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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부 짧다" 글로벌 반응 터졌다…8년 전 웹툰 꺼낸 '시조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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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폭력배 주원(류승룡)과 다방 레지 지희(곽선영)의 로맨스를 그린 무빙 10,11회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조직폭력배 주원(류승룡)과 다방 레지 지희(곽선영)의 로맨스를 그린 무빙 10,11회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넌 이상하지 않아. 조금 다르고 특별할 뿐이야”(희수), “나는 늘 가장 쉬운 길을 택했었다”(주원) 같은 대사도 화제다. 통합 콘텐츠 1위(키노라이츠)를 시작으로 디즈니+ TV쇼 부문에서 한국ㆍ일본ㆍ대만ㆍ홍콩ㆍ싱가포르 등 5개국에서 일주일째 1위(플릭스패트롤)를 달리고 있다. 역대 디즈니+ 국내 서비스작 중 공개 첫 주 최다 시청 시간을 기록한 데 이어 미국 Hulu 공개 첫 주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중 최다 시청 작품이다.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의 성장담과 그 부모들의 아픈 사연을 풀어내며 ‘한국형 히어로물’을 표방한 ‘무빙’. 강풀(49)의 첫 각본 참여작이다. ‘아파트’부터 ‘그대를 사랑합니다’‘이웃사람’ 등 이미 많은 작품을 영화ㆍ드라마ㆍ연극으로 다시 보여준 '웹툰의 시조새'. 그러나 판권 판매를 넘어 각본에 직접 참여한 것은 처음으로 시리즈의 전체 분량부터 캐스팅까지 제작에 많은 의견을 냈다. 28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당신들이 뭘 좋아할지 몰라 다 넣어봤어' 하는 느낌으로 썼다. 하이틴 멜로부터 첩보 멜로, 조폭 서사까지 골라볼 수 있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며 뿌듯해했다.

'무빙' 원작ㆍ각본 강풀 인터뷰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을 감춘 채 살아가는 고교생 봉석(이정하).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을 감춘 채 살아가는 고교생 봉석(이정하).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각본 작업은 처음인데.  

“시리즈 공개 이틀 전부터는 '이거 나만 재미있는 거면 어떻게 하지' 하고 잠도 안 왔다. 영화감독들의 심정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만화 그릴 때는 혼자 책임지면 됐는데, 여럿이 만들고 큰 자본이 들어가니 부담이 다르더라. 매주 성적표 받는 기분이다. 만화 그릴 때는 댓글도 안 봤는데, 이제는 아침마다 '무빙' 이렇게 검색한다. 시리즈 초반에는 '20부 길다'더니 이제는 '너무 짧다'는 반응도 반갑다.”

무한 재생 능력을 가진 고교생 희수(고윤정).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무한 재생 능력을 가진 고교생 희수(고윤정).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한국형 히어로물' 잘 될까 의구심 있었을 텐데.  

“그래서 인물 개개인의 서사가 중요했다. 뜬금없이 하늘을 날기보다는 그 사람을 온전히 보여줘야 그 초능력이 말이 될 것 같았다. 디즈니+에서는 12~16회 기획했는데 내가 20회를 역제안했다. 각본은 처음이니 1~2회 정도 써 볼 테니 시간 달라 했고, 그 때문에 제작이 두 달 정도 멈췄다. 그게 2019년 4월, 웹툰 연재 당시 마감에 쫓기느라 더 살리지 못했던 캐릭터를 한 명 한 명 힘줘서 썼고 상상의 규모도 키웠다. 내가 다 안 그려도 되니까. 예를 들면 주원(류승룡)의 길거리 격투씬, 100대 1로 싸우는 걸 만화로 어떻게 그리나. '여기서는 하고 싶은 얘기 다 할 수 있구나' 믿고 뻥을 쳤다.”

웹툰 '무빙' 속 희수 [사진 kakaopageㆍ위즈덤하우스]

웹툰 '무빙' 속 희수 [사진 kakaopageㆍ위즈덤하우스]

“무협지는 모두 멜로”라는 대사도 있던데, 강풀이 보는 '무빙'은 어떤 장르인가.  

“히어로물의 외피를 쓴 멜로. 진융(김용) 작가 팬이다. '영웅문''소오강호' 등 그의 작품은 해적판부터 다 있다. 내겐 그게 진짜 히어로물로 느껴졌다. 무협지가 재미있었던 건 멜로였기 때문, 얼마나 관계를 잘 표현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정원고를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봉석 [사진 kakaopageㆍ위즈덤하우스]

정원고를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봉석 [사진 kakaopageㆍ위즈덤하우스]

만화를 배운 적도, 그림을 잘 그리는 편도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에 만화 형식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대학 졸업 후 만화를 그리고 싶다며 400곳 넘는 잡지사에 이력서를 냈지만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홈페이지를 만들어 혼자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게 2002년. 이제 '웹툰의 시조새''웹툰의 암모나이트'라는 별명마저 익숙하다.

어디 이야깃주머니라도 있나. 비결이 뭔가.  

“웹툰 작가 15년 차에 깨달은 것은 중요한 건 작가의식보다는 직업의식이라는 거다. '나는 만화가다'라는 생각. 세상에 힘들지 않은 직업이 어디 있겠나. 하기 싫어도 하니까, 생각 안 나도, 소재 없어도, 직업이니까 계속하는 것. 그럼에도 내가 웃긴다는 데서 독자들도 웃고 슬프다는 데서 함께 우는, 주파수가 맞을 때 보람 있다. 물론 원고료 들어올 때도.”

‘무빙’ 원작ㆍ각본 강풀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무빙’ 원작ㆍ각본 강풀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초능력자들이 주인공이라지만, 지구를 구할 만한 힘도 없다. 그저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배제되거나 이용당하고 만다. 귀한 능력을 물려주고도 부모들은 자녀들이 튈까봐 전전긍긍한다. 튀면 고달픈 한국 사회에서 초능력자들은 장애인이나 소수자에 가깝다. 여기 안기부, 북한, KAL기 폭파사건, 범죄와의 전쟁, 김일성 사망까지 굴곡진 한국 현대사가 녹아 들어갔다. 강풀은 "싸우기보다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막강한 초능력이 아니라 한계가 있었으면 했다. 주원은 맞으면 아프고, 두식은 날아도 슈퍼맨처럼 지구를 일곱 바퀴 반 돌지는 못한다. 가족과 주변을 지키는 게 내가 생각하는 히어로물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어린 봉석에게 공감 능력을 강조하는 엄마 미현 [사진 kakaopageㆍ위즈덤하우스]

어린 봉석에게 공감 능력을 강조하는 엄마 미현 [사진 kakaopageㆍ위즈덤하우스]

원작 웹툰이 8년 전 완결됐다. 누적 조회 수 2억 뷰, 이미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다. '무빙'을 2023년에 드라마로 다시 봐야 할 이유가 뭘까.  

"내 만화나 드라마 볼 때 딴생각이 안 났으면 좋겠다는 목표가 있다. 재미있어야 한다. 원작보다 이야기를 풍성하게, 생생하게 만들고 싶었다. '원작보다 낫다'는 평가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긴 하다.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악이 승리하거나 염세적인 이야기는 내 취향 아니다. 내가 보고 싶고 좋아하는 이야기, 착한 사람들이 이기는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다."

초능력이 생긴다면 갖고 싶은 능력은.  

"시간을 멈추는 능력, 마감에 시달려 왔으니까. 시간을 멈춰 놓고 마감하고, 멈춰 놓고 잠도 좀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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