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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과도 담판...미국인 80명 데려온 '깡패담당 차관' 짜릿한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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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라크·쿠바 등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을 위해 노력했던 빌 리처드슨 전 주유엔 미국대사. 로이터=연합뉴스

북한·이라크·쿠바 등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을 위해 노력했던 빌 리처드슨 전 주유엔 미국대사. 로이터=연합뉴스

북한에 여러 차례 방문해 억류된 미국인 석방과 북핵 문제 등을 두고 협상했던 빌 리처드슨 전 주유엔(UN) 미국대사가 1일(현지시간) 별세했다. 75세.

리처드슨 글로벌 참여센터(RCGE)는 2일 "리처드슨 전 대사가 전날 매사추세츠주 채텀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발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독재자들과 대화하며 대통령도 해결하지 못한 외교적 틈새를 메운 인물"이라고 전했고, 워싱턴포스트(WP)는 "인질 협상 외교의 최초의 거인"이라고 평가했다.

빌 리처드슨 전 주유엔 미국대사는 북한·이라크·쿠바 등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를 상대로 인질 구출 협상을 도맡았다. AFP=연합뉴스

빌 리처드슨 전 주유엔 미국대사는 북한·이라크·쿠바 등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를 상대로 인질 구출 협상을 도맡았다. AFP=연합뉴스

NYT에 따르면, 리처드슨은 북한·이라크·쿠바·아프가니스탄·수단 등에 억류됐던 미국인과 미군 80여 명을 석방시키는 데 기여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나 담판을 벌였다. 고인은 생전 자신을 '깡패 담당 비공식 차관(informal under secretary for thugs)'으로 부르기도 했다.

협상가로서의 삶은, 1994년 하원의원 자격으로 북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평양에 방문했을 때 예기치 않게 시작됐다. 당시 주한미군 헬기가 조종 실수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가 북한군에 격추되자, 그가 북한과 교섭에 나섰다. 그는 협상이 성사될 때까지 북한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생존 조종사 1명과 함께 사망한 조종사 1명의 유해를 들고 판문점을 통해 내려왔다.

1994년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에서 미군 조종사의 송환을 협상한 과정을 설명하는 빌 리처드슨 미국 하원의원. 중앙DB

1994년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에서 미군 조종사의 송환을 협상한 과정을 설명하는 빌 리처드슨 미국 하원의원. 중앙DB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특사로 방북했던 96년엔 강석주 북한 외교부 제1부부장과 담판해 밀입국 혐의로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에번 헌지커를 석방시켰고, 2009년엔 탈북 문제를 취재하다가 납북됐던 중국계 미국인 언론인 로라 링의 석방을 위해 힘썼다. 2013년 에릭 슈밋 구글 회장과 북한을 찾아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석방을 요청하고, 2016년엔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가족을 대신해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리처드슨이 인질 석방 협상에 나선 건 북한 뿐이 아니다. 2006년 수단 대통령과 대화해 퓰리처 수상자인 미국 언론인 폴 살로펙을 풀어주게 했고, 2020년 이란에 구금돼있던 해군 참전용사 마이클 화이트의 석방을 도왔다. 최근엔 판문점 견학 중 무단 월북한 미군 트래비스 킹 이등병을 돕겠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NYT는 "리처드슨은 억류됐던 이들의 가족으로부터 금전적 사례를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2013년 방북한 에릭 슈밋 구글 회장과 빌 리처드슨(오른쪽 두 번째) 전 주유엔 미국대사가 평양과학기술대를 찾은 모습. 중앙DB

2013년 방북한 에릭 슈밋 구글 회장과 빌 리처드슨(오른쪽 두 번째) 전 주유엔 미국대사가 평양과학기술대를 찾은 모습. 중앙DB

그는 성공적인 협상의 비결로 "적을 존중하는 것"을 들었다. 2013년 펴낸 책 『상어에게 달콤한 말을 건네는 방법(How to Sweet-Talk a Shark)』에서 "개인적인 친밀감을 형성할 것, 유머 감각을 발휘할 것, 상대가 체면을 살릴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47년 미 캘리포니아주에서 맥시코계 부모 아래서 태어난 그는 2003년 히스패닉계 최초의 주지사(뉴멕시코주)가 됐다. 그에 앞서 82년부터 14년간 뉴멕시코주 하원의원을 지냈다. 98년 클린턴 행정부의 에너지부 장관을 역임했고, 2008년 첫 히스패닉계 미 대통령을 꿈꾸며 도전했지만, 중도 사퇴했다. 정계 은퇴 뒤에도 미국인 석방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생전 각종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아닌 억류인의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외교를 활발히 하고 억류된 미국인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총 다섯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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