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친구 제트기 타고 호화여행…대법관 스캔들에 美 발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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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런스 토머스(사진) 미국 연방대법관이 지난 31일(현지시간) 연례 재정 공시에서 고액 자산가인 지인의 개인 제트기를 타고 여행을 지원받은 사실을 공개하면서 도덕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토머스 대법관이 2022년 10월 7일 워싱턴 DC 대법원에서 단체 사진 촬영 중 포즈를 취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클래런스 토머스(사진) 미국 연방대법관이 지난 31일(현지시간) 연례 재정 공시에서 고액 자산가인 지인의 개인 제트기를 타고 여행을 지원받은 사실을 공개하면서 도덕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토머스 대법관이 2022년 10월 7일 워싱턴 DC 대법원에서 단체 사진 촬영 중 포즈를 취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보수 성향의 클래런스 토머스 미국 연방대법관이 억만장자 친구의 개인 제트기 등 호화 여행 지원을 받은 사실이 공개되면서 도덕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일각에선 차제에 ‘대법관 종신제’를 손보고 재산공개 등 윤리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31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ㆍ워싱턴포스(WP) 등 외신에 따르면, 토머스 대법관은 이날 공개한 연례 재정 공시를 통해 텍사스 부동산 사업가인 할란 크로우의 개인 제트기를 타고 2022년 세 차례 여행했다고 신고했다. 할란 크로우는 공화당에 1300만 달러(약 170억 원) 이상을 기부한 자산가다.

미국 판사들은 매년 봄 재정 공시 보고를 제출하고 법원 행정실은 매년 6월 초 이를 공개한다. 토머스 대법관의 재정 보고는 ‘90일 연장’ 요청을 한 뒤 이날 뒤늦게 공개된 것이다.

앞서 지난 4월 미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는 토머스 대법관 부부가 공화당의 ‘큰손’ 후원자인 크로우로부터 호화 여행 접대를 받고도 이를 은폐했다고 보도했다. 프로퍼블리카는 당시 토머스 대법관 부부가 크로우의 개인 리조트와 농장에서 거의 매년 휴가를 보냈고 개인 전용기를 이용한 해외여행에도 몇 차례 초대받았다고 폭로했다. 2019년 크로우의 전용기와 호화 요트를 타고 떠난 인도네시아 부부동반 여행에 토머스 대법관이 스스로 돈을 댔다면 50만 달러(약 6억5000만 원) 이상 들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프로퍼블리카는 지난 10일 후속 보도를 통해 토머스 대법관이 지인들로부터 바하마 요트 크루즈 등 최소한 38차례 여행 접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인기 있는 프로 경기 때 10여 차례 고가의 VIP 티켓을 받거나 고급 골프 클럽에 초대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토머스 대법관은 지금까지 연례 재정 공시에서 크로우의 전용기를 이용한 여행 사실 등을 신고하지 않았다가 이날 처음으로 공개했다. 프로퍼블리카의 폭로 보도를 뒤늦게 시인한 셈이다. 그는 “지난해 (여성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는 대법원 판결 초안이 유출된 이후 보안 위험이 커졌다”며 “신변 안전상 일반 항공편을 이용하지 않는 방식의 여행을 권고받아 (지인의) 개인 전용기를 이용하게 됐다”고 소명했다. 이날 함께 공개된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의 2022년 재정 보고의 경우 그가 노트르담대학 로스쿨로부터 5일간의 로마 여행 때 교통ㆍ숙박ㆍ식사를 제공받았다고 신고했다.

지난해 10월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 대법원 건물에서 대법관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 존 로버츠 대법관(대법원장),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 윗줄 왼쪽부터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닐 고서치 대법관, 브렛 캐버노 대법관,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AP=연합뉴스

지난해 10월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 대법원 건물에서 대법관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 존 로버츠 대법관(대법원장),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 윗줄 왼쪽부터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닐 고서치 대법관, 브렛 캐버노 대법관,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AP=연합뉴스

미 정부윤리법에 따라 판사, 의원, 연방공무원은 매년 재정 상태와 외부 소득을 신고해야 한다. 판사는 415달러 이상의 선물을 받을 경우 보고해야 하고 업무 관련 인사로부터 선물을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개인적 환대’로 받은 선물은 보고 의무가 없다는 게 구멍이다.

토머스 대법관의 부인 버지니아 토머스는 우파 성향 활동가로 2020년 대선 직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편에 서서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미 하원 특별조사위원회 보고에 따르면 당시 트럼프 대통령 비서실장과 최소 29차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했다고 한다.

토머스 대법관을 둘러싼 도덕성 논란이 커지면서 미 시민단체 ‘무브온’(MoveOn)은 2021년 7월부터 탄핵을 촉구하는 청원을 벌이기 시작했다. 1년 만에 100만 명을 넘어선 탄핵 청원은 이날 재정 공시 이후 억만장자 스폰서 논란이 더해지면서 다시 증가세가 뚜렷해져 이날 오후 5시 기준 132만4400명을 돌파했다.

토머스 대법관은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1991년 대법관에 취임했다. 최초의 흑인 대법관 서굿 마샬에 이은 두 번째 흑인 대법관이다. 현 대법관 9명 중 취임한 지 가장 오래된 최고참으로 입김이 세고 강한 보수 성향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49년 만에 뒤집었을 때 토머스 대법관은 피임의 자유와 동성애ㆍ동성혼 판례도 함께 폐기해야 한다는 보충 의견을 남긴 바 있다.

별도의 헌법재판소를 두지 않고 연방대법원이 헌법 해석 권한까지 갖는 미국의 사법 체계상 대법관은 낙태나 총기 규제 등 첨예한 정책의 향방을 가르는 등 미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번 임명된 대법관은 종신직이어서 사망이나 탄핵 등 사유가 없을 때까지 자리를 유지한다. 이들의 특별한 권한과 권위는 유럽의 교황에 비유될 정도다.

하지만 토머스 대법관을 둘러싼 스캔들이 확산되면서 미국에서 대법관 종신제를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재산공개 등 윤리 규정을 더욱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의회를 중심으로 일고 있다. 무소속이면서 친민주당 성향인 앵거스 킹 상원의원은 대법원이 180일 이내 행동강령을 만들고 윤리 담당자를 임명하도록 하는 법안을 최근 발의했다. 일부 민주당 상원 의원들은 공개 의무가 있는 대법관의 선물ㆍ소득 등 관련 규정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7월 상원 법사위원회에서는 판사들의 정보 공개 및 이해 충돌 시 재판 제척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윤리 강령을 제정했다. 다만 공화당은 현재 6대3의 보수 우위 구도에 있는 대법원을 겨냥한 압박이라며 윤리 규정 강화안들에 반대한다는 입장이어서 통과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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