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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어렵게 축구 않게”…베트남 슛돌이들 키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박항서 전 베트남축구대표팀 감독이 팬이 선물한 ‘파파 박’ 인형을 들고 있다.

박항서 전 베트남축구대표팀 감독이 팬이 선물한 ‘파파 박’ 인형을 들고 있다.

“아직은 작은 노력에 불과하다. 하지만 유망주를 발굴하고 키우는 노력이 언젠가 베트남 축구는 물론, 교육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과 베트남 축구 교류의 새로운 장을 연다는 각오로 준비했다.”

지난달 30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박항서(사진) 전 베트남축구대표팀 감독의 표정은 밝았다. 이날 박 감독은 자신의 이름을 딴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 출범을 알렸다. 하노이 프레스클럽에서 열린  ‘박항서 인터내셔널 풋볼 아카데미(이하 PHS)’ 공식 론칭 행사에는 한국과 베트남 각계 인사 100여 명이 참석했다.

박 감독은 “축구장 시설을 완비한 하노이 시내 초등학교 세 곳을 섭외해 PHS를 시작한다”면서 “한국인 신종영 감독을 중심으로 베트남 현지 코치들과 함께 7세(U-7)반, 9세(U-9) 반, 11세(U-11)반, 13세(U-13)반 등으로 나눠 총 300명의 어린이를 가르칠 예정이다. 조만간 한국인 지도자 한 명이 추가 합류한다”고 설명했다.

‘파파 박(박항서 감독의 별명)’이 축구교실을 연다는 소식에 수도 하노이를 넘어 베트남 전역에서 참여 신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세 곳의 훈련장과 300명의 정원을 당분간 고수할 계획이다. 그는 “PHS로 큰돈을 벌 생각도, 남들 눈을 의식해 외형을 늘릴 계획도 없다”면서 “첫 출발하는 세 곳의 클래스가 최상의 품질로 운영되는 걸 확인한 이후에 다음 단계(엘리트반 개설 또는 장소 확장)를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하노이 소재 중학교에서 학생 팬들로 둘러싸인 박항서 감독. [사진 DJ매니지먼트]

베트남 하노이 소재 중학교에서 학생 팬들로 둘러싸인 박항서 감독. [사진 DJ매니지먼트]

박 감독은 베트남대표팀 사령탑 재임 시절부터 아카데미 설립을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베트남 어린이들을 기초부터 제대로 가르쳐 보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이는 어린 시절 축구를 배울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고생한 박 감독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기도 하다.

경남 산청군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동네에서 ‘축구 잘 하는 소년’으로 유명했지만, 지역에 축구팀이 없어 정식으로 축구를 배우지 못 했다. 서울 유학길에 올라 ‘차범근의 모교’ 경신고에 진학한 이후 본격적으로 엘리트 축구를 접할 수 있었다. 늦깎이로 출발해 가파른 성장을 거듭한 그는 국가대표에 발탁되며 어린 시절의 꿈을 이뤘다.

박 감독은 “내가 재능 있는 선수라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후천적인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면서도 “어린 나이에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면 더욱 경쟁력 있는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건 분명하다. 베트남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시스템’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PHS는 축구 기술 뿐만 아니라 인성을 함께 가르치려 한다”면서 “존중, 사랑, 배려 등 핵심 가치를 실천하면서 한국과 베트남 문화의 장점이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박 감독은 최근 동굴탐험대 콘셉트의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함께 한 제자 김남일과 안정환, 가수 김동준, 격투기 선수 추성훈 등과 함께 베트남 중부의 손둥동굴을 탐험했다. 박 감독은 “아직까지 감독직에 대한 열정이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 관심을 둘 만한 제안도 몇 건 받아두고 있다”면서도 “도의상 한국과 베트남에서 온 제의는 정중히 고사한다는 정도의 기준만 정해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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