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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고리 동정 없애고 속치마를 겉옷으로…젊어진 한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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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호 25면

실용적인 현대 한복

1층 전시장을 둘러보는 크리스티나 김(왼쪽)과 조효숙 교수. 김상선 기자

1층 전시장을 둘러보는 크리스티나 김(왼쪽)과 조효숙 교수. 김상선 기자

9월 2일부터 11월 15일까지, 서울 통의동에 있는 아름지기 사옥에서 ‘한복을 꺼내다’ 전시가 열린다. 한국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을 목표로 활동하는 아름지기 재단이 준비한 기획 전시다. 아름지기는 협력기관인 중앙화동재단 부설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과 함께 지난 20년간 우리의 전통문화를 연구하며 현대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의식주 각 분야의 전통 장인들 및 현대 작가들과 협업한 결과물을 매년 기획 전시 형태로 선보여 왔다.

올해는 한복이 주제다. 2004년 쓰개를 시작으로, 배자(2007), 유니폼(2010), 포(2013), 저고리(2016), 바지(2019)를 주제로 ‘의(衣)문화’ 전시를 전개해 왔고, 특히 올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입기 편리하고 입고 싶어 하는 한복’을 주제로 삼았다. 전통 한복의 본질과 아름다움을 지키면서도 실용성과 동시대적 감성을 살린 현대 한복을 제안한다는 목표다.

‘영감의 여정’ 등 총 4개 섹션 구성

‘한국의 색 다시보기’ 섹션 전시장. [사진 아름지기]

‘한국의 색 다시보기’ 섹션 전시장. [사진 아름지기]

이를 위해 아름지기는 미국에서 활동 중인 재미교포 의상 디자이너 크리스티나 김과 협업을 진행했다. 15살에 미국 LA로 이민 간 그는 워싱턴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후 뉴욕으로 돌아와 의류 브랜드 ‘도사(DOSA)’를 론칭했다.

“40년 넘게 한국을 떠나 있었지만 할머니가 입으셨던 한복에 대한 기억이 생생해요. 남대문 시장에서 본 아주머니들이 활동성을 위해 치맛자락을 끈으로 묶은 모습도 기억하죠. 그렇게 묶여 올라간 치맛자락이 소라처럼 나선형 곡선을 이루는 모습이 정말 예뻤거든요.”(크리스티나 김·이하 김)

크리스티나 김은 ‘도사’를 독특하게 운영한다. 인도·중국·네팔·케냐·멕시코 등 전 세계를 돌며 그들의 일상에 여전히 존재하는 전통 수공예 기술을 직접 배우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해석해 디자인에 반영하는 방법이다. 인공재료를 피하고, 천연 누에로 생산한 비단이나 베틀로 짠 면으로 심플한 옷을 만드는 것도 그만의 특징이다. 손으로 만드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자연에 순응하며 고유의 전통을 지켜온 이들의 정신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화두로 떠오른 ‘기후위기’에 대한 고민도 그는 이미 1990년도에 시작했다. 이른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방식이다.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몽땅 모아두었다가 새로운 옷을 만들 때 반영하죠. 마치 조각보를 하듯 말이죠. 단순히 낭비를 줄이고 환경보호를 한다는 차원보다는, 직물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오랫동안 손으로 정성들여 만든 걸 함부로 버릴 수가 없었어요.”(김)

아름지기 사옥 층계에 전시된 치마 설치물. [사진 아름지기]

아름지기 사옥 층계에 전시된 치마 설치물. [사진 아름지기]

이번 전시 협업을 크리스티나 김과 함께하게 된 것도 그의 철학이 고유의 전통을 중시하고 존중하며 현대화를 고민해온 아름지기의 방향성과 닮았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크리스티나 김은 온지음 옷공방이 연구해 온 자료들을 공부하고, 경운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이 소장한 한복 유물들을 관찰했다. 이후 자신만의 디자인 방향성을 제안했고, 온지음 옷공방은 그동안의 노하우가 집약된 한복 옷감과 한복 제작 기술을 공유했다.

크리스티나 김의 새로운 시각과 온지음 옷공방의 전문성이 더해진 결과물은 ‘영감의 여정’ ‘옷 만드는 이야기’ ‘지속 가능한 삶의 예술’ ‘한국의 색 다시보기’ 총 4개 섹션으로 구성돼 전시됐다. 1층 전시장에선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 현대인의 일상복이 된 의상들이 전시됐다. 서양의 볼레로처럼 가슴선 위로 올라간 짧은 저고리, 소색(素色·염색하지 않은 모시·삼베·무명·명주 등에서 비롯된 자연 그대로의 색) 옷감을 다양하게 연결한 색동 소매, 남자의 속옷 바지를 돌려 입도록 디자인한 통바지, 3겹 무지기 속치마가 보이도록 투명한 옷감을 사용한 치마, 남성 배자와 등거리를 활용한 조끼 등 총 37점의 옷들이 빛난다.

2층에선 조선 후기부터 1960년대까지 자연스레 현대인의 몸에 맞게 변형된 다양한 형태의 저고리를 전시한다. 또한 이번 전시 의상들의 특별한 제작 과정을 알기 쉽도록 실제 옷감과 이미지 등도 전시했다. 중앙에는 이인진 도예작가가 직접 구운 도자기 단추들이 놓였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 만든 도자 단추들은 전시 의상에 다양하게 쓰였다.

3층에선 자투리 천을 이용한 거대한 가림막 설치작품을 볼 수 있다. 이번에 크리스티나 김과 온지음 옷공방은 새로 옷감을 만들지 않고, 소장하고 있던 옷감들만을 활용했다고 한다. 버려지는 천 조각 하나도 소중히 여긴 선조들의 지혜와 지금 세대에 익숙한 ‘제로 웨이스트’ 캠페인을 되새겨 보자는 의미다. 지하 전시장에서도 자투리 천으로 만든 다양한 컬러의 색동 머플러와 노리개 장식을 볼 수 있다.

“한복 저고리와 속옷에 현대 의상으로 변형할 만한 요소가 너무 많아서 놀랐어요. 원형은 그대로 유지하고 네크라인만 변형하면 당장 오늘 저녁에 입고 나가도 될 만한 옷들이죠. 그래서 저는 디자인보다 세탁이 편한 옷을 만드는 데 더 집중했어요. 옷감을 미리 빨아서 더 이상 줄지 않도록 한 다음 재단했죠. 전통 한복 저고리의 직선 깃을 라운드로 만든 것은 ‘동정’ 관리가 너무 힘들어서요. 할머니도 빨래 할 때마다 저고리를 다 해체했다가 새로 바느질하고 동정도 다시 달았거든요. 요즘 세대라면 번거로워서 싫어하겠죠. 그래서 세탁도 유지·관리도 편하도록 변형한 거예요.”(김)

‘자연·절제·품격의 미’ 갖춘 한복

조선시대 남자 조끼 ‘등거리’를 원형으로 제작한 상의. [사진 아름지기]

조선시대 남자 조끼 ‘등거리’를 원형으로 제작한 상의. [사진 아름지기]

동정도 없고, 깃도 직선이 아니고, 속옷을 겉옷으로 입고, 남자바지를 여자바지로 변형하고. 누군가는 “이게 한복인가?” 질문할지도 모르겠다.

고궁 주변의 임대 한복을 놓고 벌이는 논란도 많다. 서양 속옷인 패티 코트로 치마를 부풀리고, 싸구려 레이스로 치렁치렁 장식한 한복은 전통 한복과는 거리가 먼 국적불명의 옷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젊은 층이 한복을 경험하는 게 다행이라는 목소리 또한 높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심정이랄까. 이 외에도 한복 현대화에 대한 논란은 또 있다. 한복진흥센터가 공무원들 유니폼으로 현대 한복을 선보였다가 뭇매를 맞았다. ‘저고리 깃 디자인이 긴 것이 꼭 일식 주방장 유니폼 같다’는 댓글이 엄청나게 달렸다.

과연 한복의 변형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크리스티나 김과 온지음 옷공방 공방장이자 경운박물관 관장인 조효숙 가천대 석좌교수가 오랫동안 고민한 것도 바로 이 질문이다. 조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삶의 방식이 달라진 현대에서 한복의 변형은 불가피하죠. 다만, 과거로부터 미래로 이어져야 할 원칙은 필요하니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서 두 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첫째는 저고리 유형이 앞에서 여며 입는 ‘카프탄(caftan) 양식’이어야 해요. 멕시코의 판초나 그리스의 튤처럼 위에서 덮어쓰는 방식은 한복이 아니죠. 또 하나는 상의와 하의(치마·바지)가 분리되는 ‘이부양식(二部樣式)’이어야 하죠. 중국의 치파오나 일본의 기모노 같은 원피스(one piece) 형태는 한복 역사에 없어요.”(조효숙·이하 조)

조 교수는 유형 면에서 이 두 가지 원칙을 지키면서, 정신적으로 ‘자연의 미’ ‘절제의 미’ ‘품격의 미’를 갖추는 게 한복의 기본이라고 했다.

“모시·베·무명·명주 등 천연섬유 본연의 색을 사랑하는 게 ‘자연의 미’, 지나친 장식을 절제해서 섬유 본연의 빛깔과 재질을 돋보이게 하는 게 ‘절제의 미’, 조선백자와 같이 소박하면서도 기품 있는 모습이 ‘품격의 미’죠. 종합하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음)’에 맞는 옷이 한복의 기본이죠.”(조)

조 교수는 또 한복의 원형을 조선시대에만 국한하지 말고, 2000년 우리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도 했다.

“삼국시대부터 여성도 바지를 입었어요. 기마민족 고유의 활동성 때문이죠. 조선시대에 들어 유교정책 때문에 여성이 바지를 입는 게 금지됐고, 할 수 없이 바지는 치마 안으로 들어가 속옷이 됐죠. 하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바지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 다양한 형태로 속바지를 발전시켰고, 겉치마를 슬쩍 걷어서 속바지를 뽐내는 스타일도 즐겼죠. 투명한 옷감으로 속바지와 속치마를 비치게 입는 스타일도 유행했으니 속옷이 겉옷으로 변형되는 건 자연스러운 거죠.”(조)

툭하면 불거지는 ‘일본 기모노와 닮았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조 교수는 2000년 역사를 먼저 이해하면 사라질 문제라고 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저고리를 보면 지금의 일본 민속의상과 닮았어요. 그 시대에 우리가 전수한 거니까요. 일본은 그 원형을 현재까지 잘 이어온 거고, 우리는 조선시대에 복식 변화를 겪으면서 잊고 있던 거죠. 그러니 깃이 긴 저고리를 변형시켜 만든 현대 한복을 ‘일본 옷 닮았다’고 할 게 아니라, 우리 옷이라고 당당히 주장해야 해요.”(조)

이번 ‘한복을 꺼내다’ 전시는 여러 모로 우리에게 한복을 새롭게 이해하고, 또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더불어 관객들은 상상력을 발휘해 보길 바란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전시 의상들은 상하의 한 벌로 세팅한 것이지만, 그 중 저고리든 치마든 어느 하나를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에 매치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의외로 청바지, 청재킷과도 잘 어울린다. 입장료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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