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폭염을 멀리 보냈다. 곧 추석이 올 것이다. 오래전 추석엔 극장가가 붐볐다.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애정극, ‘OK목장의 결투’ 같은 서부극이 인기였다. 필자는 서부활극파였다. 악당이 총에 맞는 순간의 짜릿함이라니. 석양 속으로 사라지는 총잡이의 고독에 매료됐다. 불과 몇 초의 결투로 OK목장은 평정을 되찾는다. 소와 말이 사이좋게 풀을 뜯어 먹을 것이다.
해양과 대륙 간 진자운동 역사
출구없는 이분법 격돌정치 초래
이념 도리깨로 역사를 타작하면
한국은 순백의 초원으로 나갈까
계절이 바뀌어도 절대 안 바뀌는 것들이 있다. 머리와 가슴을 짓이기는 이분법 격돌정치. 국민도 진영화된 격투기에서 타협은 배신, 휴전은 굴종이다. 문패가 5년마다 바뀐다니 팬덤, 언론, SNS를 동원해 전투력을 증강한다. 출구 없는 목장의 혈투, 한국의 현실이 그렇게 됐다. 이름하여 ‘OC목장의 결투’.
목장 주역은 둘, O씨와 C씨. 해양(Ocean)세력과 연대한 O씨, 대륙(Continent)세력과 손잡은 C씨는 견원지간이다. 이리저리 몰려다닌 게 100년을 훌쩍 넘겼다. 토양은 그대로인데 O씨는 소를, C씨는 말을 키우라 한다. 지금은 요직마다 소의 워낭소리 요란하다. 몇 년 전 C씨는 북경과 평양에 직접 가서 친화감을 과시했다. 기회를 엿보던 O씨가 보란 듯 한미일 해양연대를 강화하자 C씨는 매국 친일정권이라 비난했다. OK목장, 아니 ‘OC목장’의 문패가 바뀔 때마다 승전가와 장송곡이 울린다.
C씨 천하 2020년 6월 파묘(破墓)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국립묘지 안장 자격 박탈하기. 늦을세라 어느 초짜 의원이 친일반민족 행위자 파묘법안을 제기했고, 대전현충원에서 ‘파묘대상자 묘역찾기’ 대회가 벌어졌다. 본격적 부관참시는 그때 시작됐다. 친일장군들은 그러려니 했는데 중령 묘석에 검은 천이 씌워졌다. 알고 보니 흥남철수작전의 주역 김득모 중령이었다. 그는 어선과 LST에 8만 명을 태워 남쪽으로 보냈다. 그해 백선엽장군의 유해는 대전현충원 문 앞에서 일부 광복회원들의 저지를 받았다.
C씨의 대륙 편향노선이 낳은 파란이 정율성과 홍범도 사태다. 팔로군행진곡, 조선인민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은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베이징대 연설에서 한·중 연대의 중심인물로 거론됐다. 이후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을 기렸고 2021년 8월 유해를 봉환했다. 육군사관학교에 흉상을 건립한 후속 조치였다. O씨 정권이 대선에 바빠 미뤘던 일을 기어이 들췄다. 항일투쟁은 좋으나 볼셰비키, 소련공산당 경력은 절대 불가라 했다. 적(일본)의 적(소련)은 ‘내 편’이었다는 C씨와, 그래도 한국군의 ‘뿌리’는 아니라는 O씨가 격돌 중이다. 이에 비하면, 정율성 문제는 비교적 간단하다. 음악가 정율성은 문학의 임화(林和)다. 카프맹원이자 월북작가 임화는 북한인민문학의 행동대장이었다. 누구도 임화의 흉상을 건립하자고 하지 않는다. 국가 정체성을 위협한다.
1980년대 노동문학의 기수였던 방현석 교수가 최근 『범도 1, 2』를 냈다(문학동네). 포수, 의병, 독립군장으로 활약한 홍범도 일대기다. 서로·북로군정서와 연대한 항일투쟁을 그렸고, 최재형, 이위종, 의형제 21인과의 의기와 조국애가 구비마다 서렸다. 소설은 봉오동전투에서 끝난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작가의 말’에서 필자는 잠시 멈췄다. 작가는 어느 날 대전현충원 홍범도 장군 유해 앞에 꿇어앉았는데 ‘숨을 쉬기 어려웠다’고 했다. ‘뇌수까지 일본인이 되고자 외쳤던 자들 묘지가 그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에게 절을 하면 친일파 장군들이 받을까 저어했다고 했다. 백선엽처럼 국군 창설에 기여했고 6·25 당시 북한군과 맞서 싸운 전선 지휘자들이 그곳에 묻혔다. 그러나 모두 황군(皇軍) 경력을 가졌으니 저어할 만도 했다. 봉오동전투 이후 카자흐스탄의 홍범도 행적에 전문가들도 엇갈리기는 한다. 그래도 항일투혼의 그 ‘순정함’으로 그들의 회개(悔改)를 해량할 수는 없었을까. 6·25 당시 친일장군들은 멸사봉국(滅私奉國) 포화 속에 뛰어들었다. 우리는 대의(大義)에 생명을 내준 적이 있었던가? 멋진 작품 후기에 OC목장의 바이러스가 스멀거렸던 이유다.
지식인, 일반시민이 이분법 증오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중인데, 정신을 번쩍 차린 사람이 없지는 않다. 요즘 ‘조국 관련 구설수’를 겪는 김훈 작가다.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2001년)을 받으면서 어눌한 어조로 말했다. “임화의 혼백이 수시로 들락거렸다…젊은 그가 시와 현실의 간극을 긍정하기란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언어와 현실의 간극을 살아내야 하는 비극적 숙명을 빙의한 작가다운 말이었다. 임화의 정치 행보를 논하는 게 아니다. 문학을 혁명과 동일시했던 작가의 치명적 오류를 말한 것이다. ‘너는 어느 쪽이냐’는 말들에 대한 김훈의 답은 깊었다. “거기에 찡겨 있는 삶과 말의 꼴을 보여주는 것.” O씨와 C씨는 ‘찡긴 꼴’을 눈뜨고 못본다. 격랑의 역사를 이념의 도리깨로 욕심껏 타작하면 그만이다.
O씨와 C씨는 대륙과 해양에 ‘찡긴’ 역사의 일란성 쌍생아다. 그래도 이만큼은 왔다. OC목장에 타오르는 상호혐오의 불길은 역사의 유산과 미지의 기회를 다 태워 먹을 것이다. 어리석은 광란의 춤은 언제 끝날까.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