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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이루지 못한 챔피언 꿈...'좀비' 옥타곤 떠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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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선언한 UFC 파이터 정찬성. 사진 UFC

은퇴를 선언한 UFC 파이터 정찬성. 사진 UFC

"그만할게요."

'코리안 좀비' 정찬성(36)이 종합격투기 UFC를 무관으로 떠났다. 정찬성은 27일(한국시간)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 메인카드 페더급 경기에서 1위 맥스 홀러웨이(31·미국)와 맞붙어 3라운드 시작 23초 만에 KO패를 당했다. 최근 UFC 경기 2연패를 당한 정찬성은 경기 후 옥타곤(8강링) 인터뷰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이로써 정찬성은 UFC 페더급 8위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웰터급 7위로 마지막 경기를 치른 '스턴건' 김동현(42) 다음으로 높은 순위다. 정찬성의 종합격투기 최종 전적은 17승8패다. UFC 전적은 7승5패다.

정찬성은 자신의 등장 음악인 크랜배리스(The Cranberries)의 '좀비(Zombie)'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옥타곤에 올랐다. 관중석에선 '좀비'를 연호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했다. 이변은 없었다. 대부분 전문가의 예상대로 강자 홀러웨이의 흐름대로 경기는 흘러갔다. 2라운드부터 주도권을 내줬고, 3라운드 들어선 난타전에 휘말린 끝에 카운터 강펀치에 맞고 KO 당했다.

홀러웨이에 3라운드 KO패를 당한 정찬성(아래). 사진 UFC

홀러웨이에 3라운드 KO패를 당한 정찬성(아래). 사진 UFC

정찬성은 경기 후 "그만할게요. 울 줄 알았는데 눈물이 안 난다"며 은퇴를 알렸다. 그는 글러브를 벗어서 옥타곤에 가지런히 내려놓은 뒤, 글러브를 바라보고 큰절을 했다. 그는 바닥에 고개를 파묻고 우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한동안 일어서지 않았다. 링을 내려가서는 오열하는 아내 박선영(39) 씨 어깨를 감쌌다. 둘은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경기장을 떠났다.

정찬성은 "내가 그만하는 이유는 (나는) 챔피언이 목표인 사람이다. 홀러웨이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후회 없이 준비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 그는 "저는 3등, 4등, 5등 하려고 격투기한 거 아니었다. 챔피언이 되려고 했는데, 톱 랭커를 이기지 못하니 냉정하게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라고 은퇴 이유를 설명했다.

2007년 종합격투기에 뛰어든 정찬성은 16년간 선수 생활을 이어왔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격투기 대회에 출전했다. 생활비와 훈련비를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호프집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참가비를 내고 대회에 나서는 신세였기 때문에 돈을 번다는 건 꿈 같은 얘기였다. 서울 월계동 광운대 앞의 월세 18만 원짜리 고시원에서 지냈다. 2008년에야 처음으로 대전료 100만원을 받고 링에 섰다.

 정찬성의 꿈은 챔피언 벨트였다. 송봉근 기자

정찬성의 꿈은 챔피언 벨트였다. 송봉근 기자

UFC에는 2011년 데뷔했다. 대전료도 수천만 원대까지 뛰었다. 이 기간 한국인 파이터 중 유일하게 챔피언 타이틀에 두 차례 도전했지만, 모두 패했다. 2013년 조제 알도(브라질)에게 도전했다가 무릎을 꿇었고, 작년에는 페더급 최강자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호주)에 완패했다. 정찬성은 볼카노프스키에 무기력하게 패한 뒤 은퇴를 암시하기도 했다.

다시 도전에 나섰지만, 페더급 상위 랭커들의 높은 벽은 강한 의지만으로는 넘을 수 없었다. 한 수 위 기량으로 승리한 홀러웨이는 경기 후에도 강자의 품격을 보였다. 3라운드 KO로 경기를 끝내고서는 정찬성을 직접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 홀러웨이는 "정찬성은 전설이고 불가사의한 선수다. (KO 순간) 내 펀치가 먼저 들어간 게 운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찬성은 중학교 2학년 때인 2002년 합기도로 격투기에 입문했다.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서 시작한 운동이었다. 재능을 보인 그는 이후 킥복싱과 주짓수까지 익혔고, 격투기 선수를 꿈꿨다. 별명인 ‘좀비’는 어떻게 해서 붙었을까. 그는 "매일 자정까지 운동했다. 잠도 안 자고 연습한다고 해서 체육관 관장님이 ‘좀비’라고 불렀다"고 소개했다.

정찬성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모든 것을 이루진 못했지만, 충분히 이룰 만큼 이뤘고, 제 머리 상태에서 더 바라는 건 욕심 같아 멈추려고 한다. 제가 해온 것에 비해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 같아 모두에게 감사하다. 이제 더는 평가받고 비교당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 같아 홀가분하고 후련하고 또 무섭기도 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겠지만 무엇을 해도 최선을 다하고 무엇을 해도 진심으로 해보려 한다. 그동안……. 코리안좀비를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UFC에서 싸우는 동안 정말 정말 행복했다"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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