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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경찰은 치안 전념, 대공수사권은 국정원 존치로 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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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가정보원 전경. [사진 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 전경. [사진 국가정보원]

국정원 “대공수사 조정권 축소” 규정 입법예고

전문성·여력 부족한 경찰은 민생치안 집중해야

국가정보원이 검찰과 경찰의 공안사건 수사에 직접 관여하는 근거로 삼았던 안보(대공) 분야의 ‘수사조정권’을 축소하는 내용의 ‘정보 및 보안 업무 기획·조정 규정’(대통령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0년 12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2024년부터 경찰에 넘기기로 한 국가정보원법 개정의 후속조치다. 10월 2일까지 예고한 개정안은 중요 정보사범, 즉 내란·반란·이적·군사기밀누설·암호부정사용·국가보안법위반 등 공안사범의 신병처리(8조 1항)나 공소보류(9조 1항) 과정에서 “국정원장의 조정을 받아야 한다”는 현재의 조항을 “의견을 듣는다”로 수정한 게 핵심이다. 대공수사권을 이전하는 국정원법 개정에 맞게 하위 규정을 손질하고, 검찰이나 경찰 등과 협조관계를 보완하겠다는 게 국정원이 밝힌 수정의 이유다.

바꿔 말하면 국정원 도움 없이는 대공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란 뜻도 된다. 국정원이 규정을 손질하면서도 “정보사범을 신문할 때 국정원장의 조정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8조2항)을 존치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정원은 홈페이지에 “대공수사 역량 강화”를 주요 업무라고 소개했다. 정보 수집 역량 강화를 비롯해 ▶협업체계 구축을 통한 관문(Hub) ▶북한의 진화하는 대남공작 대응 등이 그 세부 내용이다. 그러나 대공수사의 주도권을 경찰에 넘겨주면서 허브 역할을 하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중에 책임소재를 따지기도 어렵다.

국정원이 아무리 뒷받침하더라도 경찰의 대공수사 능력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정보 수집과 풍부한 노하우, 예산,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발견’이 대공수사의 핵심인데 국정원의 조력만으로는 시행착오가 불 보듯 하다. 경찰 내부에서도 대공수사권 이전을 마냥 환영할 수 없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정원은 지난해부터 한길회, 민중자주통일전위, 전북민중행동 관계자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비용의 결과다. 공안범죄는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다. 수사권 이양에 따른 혼란이나 경찰의 경험을 축적할 시간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일 “경찰의 본연 업무는 치안”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치안업무 중심으로 경찰 조직개편안을 마련키로 했다. 의무경찰제도를 부활시키려는 검토도 있었다. 민생치안만으로도 벅차다는 방증이다. 이번 기회에 경찰은 윤 대통령의 말대로 민생치안 업무에 집중해 국민 불안을 덜어주고, 대공수사권은 ‘프로 선수’인 국정원에 존치시키는 방향으로 논의를 다시 시작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