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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타 면제 조항 정비해야 세금 낭비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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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예타 면제’라는 부조리

김두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김두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정부가 어떤 두 지역을 잇는 도로를 건설하려 한다. 두 지역 주민이 편리하게 왕래할 수 있게 됨으로써 삶의 질이 높아지고 지역발전과 소득증대로 이어지리라는 설명을 제시하면서 말이다. 언뜻 좋은 사업처럼 보이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도로를 만드는 데는 돈이 들기 때문이다. 만일 도로를 통해 얻게 되는 편리함이나 이득이 도로 건설 비용보다 적다면 이 사업은 하지 말아야 한다. 득(得)이 실(失)보다 많은 다른 사업에 그 돈을 써야 한다.

낭비사업 막는 역할하는 예타
정치인·지자체에겐 눈엣가시 돼
대형사업 적용 피할 방법만 골몰
나랏돈 분별없이 쓰는 일 멈춰야

이런 방식으로 사업 추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경제학에서는 ‘비용-편익 분석’이라고 부른다. 비용-편익 분석의 기본 원리는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비용-편익 분석의 기초 개념을 서술한 부분은 그다지 길지 않다. 비용과 편익을 계산해서 견주어 보고 판단한다는 것 이상으로 설명할 내용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무형의 편익’ 파고드는 정치 논리

2019년 1월 29일 홍남기 당시 경제부총리가 정부세종청사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1월 29일 홍남기 당시 경제부총리가 정부세종청사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어떤 사업을 할 때는 비용과 편익을 따져보고 그 결과에 따라 사업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특히 도로, 철도, 항만, 공항처럼 큰돈이 드는 사회기반시설 건설을 추진할 경우에는 더 그렇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편익 추정이 쉽지 않다. 도로 건설에 소요되는 비용을 가늠하는 것은 복잡할지는 몰라도 크게 어렵지는 않다. 반면 도로 건설이 가져다주는 편익을 가늠하는 것은 훨씬 힘들다. 그나마 도로는 유사 사례가 많고 추정 방법론이 잘 개발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경제적 편익 추정치를 도출하는 작업이 비교적 용이하다. 하지만 박물관 건설을 통해 국민의 문화적 소양을 증진한다거나 기초과학 관련 투자를 통해 우리나라 과학의 수준을 제고하는 사업의 편익이 얼마인지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무엇을 편익으로 볼 것이냐는 것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낙후 지역과 대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를 건설하는 경우 이용자가 적어서 경제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하지만 국토의 균형발전이나 지역 불균형 해소 같은 무형의 편익을 고려한다면 궁극적으로는 편익이 비용보다 크다고 볼 여지가 있다. 비경제적인 가치나 금전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종류의 가치를 얼마나 고려해야 할지, 그것을 어떻게 측정해서 비용과 비교할지는 엄청난 난제다.

이런 복잡함의 틈새를 파고드는 정치적 고려는 문제의 어려움을 배가한다. 비용과 편익을 적절하게 정의하고 평가할 수 있더라도, 그래서 어떤 도로가 사회적으로 충분한 편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이 명백하더라도, 정부는 이런 결과를 무시하고 도로 건설을 추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집권당 또는 해당 지역에 기반을 둔 유력 정치인의 압력 등으로 인해서다. 이득보다 비용이 큰 사업을 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는 손실이지만, 정치인들은 지역 주민이 좋아할 대규모 사업 유치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행위를 서슴지 않기도 한다.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은 예타 수행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자 1990년대 말에 도입한 제도다. 예비타당성이란 타당성 조사 이전 단계의 조사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공공사업의 타당성을 해당 업무 담당 공무원이 평가하고 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데, 그 이전에 관련 전문가들이 먼저 사업의 적정성 여부를 평가한다는 의미에서 ‘예비’ 타당성이라고 부른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공공투자관리센터(공투)는 예타를 수행하는 대표적 기관이다. 공투는 기획재정부의 의뢰를 받아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그리고 국고가 300억원 이상 소요되는 대형 공공투자에 대해 사업 추진 여부를 판단하는 분석을 한다. 분석은 대개 1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며, 분석 결과를 담은 예타 보고서는 공투 웹페이지를 통해 국민에게 모두 공개된다. 정책 결정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함이다.

예타는 사업을 다양한 각도에서 평가하는데, 그중 경제성 평가라고 불리는 비용-편익 분석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업 비용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수치를 파악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다. 문제는 도로나 철도뿐 아니라 문화예술, 보건의료, 과학기술 같은 다양한 영역의 사업과 관련한 편익의 측정인데, 이를 위해 조건부 가치 추정과 같은 방식을 활용하거나 사업의 특성에 맞게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하는 접근이 이루어진다.

지역균형발전, 예타 분석 중요 부분

예타와 관련해서 두 가지 큰 오해가 있다. 첫째는 사업의 경제적 측면만을 보고 추진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는 예타의 최종 결과가 경제성뿐만 아니라 지역균형발전 및 그 외의 정책적 요인까지 모두 고려해서 나온다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다. 낙후 지역일수록 지역균형발전 분석은 예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경제성이 낮게 나올 가능성을 고려하거나, 낙후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선제 투자가 필요한 측면을 고려한다는 이야기다.

둘째, 예타를 공투가 일방적으로 수행하는 평가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는 예타의 진행 과정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예타 대상 사업은 지자체나 정부 부처가 기획재정부에 사업 추진 신청을 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사업 신청서에는 왜 이 사업을 추진하려는지, 소요되는 비용은 얼마인지, 그리고 사업을 통해 기대되는 효과가 무엇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 이런 내용이 부실할수록 해당 사업이 예타를 통과하기 어렵다. 사업추진 주체가 얼마나 사업을 잘 이해하는지, 그리고 추진하려는 의지가 있는지가 성공 여부에 크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예타는 공투가 심사 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신청하는 주무부처 및 지자체 등과 여러 차례 회의 등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공투 연구진은 사업 평가 진행 상황을 예산 당국인 기재부에 보고하고, 주무부처는 연구진의 분석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보충 자료를 제출할 수 있다. 즉 편익 측정이나 분석 과정에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고려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검토해서 내놓는 결과라는 뜻이다.

세계은행, 예타를 모범사례로 주목

예타는 도입된 초기에 매우 성공적이었다. 과거에는 거의 그대로 수행되었을 부실 사업을 상당수 탈락시킴으로써 국가재정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의 효율성을 끌어올렸다. 세계은행 등에서는 한국의 예타를 공공사업을 관리하는 모범사례로 주목하였으며, 우리 정부도 기회 닿을 때마다 세계 각국에 예타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곤 했다.

하지만 예타는 일부 정치인이나 지자체에 눈엣가시이기도 했다. 그 결과 예타를 제대로 통과해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우회하려는 편법들이 등장했다. 전체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500억원 이상 예산이 소요돼 예타를 받아야 할 때 도로를 여러 구간으로 쪼개 추진함으로써 예타를 피하는 방법이 그 일례다.

2008~21년 대상 사업 36% 예타 면제

나아가 국회는 일부 대형 사업을 추진할 때 예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을 법에 넣어 예타를 회피하기도 했다. 심지어 2019년에는 정부가 지자체로부터 예타면제를 원하는 사업을 신청받은 뒤 그중 몇 개를 골라 발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야당 국회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 대규모 사업을 유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이 멀어 정부의 이런 행태를 비판하기는커녕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예타를 통과하기 어려운 많은 부실 사업을 여야가 대동단결해서 추진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결과 2008~21년 동안 예타 대상 사업 903건 중 36%에 해당하는 324건(약 190조원)이 예타를 거치지 않은 채 시행되었다.

2019년 당시 우리나라 곳곳에는 ‘경축! 예타 면제’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예타 면제가 어떤 뜻인지 조금만 고민했다면 거리에는 ‘근조, 예타 면제’라는 플래카드가 걸렸어야 했다. 세금이 낭비되는 것을 내놓고 축하하는 사회가 제대로 발전할 리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여러 법령에 무분별하게 도입된 예타면제 조항을 정비해야 한다. 2019년처럼 정부가 지자체에 마구잡이로 예타 면제를 선사해서는 안 되는 것은 물론이다. 궁극적으로는 중앙 정부 재원을 눈먼 돈으로 여기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벌이는 일을 지자체와 국회의원이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

김두얼 명지대학교·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