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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레즈비언 부부, 건강한 딸 낳았다..."엄마 1일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규진(32)씨가 임신 8개월과 7개월 때 찍은 만삭 사진. 전자는 황예지 작가가, 후자는 밀럽프로젝트에서 촬영했다. 사진 김규진

김규진(32)씨가 임신 8개월과 7개월 때 찍은 만삭 사진. 전자는 황예지 작가가, 후자는 밀럽프로젝트에서 촬영했다. 사진 김규진

한국에서 최초로 동성 부부의 임신 사실을 알렸던 김규진(32)씨가 건강한 딸을 품에 안았다.

김규진씨는 지난 3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엄마 1일 차’라는 메시지와 함께 병원에서 찍은 듯한 ‘엄지 척’하는 사진을 올렸다.

지난 30일 김규진(32)씨가 자신의 SNS에서 출산 소식을 알렸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 30일 김규진(32)씨가 자신의 SNS에서 출산 소식을 알렸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앞서 이들 부부는 지난해 12월 벨기에의 한 난임병원에서 기증받은 정자로 인공 수정을 통해 임신했다. 한국에서 시술받는 것도 고려했지만 대한산부인과학회 윤리지침상 “정자 공여 시술은 법률상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되어 있어 국내 시술은 포기했다. 국내에서 이들은 법적으로 미혼이기 때문이다.

규진씨는 지난 7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모국어로 증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과 의료보험 혜택이 다르다는 점 등을 고려해 한국에서 정자를 기증받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법적) 미혼 여성이 정자 기증을 받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아내와 어떤 부부보다도 (출산에 대해) 오래 얘기하고 깊이 고민했다”며 “늘 결론은 ‘우리가 이렇게 행복한데, 아이도 그렇지 않을까?’였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단란한 가정이 이성 부부에게만 허락된 행복은 아니라는 게 이들 부부의 생각이었다.

규진씨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기 두 달 전인 지난 7월엔 서울의 한 호텔에서 ‘대한민국 저출생 대책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베이비샤워 파티를 열기도 했다. 정상 부부·가족상을 규정하는 사회의 비정상적인 저출생 현상을 꼬집는 기획 행사였다.

이 자리에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참석해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발제를 했다. 생활동반자법은 성년이 된 두 사람이 생활을 공유하며 돌보고 부양하는 관계를 ‘생활동반자 관계’로 정의하고 제도적으로 이들 가족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하는 법이다.

현재 두 사람은 이러한 법적 테두리에 안에 놓여 있지 못해 함께 육아 휴직이나 출산 휴가를 쓸 수 없다. 이들은 출산 후 3주간 산후조리원에 머무르고 이후 8주간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규진씨는 “보통의 부부는 두 사람의 시간을 끌어다 육아에 쓰는 것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겠지만 저희 부부는 그게 불가능하니, 외부의 자원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규진씨가 낳은 딸의 이름은 ‘라니.’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그는 “간혹 ‘부부 두 사람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아이도 그럴까요?’와 같은 내용의 댓글이 달린다”며 “바로 그 댓글을 쓰신 분이 우리 아이의 행복을 만들 수 있다. 저와 제 아내는 우리 아이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렇게 인터뷰하고 강연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며 “(댓글을 다는) 그분도 힘을 더해주시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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