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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합계출산율 0.7…국가소멸 위기의 대한민국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55호 30면

역대 최저기록 경신…44개월째 인구 감소

“결혼에 긍정적이다” 여성 비율 28% 그쳐

대통령이 나서 출산친화적 사회 만들어야

‘국가소멸’ 위기론이 더욱 불거졌다. 세계 최저의 합계출산율 국가라는 불명예 기록이 또다시 깨졌다. 통계청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3년 6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0명으로, 1년 전보다 0.05명 줄었다. 사망자가 출생아를 웃돌면서 인구는 44개월째 감소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합계출산율이 1명 아래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지난해 OECD 국가 중 한국(0.78명)에 이어 꼴찌에서 둘째인 이탈리아의 합계출산율이 1.24명이었다.

한국의 출산율은 현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1.3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살아가는 게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통보다 더 힘들다는 얘기다. 최근 EBS 다큐멘터리에 나와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말한 미국 교수 사례는 한국의 인구절벽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한민국이 어쩌다 ‘난임국가’가 됐을까. 지난달 28일 통계청 자료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에 그 현주소가 담겨 있다. 19∼34세 청년 가운데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좋다’고 답한 비중은 36.4%에 그쳤다.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의 비율은 28.0%에 불과했다. 청년들은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의 주된 이유’로 결혼자금 부족(33.7%)을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으로 결혼 필요성을 못 느낌(17.3%), 출산·양육 부담(11.0%) 등의 순이었다.

국가소멸 징후는 이미 사회 곳곳에서 시작됐다. 출산율이 떨어지니 산부인과·소아과는 의대생들의 기피 전공 1번이 됐다. 지방에선 임산부가 출산이 임박해지면 병원을 찾아 ‘위험한 여행’을 떠나야 할 지경이다. 학교 붕괴도 심각하다. 서울에서조차 올 들어 폐교된 광진구 화양초등학교 등 2015년부터 최근까지 4개 학교가 사라졌다.

인구 급감은 국가의 미래가 달린 과학기술 혁신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과학기술여성인재 활용 확대 국회포럼’이 열렸다. 이공계 석·박사과정 인력은 2025년 이후 본격적 감소가 예상된다. 참석자들은 과학기술 인력 부족을 막기 위해 여성 과학기술인의 경력단절을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사에 따르면 여성과학기술인은 경력 단계가 상승할수록 사회 참여 비율이 계단식으로 감소했다. 역시 결혼과 출산·육아가 주원인이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공학 박사과정 여학생은 “학위도 받고 싶고, 결혼해서 아이도 가지고 싶은데 현실이 너무 팍팍하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지금껏 이런저런 출산율 제고 정책을 펼쳐왔다. 2006년부터 15년간 380조원 넘는 예산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합계출산율 0.7명이 말해주듯 실패의 연속이었다. ‘아이 낳으면 돈 준다’는 식의 출산장려책으론 이제 초저출산을 해결할 수 없다. 답은 결국 ‘아이 낳고 싶어하는 출산친화적 사회’ 만들기로 수렴된다. “눈치가 보여 출산·육아 휴직을 쓸 수 없다”는 목소리가 더는 안 나오게 해야 한다. 풍부한 대체인력 시스템 마련은 물론 파트타임·유연근무·재택근무제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 해외 전문인력 유입 등 과감한 이민정책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의 인구 문제는 백척간두에 놓여 있다. 반면 정부는 아직도 위기의식이 부족한 상황이다. 내년 ‘저출산 극복’ 예산으로 17조5900억원을 잡아놓았지만 기존 정책을 반복·나열한 수준이다. 이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 ‘그랜드 비전’을 다시 짜야 한다. 현재 상황을 방치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보장할 수 없다. 이념 문제보다 더욱 화급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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