요건 때문에 거점을 중국 등 해외에 두고 SNS 메신저 등을 통해 점조직 형태로 움직이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적용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단장은 “범죄단체조직죄는 악질적인 조직 범죄에 가담한 이들의 형량을 높이고 범죄수익 환수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며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등을 이 법리를 활용해 처벌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2020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 시절 박사방을 “특정 목적으로 형성된 범죄조직”으로 의율하는데 성공했다. 주범 조주빈에게는 지난해 징역 42년 형이 확정됐다. 김 단장은 “온라인상에서 벌어진 조직범죄에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한 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합수단은 검거한 10개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했다.
지난해 9월 총책을 포함해 12명을 기소한 ‘광민파’ 사건은 대표적인 성과였다. 중국과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활동했던 광민파에게 당한 피해자는 435명에 피해액은 26억원에 달했다. 대출 알선을 명목으로 접근한 광민파에게 6개월간 38회에 걸쳐 2억8000만원을 뜯겼던 40대 여성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6월 서울동부지법은 광민파 총책에게 징역 20년 형을 선고했다.
“퇴직 교사 4510만원 돌려준 사건 기억에 남아”
김 단장은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5000만원을 뜯기고 낙담했던 71세 퇴직 교사에게 피해금액을 4년 만에 되찾아 돌려준 일을 “가장 보람있다고 생각하는 사건 중 하나”라고 꼽았다. 2019년 대만 국적의 현금 수거책이 돈을 들고 대만으로 도주했지만 법무부 국제형사과와 합수단은 끈질긴 사법 공조 노력 끝에 지난 6월 피해금액을 국내로 환수해 피해자에게 돌려줬다. 김 단장은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국내로 환수한 최초 사례”라고 설명했다. 김 단장은 또 “총책 등 주요 조직원들이 대부분 조선족 등 외국인이거나 외국에 체류 중인 경우가 많다”며 “해외 사법 당국에 피의자의 범죄 내용을 문서화해 전달해 자국에서 처벌받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덧붙였다.
범죄단체조직죄 활용도 합수단이 범죄수익 환수 성과를 높인 배경이 됐다. 범죄단체조직원으로 입증되면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조직 자금도 환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수단은 1년 간 대포통장 계좌 73개를 확보해 피해자가 누군지 모르는 돈 12억원을 몰수 보전했다.
김 단장은 성과의 동력으로 “공조”를 꼽았다. 그는 “합수단은 출범 한 달 만에 보이스피싱 총책을 현장 검거했다”며 “당시 총책이 마약 사범이면서 조직폭력배와도 얽혀 있었는데, 검찰과 경찰이 사전에 역할을 분담한 뒤 동시 출동해 효율적으로 검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5년 검사로 임관한 김 단장은 “그동안 수사 경험에 비춰봐도, 이번 팀처럼 체포·압수수색 성공률이 높은 적은 없었다”며 “체포·압수수색을 나가서 빈손으로 온 적이 거의 없을 만큼 여러 부처 간 공조가 잘 이뤄졌다”고 자평했다.
댓글알바부터 구매대행 부업까지 신종 수법 이어져
김 단장은 “과거 수사기관, 금융기관, 공공기관, 지인 등을 사칭하는 방식이 주류였지만 최근엔 해외 직구 결제인증이나 택배발송을 빙자하는 형태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구매대행 부업이나 쇼핑몰 댓글 알바 모집을 빙자한 수법도 만연하고 있다. 구매대행 부업이라고 피해자를 꾄 후에 ‘충전금’을 충전해야 한다며 돈을 편취하거나 11번가, G마켓 등 오픈 마켓을 사칭해 “물품을 사고 댓글 리뷰를 작성하면 수수료를 지급한다”고 꾀어 물품 값을 빼돌리는 식이다. 이 외에도 수사기관이 발신한 것처럼 꾸민 우편물을 우편함에 꽂아두거나, 택배 안내 메일인 척 악성 링크를 클릭하게 유도하는 식의 스미싱 사기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김 단장은 “2~3년간 집중 수사로 총책 엄벌 사례와 해외 공조의 노하우, 대국민 홍보 및 예방 활동이 누적돼 간다면 보이스피싱 피해범죄가 눈에 띄게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상반기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9084건 피해액은 205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만2401건과 3068억원에 비해 각각 33.2%p, 26.7%p 줄었다. 김 단장은 “개별 조직의 노력만으로는 총책을 잡기 힘들고 피해가 여전히 극심한 만큼 합수단은 당분간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