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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에 아스파탐 왜 쓰냐고? 그가 답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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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호 24면

남도희 막걸리협회 사무국장

지난달 3일 서울 종로구 돈의문박물관마을 막걸리 홍보관에서 만난 남도희 한국막걸리협회 사무국장은 “막걸리는 서민의 술이라는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아스파탐을 쓴다”고 밝혔다. 최영재 기자

지난달 3일 서울 종로구 돈의문박물관마을 막걸리 홍보관에서 만난 남도희 한국막걸리협회 사무국장은 “막걸리는 서민의 술이라는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아스파탐을 쓴다”고 밝혔다. 최영재 기자

냉장 트럭이 코너를 돌았다. 트럭 옆구리에 ‘10일 유통, 생막걸리’라는 문구가 팝업창처럼 떴다가 사라졌다. 비 내리던 지난 달 29일, 서울시 은평구 수색동에서였다.

비와 냉장 트럭, 10일(열흘), 생(生). 누군가에는 건조한 일상으로 보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야말로 생(生)이 달린 순간이다. 남도희(49) 한국막걸리협회 사무국장은 “비 오는 날 막걸리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편의점 GS25에서는 장마기간 막걸리 판매량이 43% 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곧 올해 햅쌀로 빚은 막걸리가 나온다. 남 국장에게 또 물어봤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기 때문에 햅쌀로 빚는 가을이, 혹은 비 오는 날이 가장 감칠맛 나고, 맛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그는 답했다. 감칠맛 난다. 맛있다. 이런 술이 또 있을까.

남 국장을 만난 건 염하(炎夏)의 날이었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그는 이번 여름 들어서면서 식은땀을 비처럼 흘렸다고 했다.

올여름에 땀 좀 흘렸다.
“아스파탐 탓이다. 지난 7월 중순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발암가능물질 그룹B로 분류했는데, 이미 6월 말부터 관련 소식이 전해지면서 하루 100통 가까이 전화를 받았다. 제로콜라와 일부 과자에도 아스파탐이 들어가는데, 언론은 막걸리에 더 집중하는 양상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막걸리(750㎖) 33통 이상을 마셔야 하루 섭취량(ADI, 체중 1㎏당 40㎎)을 넘어선다고 발표했는데, 막걸리는 무거운 술이라 그 10분의 1도 마시기 힘들다.”
무거운 술이라니.
“소주는 알코올이 지배하는 술이다. 취기가 먼저 올라온다. 막걸리는 고형분이 있어 취기보다 배부름이 먼저 온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무겁다고 표현한다.”
제로콜라와 과자보다 막걸리에 관심이 쏠렸다고 했는데.
“첫째. 막걸리는 술이다. 술은 이미 발암물질로 분류됐다. 거기에 아스파탐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여긴 것 같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말했듯, 발암물질이라는 건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노출과 섭취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현재 아스파탐 섭취 기준으로는 무해하다고 판정됐다. 둘째. 752곳에 달하는 전국 막걸리 제조업체 중 아스파탐을 대체할 방안을 빠르게 세우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알려진 20여 곳을 제외한 93% 정도는 영세한 업체다. 자본과 인력이 민첩하게 움직이는 대기업과는 다르다. 고령화한 곳도 많아 아스파탐 논란 자체를 모르거나 뒤늦게 알게 된 곳도 있는 것 같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막걸리 시장에서 아스파탐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그래서 무(無) 아스파탐 제품도 속속 나왔다. WHO발 아스파탐 논란 와중, 백종원씨가 대표로 있는 더본코리아에서는 편의점 CU와 손잡고 ‘무아스파탐 백걸리’를 내놨다. 가격은 4500원. 장수 막걸리(1600원)의 세 배에 육박한다.

이참에 무아스파탐을 주력 막걸리로 만들 생각은 안 했나.
“보통 막걸리는 발효와 제성(製成·여과를 통해 도수를 낮추거나 첨가물을 넣는 과정)에 10일이 걸린다. 유통기간 30일 동안  효모가 당을 먹고 알코올을 계속 만들면서 단맛이 사라진다. 그래서 아스파탐을 쓴다. ‘10일’은 일부 막걸리 업체에서 최적의 맛을 내세우며 내걸은 유통기한이다. 그런데 무아스파탐 막걸리는 당분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쌀을 세 배, 네 배 들여야 한다. 1600원이 4500원, 5000원이 되는 것이다. 2019년 1300원이었던 막걸리 소매가격을 1600원으로 올렸다. 음식점 사장님들께는 4000원으로 올려 받으라고 했는데도 한동안 3000원을 유지하더라. 손님 끊어질까 봐서다. 소주와 맥주는 당장 올려 받지 않았나. 막걸리는 다르다. 막걸리에는 막걸리의 역할이 있다. 서민을 위한 술이기 때문에 함부로 올릴 수 없다. 그래서 단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원가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 아스파탐을 쓰는 것이다.”

‘아직도’ 막걸리 한 통에 3000원을 받는 곳이 많다. 경기도 고양시 번화가의 한 유흥음식점 사장은 “주저하며 5000원이나 4000원에 한 통만 드시게 하는 것보다 3000원에 두 통 드시도록 하면 손님도 나도 좋다”고 말했다. 막걸리는 소매가 1000원대부터 1만 원대, 심지어 10만 원대·100만 원대도 있다.

프리미엄 막걸리도 꽤 있다.
“막걸리는 1000원대가 탄탄히 막걸리 업계 바닥을 다져야 한다. 바닥이 부실하면 무너진다. 수제 맥주가 그렇다. 호기심에 어쩌다 마시는 한 잔 1만원짜리 술은 연속성이 없다. 바닥을 다진 상황에서 막걸리 고급화는 필수적이다. 수요도 있고 가치도 크다.”
막걸리가 다시 뜨고 있다.
“2021년 출고액이 5000억원을 넘었다. 10년 만이다. 지난해는 5200억원을 돌파했다. 반면 출하량은 오히려 줄었는데, 위에서 말한 프리미엄 막걸리 역할이 컸다.”
제2의 막걸리 붐인가.
“2010년 전후의 막걸리 붐은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왔다. 그런데 붐이 갑자기 끊겼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막걸리 열풍을 거품으로 만들었다는 분석은 낭설이다. 우리 업체가 막걸리 덤핑 수출을 했다. 큰 실수였다. 자해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지금 막걸리 붐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신중해지고 싶다.”
일본에 이어 중국이 큰 시장이다. 그런데 그 중국에서 막걸리가 자신의 것이라고 한다는데.
“3년여 전 김치 논란 때부터 나온 동북공정의 일환이다. 조선동포가 있는 연변 지역의 막걸리를 한국미주(韓國米酒)로 부르는데, 조선동포의 문화를 중국의 문화로 둔갑시키면서 불거졌다.”

막걸리는 한반도 남단 제주도에서부터 북단을 넘어 중국의 조선동포도 즐긴다. 막걸리 빚기는 2021년 대한민국 무형 문화재가 됐다. 막걸리협회는 북한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한다. 남 국장은 “남북관계 냉각으로 유네스코 등재는 현재 막걸리처럼 뿌옇다”고 밝혔다. 그는 “주류 중 유일하게 순우리말인 막걸리는 술이라기보다 우리 시대를 반영하는 고유문화”라며 “술지게미를 건져 먹던 5060과 프리미엄을즐기는 2030을 잇는, 그 매개체가 막걸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남 국장은 막걸리 산업에서 냉장 트럭 도입은 ‘획기적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주말 다시 비가 오는 곳이 있다. 막걸리를 실은 냉장 트럭은 다시 신나게 코너를 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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