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잼버리 파행으로 떠오른 지방자치 무용론
하인리히(Heinrich) 법칙이라는 게 있다. 1920년 하인리히가 7만5000여 건의 산업재해를 분석해서 1:29:300이라는 법칙을 만들었다. 큰 사고 하나가 날 때까지 몰라서 그렇지 작은 사고 29건이 이미 일어났으며, 사고 징후는 300번이나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새만금 잼버리 사태도 개최지 승인에서부터 7년이 흘러 대회 중 일부 대원들의 철수 등으로 파행을 맞을 때까지 여러 작은 사고와 징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고들을 무시한 결과는 참담하다. 잘 쌓아온 국가 이미지는 실추됐고, 국민들의 자존심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남은 것은 오직 정치권의 ‘네 탓, 남 탓’뿐이다. 어찌보면 새만금 잼버리 사고조차도 더 큰 사고의 징후에 불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행사의 전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방행정과 중앙정부의 난맥 함께 보여준 잼버리 대회
그동안 쌓아올린 한국 지방자치제 성과에 찬물 끼얹어
그러나 ‘지방자치 무용론’은 분열·혼란 부를 위험한 발상
문제 단체장 책임 묻는 적극적 납세자 의식과 행동 필요
잼버리 파행의 원인을 열거하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지방자치 제도의 구조적 문제, 그동안 누적된 지방행정의 잘못된 관행, 관료들의 보신주의와 무사안일주의,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할 중앙정부의 국정조정능력 결여, 공동위원회 및 조직위원회와 잼버리 스카우트 연맹 관계자들의 협력적 리더십 부재는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장밋빛 성과와 흥미 위주의 언론 보도는 국제행사 준비와 관리에 대한 언론의 기본 역할 부재라는 한계를 그대로 보여줬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프레잼버리의 생략으로 최종 점검 기회를 잃어버렸고, 이상기후로 인한 폭염과 태풍 등도 실패의 원인으로 평가된다.
결정타는 열악한 화장실 문제
무엇보다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야영장 내 화장실 문제가 국제사회가 잼버리를 실패로 평가하게 된 결정적 방아쇠(트리거) 역할을 하고 말았다. 이동식 화장실 설치에 투입된 예산이 129억원임에도 불구하고 잼버리 대원 121명당 한 개의 변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아무리 지역업체와의 독점계약상 문제가 있다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망신살이다. 세계화장실 시설과 문화의 효시가 된 수원시의 ‘공중화장실 설치 및 관리조례 제정’은 청주시의 ‘정보공개조례 제정’과 함께 부활한 한국지방자치의 가장 자랑스러운 대표 성과였다. 하지만 이번 잼버리 사태가 완전히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이렇게 처참한 결과를 놓고도 한심한 일들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부산에서 유치 총력을 기울이는 ‘2030 엑스포’와 충청권에서 준비 중인 ‘2027년 하계 세계대학경기대회(유니버시아드)’ 등 각 지자체의 국제행사가 차질없이 열릴 수 있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번 행사에 대한 치밀한 사후평가와 철저한 감사를 통해 잘못된 자치제도와 시스템, 관리역량과 관행, 낙후한 관료문화를 바로잡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저 몇사람 희생양으로 삼아 책임을 묻는 데 그친다면 유사한 사고들은 또다시 되풀이될 것이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팩트를 중심으로 과실을 정확히 규명해야 한다. 여론조사를 통해 그 책임이 중앙정부가 몇 %이고 지방정부는 몇 %인지를 따지거나, 책임 소재를 놓고 연령별·지역별·이념별 인식 조사를 한다든가 하는 일은 정쟁만 부추길 뿐이다. 문제 진단도 제대로 할 수 없고 대안도 찾지 못하는 부질없는 일이다.
중앙정부 역할 강화는 오산일 뿐
무엇보다 위험한 일은 겨우 자리잡아가는 지방자치의 싹을 자르는 행위다. 현재 일부 중앙 언론 및 부처를 중심으로 새만금 잼버리 파행의 주범을 지방자치의 무능과 타락으로 몰아 ‘지방자치 무용론’ 내지 ‘축소론’까지 들먹이는 분위기마저 보인다. 여기에 지방자치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이번 일을 계기로 중앙집권적 지휘·통제 체제로 돌아가 중앙정부 역할을 더 강화하는 쪽으로 국정운영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큰 오산이다. 중앙정부가 아무리 유능하다 해도 인구 5000만명이 넘고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이며, 한해 예산이 600조 원이 넘는 대한민국을 중앙정부 단독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앙정부에 권력이 다시 모이면 당연히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하는 것이 만고의 진리이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가 중단되거나 축소되면 모처럼 싹틔운 국민주권 사상과 지역주인 의식은 사그라들고 만다. 중앙 정치의 극심한 분열과 혼란은 그대로 지방으로 전이될 것이다. 그 결과는 민주주의 퇴행과 지방 경쟁력 상실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국민과 주민이 지난 30여년 지방자치 경험을 통해 쌓아온 민주와 자치 의식을 포기하긴 결코 쉽지 않다. 지방자치의 후퇴는 오히려 상당한 반발과 저항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우리가 가야할 길,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우선 정상궤도를 이탈해서 헤매는 지방자치의 제도와 시스템이 올바른 길을 찾도록 전방위적인 자치 개혁이 필요하다. 지방자치의 기본원리는 자율성이지만, 주어진 권한만큼 책임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권한과 책임의 주체는 일원화해야 한다. 이 원리는 자치경찰제도와 교육자치제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권한과 책임 분산된 지방자치 시스템
이태원 참사와 청주 오송지하도 참사 등 대형 재해·재난, 묻지마 폭력·살인 등으로 지역 안전과 치안이 구멍난 것은 자치경찰제도의 결함이 큰 원인이다. 교사 폭행으로 교실 붕괴 위기를 맞은 배경에도 교육감 직선제를 비롯한 기형적인 교육자치제도가 자리잡고 있다. 지방행정, 지역치안 및 소방, 지방교육이 지방자치라는 큰 틀 속에서 서로 연계되지 않은 채 권한과 책임이 분산되어 있으니 제대로 시스템이 작동할 수 없다. 결국 지역의 문제를 지방 중심, 주민 중심, 현장 중심으로 풀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더 큰 정치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오랫동안 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온 정당정치가 21세기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자국 국민들로부터 크게 불신받고 있는 것이 정치 선진국들의 공통적 현상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국민이 직접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런 환경에서 대의제의 핵심 기제인 정당정치와 지방자치제가 직접 참정제와 조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포퓰리즘 정치와 팬덤 정치, 카르텔 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반지성적 확증편향 현상마저 일반화된 현실에서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찾기조차 쉽지 않다.
문제해결의 첫 출발은 우선 윤석열 정부의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컨트롤타워인 ‘지방시대위원회’의 역할에서 찾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전국 어디서나 잘사는 지방시대’라는 국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0개의 국정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지방분권 강화, 중앙과 지방의 협력, 자치단체 기관구성의 다양화, 자치경찰권 강화, 교육자치제 개선, 주민자치회 정착 등이 그것이다. 이들 과제의 실천을 통해 현 지방자치 제도와 관행을 개혁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골든 타임을 잃게 돼 지방이 주도하는 균형 발전은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지방시대위원회의 역할이 중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에 실망한 국민과 지역주민의 관심과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돈이 들더라도 불가피하게 하는 제도가 아니다. 세금부담을 최소화하되 더 많고, 더 좋고, 더 빠른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해서 주민의 선택과 지지를 받아야만 지방자치의 의미가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그리고 인근 지자체 간 연대와 협력이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결과를 못 내는 단체장과 지자체는 응분의 법적·정치적·재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단체장이 주민 직선으로 선출됐다 해서 지방자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단체장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도 아니다. 주민들도 방만하고 무책임한 행정, 단체장 및 관료들의 비리와 부패로 초래된 손해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과 함께 국고 환수를 요구하는 적극적 납세자 의식과 행동으로 무장해야 한다.
요컨대, 이번 새만금 잼버리 파행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각 지자체는 자치제도와 역량을 일신해야 한다. 중앙정부 역시 지방시대위원회를 통해 분권 및 지역균형발전 의지를 가시적 성과로 보여줘야 한다. 국민과 지역주민 역시 지방자치 개혁의 큰 물줄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지방자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현명한 판단과 건전한 비판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지방자치는 어렵고 험한 길이지만, 대한민국이 자유민주 체제를 재정립하기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지역균형발전사업 평가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