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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복룡의 신 영웅전

홍범도 흉상이 설 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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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2018년 육군사관학교에 건립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로 국론이 갈라졌다. 논문을 쓰거나 논쟁할 때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기도 어렵지만, 쉬운 문제를 어렵게 말하는 것은 더 난감하다. 이번 문제는 쉬운 것을 어렵게 대답하는 쪽이다. 질문은 간단하다. 지금 이 나라의 주적(主敵)은 일본인가, 북한인가.

그러면 육사의 건학 정신은 항일인가, 공산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것인가. 창학 정신으로 볼 때 육사는 ‘항일 군정(軍政) 대학’이 아니다. 미국 육사에서도 ‘미국 10대 패전사’ 과목에서 ‘1950년 한국의 겨울 전쟁’을 필수로 가르치는데, 지난 정권 동안에 한국 육사가 한국전쟁사를 필수과목에서 제외했을 때 창학 정신은 무너졌다. 그들이 설령 북침설을 믿는 무리였더라도 한국전쟁사는 필수과목으로 가르쳤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육사 교과목까지 바꾸나. 그 당시의 국방부 장관과 육군 참모총장, 육사 교장은 누구였나.

신영웅전

신영웅전

육사 교정에 위인 상을 세울 수는 있다. 육사 창립자나 그 학교 출신으로 역사의 사표가 될 만큼 장엄하게 전사한 용사라면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육사는 항일유적지가 아니며, 동상을 세운다 해도 지금 논란이 된 ‘그 자리’는 아니다. 본관을 가로막고 줄지어 서 있는 동상은 세계 어디에도 보기 어렵다. 그 다섯 분은 훌륭한 분들이니 육사박물관 회랑에 모시는 것으로 충분하며, 독립기념관에 모시는 것이 육사보다 하대(下待)가 될 것도 없다.

독립유공자 서훈(敍勳) 심사위원장으로 활동했던 필자의 경험에 비춰볼 때 홍범도 장군의 행적에는 없었으면 좋았을 흠결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공산주의 운동이 독립유공자로서 흠결은 아니지만, 없었던 일로 덮어둘 수도 없다. 그러니 품위 있는 장소로 이전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여기에서 덮자. 안 나설 사람은 나서지 말자. 그것이 국민화합의 길이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