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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새만금 계획을 포기해야 새만금이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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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논란의 새만금 현장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군산공항으로 갔다. 기행의 시작점을 그곳으로 잡았다. 지난 25일 오전 정문으로 들어서자 텅 빈 주차장이 보였다. 지난 4월 여객 운항이 중단됐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토록 적막할 줄은 몰랐다. 공항 청사 앞에서 관리 직원으로 보이는 이에게 운항이 언제 재개되는지를 물었더니 “다음 달 중순이라고 들었다”고 대답했다.

군산공항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비행장이 모태다. 해방되자 미군이 접수했다. 지금도 공항의 주인은 미군이다. 한국 여객기가 미군에 ‘착륙료’를 낸다. 1970년에 대한항공 여객기가 이곳과 서울을 오갔으나 4년 뒤 운항이 중단됐다. 이후 비행장은 미군·국군의 군용기 비행에만 사용됐다.

군산공항 승객 적어 항공사 떠나
바로 옆에 1조 들여 신공항 건설

새만금호 수질악화로 생태위기
용도 불분명한 땅 계속 매립 중

신공항 필요성 다시 생각하고
해수 유통 늘려 습지 보호해야

1992년에 지금의 단층 청사가 만들어지고 대한항공의 김포·군산 노선 운항이 시작됐다. 4년 뒤 아시아나항공이 군산·김포, 군산·제주 노선을 취항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에 두 항공사 모두 군산공항을 떠났다. 이용객이 많지 않아서였다. 2009년 제주 노선이 부활했다. 이스타항공·대한항공·제주항공이 다니다가 하나씩 사라졌다. 최근에는 대한항공 자리를 물려받은 진에어만 이곳에서 제주를 오갔다. 전북도와 군산시는 군산공항 이용 항공사에 손실 보전금을 준다(제주항공의 경우 2년 합산 약 13억원을 받았다). 그래도 떠난다. 사업성이 낮아서다.

영화 ‘수라’의 배경인 신공항 부지

새만금국제공항 건설 예정 부지 위로 새가 날고 있다. 그 아래 동그란 물체는 신공항 터 바로 뒤에 있는 군산공항의 레이더 설비다. 이상언 기자

새만금국제공항 건설 예정 부지 위로 새가 날고 있다. 그 아래 동그란 물체는 신공항 터 바로 뒤에 있는 군산공항의 레이더 설비다. 이상언 기자

정부가 그 옆에 공항을 짓기로 했다. 새만금국제공항이다. 군산공항에서 1.3㎞ 떨어진 곳에 짓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양쪽의 경계 사이는 불과 수백m다. 바로 옆이다. 국토교통부 계획안을 보면 총 사업비가 9359억원. 1조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새 공항 부지로 가 봤다. 군산공항 입구 오른쪽 골목으로 15분쯤 걸으면 나온다. 본래 갯벌이었으나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습지가 된 곳이다. 빗물이 잘 안 빠져 질퍽질퍽한 땅과 수풀이 무성하게 자란 땅이 뒤섞여 있었다. 바닥이 흰 모래로 덮인 것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부서진 조개껍데기 알갱이들이다. 조개들이 사는 해변이었다는 땅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곳을 매립해 공항을 만드는 게 정부 계획이다.

이따금 새떼가 그 위를 지났다. 수풀 사이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도 보였다.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에 나오는 장면과 흡사했다. 새 공항 부지가 바로 이 영화의 배경인 수라 갯벌의 일부다. 영화에는 습지로 변한 그곳을 여전히 찾아오는, 붉은어깨도요·검은머리갈매기·저어새 등의 멸종 위기 새들이 등장한다. 그곳에서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온 아기 새가 어미 새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공항 건설에 따른 습지 파괴의 미래를 걱정한다. 지난 6월에 개봉한 이 영화를 27일까지 5만 명에 가까운 관객이 봤다. 독립영화의 이례적 흥행이다.

새만금호 담수화 시도는 실패

전북 부안군의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새만금 개발 계획도. 이상언 기자

전북 부안군의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새만금 개발 계획도. 이상언 기자

차를 운전해 새만금 방조제 도로를 달렸다. 33.9㎞의 세계 최장 인공 방조제 위에 길을 놓았다. 북쪽 끝은 군산시, 남쪽 끝은 부안군이다. 그 거대한 둑으로 바다를 막아 안쪽에 호수와 매립지를 만들었다. 그런데 호수가 된 안쪽 물과 방조제 바깥의 물 색깔이 확연히 달랐다. 방조제를 경계로 서쪽의 바닷물은 검푸른 빛을 띠었는데, 동쪽의 인공 호수는 녹색이 섞인 푸른색이었다. 새만금 안의 물이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환경운동가들은 생태계 보호를 주장하며 새만금국제공항 설립에 반대한다. 새만금 지역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호수가 썩는다면 호수 자체는 물론 그곳과 연결된 습지에도 생물이 살기 어렵게 된다.

1990년대 초 새만금 개발 사업이 설계될 때 매립지는 모두 농토로 조성하고 새만금호는 농사에 필요한 물을 제공하는 담수호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만경강과 동진강에서 흘러오는 강물에 염분이 희석돼 결국 담수호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바다로 나갈 수 없게 된 물의 질이 나빠졌다. 6등급으로 수질이 떨어졌다. 2020년 12월부터 하루 두 차례 새만금 방조제에 있는 두 개의 갑문을 연다. 수질 악화를 막기 위해 바닷물을 새만금호로 들이는 것이다. 담수화 계획은 그때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바닷물을 들이지만 양이 많지 않아 수질은 아직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방조제 위 도로를 지나 지난달에 완공된 새만금 남북도로를 오가며 곳곳을 봤다. 시원하게 직선으로 뻗은 왕복 8차로(일부는 6차로)다. 통행량이 적어 앞과 뒤로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는 때도 있었다. 공사에 국가 예산 약 1조원이 투입됐다. 도로 남쪽 끝 지점 부근에 잼버리 대회 터가 있었다. 2000억원 가까이 들여 매립을 한 곳이다. 새만금 전체에서는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간척 사업으로 새로 얻은 땅이 서울의 절반 크기이니 그럴 만했다. 10여년간 수조원을 들여 새만금에 매립해 왔지만, 전체 매립 계획의 절반 정도만 진행됐다. 32년 전 쌀 생산을 위해 착공한 사업인데 새만금 그 어느 곳에서도 벼가 자라고 있는 논을 볼 수 없었다. 염분이 많은 새만금호 물을 농업용수로 쓸 수 없으니 주변 땅이 언제 농경지가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희망에서 의문이 된 국책 사업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에 등장한 새만금 습지에서 갓 태어난 아기 새. 새만금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철새들이 날아온다. [영화 ‘수라’ 화면 캡처]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에 등장한 새만금 습지에서 갓 태어난 아기 새. 새만금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철새들이 날아온다. [영화 ‘수라’ 화면 캡처]

무엇을, 누구를 위한 새만금 개발 사업인가. 지금까지 10조원 넘게 쏟아부었고 앞으로도 그 이상의 예산을 투입한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무엇을 얻었고, 앞으로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새만금국제공항은 무엇을 위해 건설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서울 면적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매립지를 얻었다. 국토가 늘어났다. 그런데 그다지 쓸모가 있는 땅은 아니다. 전국에서 수요를 넘는 쌀이 생산된 지 20년이 지났다. 쌀이 남아서 문제다. 농지 100%의 당초 새만금 계획이 현재는 농지 28%, 산업·레저·생태 용지 72%로 바뀌었다.

전북도에서 산업용지에 기업들을 열심히 유치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새만금 북쪽 지역을 이차전지 특화 산업단지로 지정했다. 대형 산업단지를 만들 만큼의 매립지는 이미 확보됐다. 레저 단지를 만들겠다는 민간 사업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군산과 부안을 잇는 대형 도로 두 개가 생겼는데, 이용자는 많지 않다.

이 과정에서 갯벌을 잃었다. 갯벌의 가치를 몰랐다. 탄소를 흡수해 저장하는 능력이 있어 네덜란드 등에서는 간척지를 갯벌로 되돌리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가 갯벌의 가치를 다시 보게 했다. 새만금 탓에 전북의 수산업이 위축됐다. 수많은 바닷가 주민들이 생업을 잃었다. 생태계가 훼손됐다. 상괭이 200여 마리가 떼로 숨진 채 발견된 적도 있다. 바다를 막아 만든 호수는 수질 문제를 안겼다. 다른 지역의 갯벌과 습지는 수산업·관광업 자원으로 귀하게 대접받는다. 새만금 개발은 30여 년 전에는 희망의 국책 사업이었는데 지금은 관성에 끌려가는 의문의 사업이 됐다. 기한이 2050년이다.

잼버리 파행을 전화위복 계기로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오동필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새만금생태조사단 단장인 그는 2000년부터 새만금 습지에 사는 생물을 관찰하고 기록해왔다. 그는 새만금 사업에 따른 사람과 자연의 피해를 줄이려면 세 가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라 갯벌 터 신공항 건설 사업 중단, 해수 유통 확대, 매립 중단이었다.

오 단장은 “이미 땅이 넘치고 용도도 불분명한데도 매립하고 있다. 업자들을 위한 사업으로 변질했다. 갑문을 상시 개방하고 방조제 일부를 헐어 해수 유통을 늘리면 새만금호가 살아나고 갯벌도 상당 부분 복원될 것이다”고 말했다. 지금의 새만금 계획을 포기해야 새만금이 산다는 얘기다. 그가 이끄는 단체는 신공항 부지가 멸종 위기 생물 40여 종의 서식지라는 점을 근거로 건설 중단 처분을 요청하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은 진행 중이다.

잼버리 대회 파행 운영으로 온 국민이 새만금에 주목했다. 황당한 일들이 벌어져 왔음을 알게 됐다. 신공항 건설이 경제성 평가에서 투입 비용 대비 산출 효과가 절반도 되지 않을 것으로 예측이 되었으나 ‘국토 균형 발전’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예비 타당성 조사가 면제됐다. 한 해 약 8000억원의 예산이 매립 비용 등으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투입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사업인지를 다시 따져 보고 바로 잡는다면 잼버리 망신은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환경에 대한 무지와 무시, 지역 정치인·건설업자·관리의 탐욕 카르텔, 구시대적 개발 논리, 정치권의 얄팍한 표 득실 계산이 만든 새만금의 거대한 부조리를 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