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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폴리곤은 ‘스위스 군용칼’…암호화폐 침체는 일시적" [팩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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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래의 컴퓨팅 기술로 꼽히는 블록체인은 ‘트릴레마’(삼중 딜레마)에 빠져 있다. 블록체인의 이론적 강점인 탈중앙성, 보안성, 확장성(처리 속도)을 셋 다 만족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현실엔 없기 때문. 거래를 검증하는 노드(node,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가 많아지면 탈중앙성과 보안성은 높아지지만, 검증 시간이 늘어나 확장성이 떨어진다. 많은 블록체인 플랫폼들이 이 트릴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폴리곤랩스도 그렇다.

폴리곤랩스는 2018년 인도에서 설립된 블록체인 플랫폼 기업이다. 이더리움 기반의 메인넷(블록체인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플랫폼) 여럿을 운영한다. 보안성은 높지만 거래 처리 속도가 느린 이더리움의 문제를 개선하면서도 가스비(수수료)가 저렴한 솔루션들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2월 세쿼이아 캐피털 인디아, 소프트뱅크 비전펀드2, 타이거글로벌 등에서 4억5000만 달러(약 5900억원)를 투자 받을 당시 기업가치는 200억 달러(약 26조원). 이들이 발행하는 암호화폐 ‘매틱’(MATIC)은 5일 기준 시가총액 51억6000만달러(약 6조 8350억원)로, 전 세계 암호화폐 중 14위에 올라 있다.

마크 보이런 폴리곤랩스 CEO를 지난달 18일 경기도 판교 SK플래닛 사옥에서 만났다. 보이런 CEO는 웹3.0 생태계를 주도하려는 SK텔레콤과의 업무협약(MOU)을 위해 방한했다. 웹3.0이란 소수의 플랫폼에 정보와 권력이 집중되는 현재의 웹2.0을 넘어선 차세대 인터넷으로, 정보의 분산 저장과 보안성을 강점으로 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마크 보이런 폴리콘랩스 CEO가 지난달 18일 경기도 성남시 SK플래닛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마크 보이런 폴리콘랩스 CEO가 지난달 18일 경기도 성남시 SK플래닛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웹1.0, 웹2.0, 웹3.0이란

‧ 웹1.0: 웹에 올라온 자료를 읽고 검색하던 시기를 말한다. 이메일·웹사이트가 대표적인 예다.
‧ 웹2.0: 사용자가 정보를 직접 생산·공유하고, 쌍방향 소통도 가능하다. 정보의 소유권이 플랫폼에 있다.
‧ 웹3.0: 사용자가 자신의 데이터를 소유하고, 보상도 받을 수 있는 탈중앙화 인터넷을 뜻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근간을 이룬다.

나이키·구글이 선택한 블록체인 기업

폴리곤랩스는 폴리곤 포스(PoS), 폴리곤 zkEVM, 폴리곤 슈퍼넷 등 3가지 종류의 메인넷을 운영한다. 각 메인넷은 보안성, 속도, 가스비에 차이가 있다. 폴리곤랩스에 따르면 포스는 가스비가 가장 싸고 속도가 빠르다. zkEVM은 보안성이 가장 뛰어난 대신 느리고 비싸다. 슈퍼넷은 속도와 가스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 기업들이 많이 이용한다. 탈중앙성, 보안성, 확장성에서 강점이 있는 메인넷들을 따로 개발해 트릴레마 해소에 도전한 것이다.

보이런 CEO는 “폴리곤은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스위스 군용칼’과 같다”며 “사용자들에게 유연한 선택권을 준 게 폴리곤”이라고 말했다. 이어 “향후 ‘폴리곤 2.0’으로 따로 운영되고 있는 메인넷들을 통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폴리곤랩스는 이같은 유연성을 무기로 대중성을 확보해 ‘블록체인의 인터넷’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나이키, JP모건, 스타벅스, 구글 클라우드, 레딧 등 다양한 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맺은 배경이다. 나이키는 폴리곤 기반의 디지털 수집품 거래를 지원하는 웹3.0 플랫폼 ‘닷 스우시’를 만들었고, JP모건은 폴리곤 네트워크를 통해 첫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 거래를 하는 등 각 기업의 웹3.0 기반 신사업에 폴리곤의 네트쿼크를 이용했다. 기업들이 서로의 사례를 참고하며 생태계의 성장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폴리곤랩스의 설명. 보이런 CEO는 “폴리곤의 블록체인 인프라 구조가 가장 성숙하기에 수많은 기업들이 선택한 것”며 “한때 블록체인·암호화폐 시장이 과열됐을 때도 폴리곤은 안정적인 트랜잭션(거래)를 보장했다”고 강조했다.

SKT와 웹3.0 생태계 확장할 것

폴리곤랩스는 지난달 17일 SK텔레콤과 함께 웹 3.0 생태계 확장을 위해 협력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SKT는 지난해 공개한 대체불가능토큰(NFT) 거래소 ‘탑포트’와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인 웹3 지갑에서 폴리곤의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지원한다. 탑포트를 이용하는 NFT 제작자들이 폴리곤 메인넷에서 NFT를 거래할 수 있고, 탑포트에서 발행된 NFT는 폴리곤 내 다른 NFT 거래소에서 유통될 수도 있다. 폴리곤의 암호화폐 매틱을 탑포트 내 NFT 거래에 사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폴리곤랩스는 자회사인 폴리곤벤처스를 통해 SK텔레콤이 추천하는 유망 웹3.0 기업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기로 했다.

오세현 SK텔레콤 Web3 CO장(오른쪽)과 글로벌 블록체인 선도기업 폴리곤랩스의 마크 보이런 CEO가 지난달 17일 서울 을지로 소재 SK-T타워에서 Web3 생태계 협력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 SK텔레콤

오세현 SK텔레콤 Web3 CO장(오른쪽)과 글로벌 블록체인 선도기업 폴리곤랩스의 마크 보이런 CEO가 지난달 17일 서울 을지로 소재 SK-T타워에서 Web3 생태계 협력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 SK텔레콤

보이런 CEO는 “SKT는 이용자들의 편의성을 고려한 (웹3.0) 제품 설계를 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갖고 있어 앞으로의 협업을 기대한다”며 “함께 다양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겠다는 SKT의 의지와 웹 3.0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폴리곤랩스와 협업 중인 한국 기업들은 더 있다. 앞서 넥슨, 네오위즈, 카카오게임즈와도 손을 잡았다. 보이런 CEO는 “한국은 기술 선도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나라라, 웹3.0 시장에서 승산이 있다”며 “특히 대기업들이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기에, 이들이 보유한 많은 자본과 자원으로 모범적인 웹3.0 활용 사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웹3.0에 웹2.0 규제를 적용하려는 것이 문제”

웹3.0이 미래의 인터넷이라고는 하지만, 암호화폐 침체기에 각국의 규제 강화로 폴리곤랩스도 타격을 입었다. 다른 웹3 기업들처럼 올해 초 20% 인원(100여명)을 감축했다. 향후 대응 전략에 대해 보이런 CEO는 “시장 침체가 일시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폴리곤랩스는 웹3.0에서 우수하고 혁신적인 기술을 계속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

테라‧루나 사태, 정치권의 코인 투기 논란 등으로 국내 블록체인 시장의 분위기도 좋지는 않다. 이와 관련해 보이런 CEO는 “암호화폐가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암호화폐 외에도 블록체인에는 다양한 영역이 있다”며 “좋은 방향의 블록체인 활용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면 산업이 건설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펜실베니아주립대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인 그는 지난 7월 CEO에 취임했다. 그 전까진 최고법률책임자(CLO)를 맡았었다. 각국 정부의 규제에 대해 그는 “웹2.0과 웹3.0의 생태계는 완전히 다른 데 (각국 정부가) 같은 규제를 적용하려고 하는 건 문제”라며 “가령 금융 서비스만 해도 송금 과정에 중개 플랫폼이 끼는 웹2.0에선 중개자자를 규제해야 하지만, 웹3.0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노드가 거래를 검증하기 때문에 웹2.0식 규제가 필요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