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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준호의 사이언스&

한국 인공태양 KSTAR, ‘1억도 300초’ 위해 업그레이드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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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핵융합에너지연구원 현지 르포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

무한청정 에너지를 꿈꾸는 ‘한국의 인공태양’ 케이스타(KSTAR)가 도약을 위한 변신에 한창이다. 태양 온도의 7배, 섭씨 1억도의 플라스마를 품을 핵심장치 토카막이 지난 3월부터 텅스텐 타일로 ‘속옷’을 교체 중이다. 정확히는 ‘텅스텐 디버터(Tungsten Divertor)’라 불리는 이 부품은 KSTAR의 최종 목표인 ‘1억도 300초 유지’를 위한 필수 장치다. 핵융합발전 상용화에 성공하려면 핵융합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1억도의 플라스마를 300초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핵융합로 플라스마의 온도는 태양보다 훨씬 더 뜨겁다. 지구상에서는 수천억 기압으로 추정되는 태양과 같은 극초고압 없이 핵융합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2007년 가동을 시작한 KSTAR는 2018년 1억도의 초고온 플라스마 1.5초 유지를 시작으로, 조금씩 시간을 늘려 2021년 세계 최초로 30초 유지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30초가 한계였다. 토카막 내벽을 감싼 기존 탄소타일이 1억도의 플라스마를 오래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대전 유성구 과학로의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KFE)을 찾아 타일 교체 현장을 지켜봤다.

플라즈마 가둘 핵심장치 내벽
초고온 견딜 텅스텐 타일 설치
핵융합 발전을 위한 선결 조건
2026년 ‘300초 유지’ 성공 목표

무게 1000t 거대 우주선 같은 KSTAR

윤시우 한국핵융합 에너지연구원 부원장이 KSTAR 내부 토카막에 새로 설치한 텅스턴 디버터를 점검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윤시우 한국핵융합 에너지연구원 부원장이 KSTAR 내부 토카막에 새로 설치한 텅스턴 디버터를 점검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름과 높이가 각각 10m, 무게 1000t에 달하는 KSTAR는 은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우주선이 내려앉은 것처럼 보였다. 부직포로 만든 흰색 방진복을 덮어쓰고 높이 1m 남짓한 작업창을 통해 토카막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텅스텐 타일을 제작한 연구장비 생산 중소기업 비츠로넥스텍 기술진들이 핵융합에너지연구원 사람들과 좁은 토카막 내부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발 아래에 이미 설치한 텅스텐 타일 일부가 놓여 있었다. 길이가 채 1m가 안 되는 길쭉한 모양의 타일 하나의 무게는 150㎏에 달한다. 텅스텐은 비중이 19.25로 금속 중 가장 무겁고, 녹는점이 3422도에 달한다. 탄소 소재에 비해 녹는점이 높지는 않지만, 대신 밀도와 강도가 뛰어나고 열전도율도 높아 냉각수로 열을 식히는 것도 쉽다. 이달 중순까지 들어설 텅스텐 타일은 총 64개. 모두 토카막 내벽 아래쪽에 설치된다. 다른 곳은 기존 탄소타일을 그대로 사용한다.

☞토카막(tokamak): 태양처럼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자기장을 이용해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가두는 도넛형 장치

텅스텐이 아무리 열에 강하다해도 1억도의 초고온을 어떻게 견딜까. 기존 탄소타일 역시 30초라지만 1억도의 온도를 어떻게 견뎠을까. 핵융합로가 모델로 하는 태양도 표면 온도는 섭씨 약 5700도, 중심부라도 1500만도 정도다. 그 비결은 초전도자석과 플라스마에 있다.

윤시우 부원장은 “1억도의 플라스마는 초전도자석을 이용해 토카막 내부에 뜬 상태로 있게 된다”며 “플라스마의 중심 온도는 1억도이지만, 위쪽 부분이 가장 덜 뜨겁고,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뜨겁다”며 텅스텐 타일을 쓰는 이유를 말했다. 그는 “텅스텐 타일 설치가 끝나면 11월부터 다시 플라스마의 불을 지펴서 올 연말까지 1억도 50초 목표를 달성하게 될 것”이라며 “2026년에는 300초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억도 플라스마 300초 유지’는 핵융합발전의 선결 조건이다. 300초 동안 1억도의 초고온을 유지할 수 있다면, 핵융합로를 24시간 가동하는 데 문제가 없다.

KSTAR와 별도로 실증로 설계 착수

핵융합발전을 위한 계획은 올 들어 빠른 진전을 보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KSTAR와 별도로 지난 2월 ‘핵융합 실현을 위한 전력생산 실증로 기본개념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어서 6월엔  ‘실증로 설계 준비팀(TF) 착수식’을 열고 본격적으로 ‘핵융합 전력생산 실증로’ 설계에 착수했다. 한국형핵융합연구로라는 명칭을 가진 KSTAR의 목표가 핵융합로 건설을 위한 핵심기술 확보(플라스마 1억도 이상 300초 유지)라면, 핵융합실증로는 플라스마를 이용한 핵융합 연쇄 반응을 통해 실제 전기 생산이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사업이다. 구체적으로 2026년까지 1단계 예비개념설계 완료, 2030년까지 2단계 개념설계 완료 및 설계 기준 확립, 2035년까지 3단계 공학설계 완료 및 인허가 추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후 2050년경부터 핵융합 발전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핵융합발전은 세계 열강들이 앞다퉈 연구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분야다. 바닷물만 있으면 거의 무한정 전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사능의 위험도 없고, 지구온난화를 부르는 이산화탄소도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다. 프랑스에서 건설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가 대표적이다. 한국을 비롯 미국·EU·중국·일본·인도·러시아 등 7개국이 참여한 국제 공동 프로젝트인 ITER 사업의 최종 목표는 2035년 원자력발전소 발전용량(1GW)의 절반 수준인 500㎿의 열출력을 내는 플라스마를 300~500초 이상 유지하면서 최적의 운전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ITER 회원국들은 공동연구와 별도로 자체적으로 핵융합발전 연구개발(R&D)을 진행해오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핵융합 관련 스타트업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40개 이상 활동 중이다.

핵융합 관련 스타트업도 이미 활동

ITER 사무차장을 지낸 이경수 박사는 “한국의 핵융합발전 기술력은 초기 설계에선 미국이나 유럽 다음 가는 수준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제작하는 단계에선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조선학 과기정통부 거대공공연구정책관은 “해외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핵융합 실증 시기를 2030년대 중반까지 앞당기려는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며 “핵융합 분야는 산업 측면에서도 시장이 넓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KSTAR와 ITER 참여를 통해 확보한 우리나라의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실증단계에서도 핵융합에너지 개발을 주도해나갈 수 있도록 민간과 함께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