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재정계산위 참여, 윤석명 전 연금학회장
‘연금 개혁의 시간’이 도래했다. 국민연금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재정계산위)가 9개월간 21여 차례의 회의를 통해 도출한 연금 개혁의 밑그림이 나왔다.〈중앙SUNDAY 8월 12~13일자 1면 참조〉 그런데 최종보고서 발표 및 공청회를 앞두고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무려 18개에 달하는 백과사전식 ‘개혁안’이 제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또 소득대체율 ‘유지’와 ‘상향’을 두고 재정계산위 위원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모양새다. 연금 개혁 방정식이 더욱 난해해지면서, 연금 개혁의 추진 동력이 약화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백과사전식 개혁안, 무책임한 행태
윤석열 정부의 주요 과제인 국민연금 개혁 목표는 저출생·고령화 시대에 공적연금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25일 현재 알려진 국민연금 개혁안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매월 소득의 9%를 내는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한다는 것에는 현재 재정계산위원들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하지만 ‘내는 돈’인 보험료율을 얼마나 올리는 것이 합리적인지에 대해 의견을 모으지 못했고 12%, 15%, 18%로 인상하는 시나리오를 각각 제시하기로 했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상향 방안도 세 가지가 추가될 예정이다. 현재 65세인 수급 개시 연령을 66세, 67세, 68세로 높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기금 운용 수익률 상향 방안도 포함됐다. 연평균 수익률을 현재보다 0.5∼1%포인트 상향 조정해 반영하는 안이 검토됐다. 여기에 당초 최종보고서에서 제외될 것으로 알려진 ‘소득대체율 상향 방안’을 두고 일부 재정계산위 위원들이 반발하면서 최종 보고서 발표 및 공청회도 이달 말에서 9월 1일로 연기됐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정부는 재정계산위 논의를 토대로 10월 말까지 국민연금 개혁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재정계산위가 우선순위도 없이 시나리오를 던져놓는 데 그치면서 정부의 개혁안 도출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총선을 6개월 앞둔 시점에서 공을 넘겨받은 정부가 반발이 큰 개혁안을 밀어붙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해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윤석명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은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의 공적연금 보험료 수준에도, 1998년 개혁 이래 지난 25년간 보험료율를 단 1% 올리지 못했다”며 “당장 연금 개혁에 들어가도 ‘골든타임’을 놓쳐 상당한 고통이 뒤따르기에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은 2003년부터 5년을 주기로 시행되고 있다. 윤 위원은 1차 국민연금 재정계산부터 지난해 시작된 5차 재정계산까지 모두 참여했다. 연금 재정 안정을 달성해야 취약계층의 노후소득을 지켜주고, 미래세대의 부담도 덜어줄 수 있다는 확신에서다. 그런데 5차 재정계산의 마무리 시점에서 더 없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배가 침몰하지 않게 끌고 가야하는 게 전문가의 역할인데, 18개의 개혁안을 우선순위도 없이 던져놓고 끝내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 왜 이런 상황이 됐나.
- “전문가조차 국민연금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못보고 있다. 3월 발표한 재정추계에 따르면, 현행 국민연금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현재 1000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 기금은 2055년 고갈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될 것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정부는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미적립 부채란 이미 지급하기로 약속한 연금액 대비 부족한 액수를 의미한다. 현재 쌓인 기금 1000조원을 고려해도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는 최소 15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미래세대는 기금이 소진된 후 이미 지급이 예정된 연금액을 메우기 위해 어마어마한 부채를 떠안아야 한다. 지금부터 보험료율을 올리고,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춘다 해도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녹록치 않다. 그런데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연금 개혁의 시급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방안에 대해 반발도 우려된다.
- “국민들에게 연금을 더 많이 받을지, 지금 수준으로 받을지 묻는다면 당연히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전제가 잘못됐다. 우리 국민연금 재정 상태는 현재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고갈이 예고된 국민연금의 미래 적자를 고려하면 ‘더 받는 개혁’은 개악(改惡)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에 따르면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5%로 높이면서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10%포인트 높이는 ‘더 내고 더 받는’ 안은 기금 고갈시점은 2063년으로 현행(2055년)보다 8년 늦출 수 있다. 그런데 기금이 고갈된 후인 2070년 적자 폭은 되려 21조5000억원 늘어나게 한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향후 50%로 높일 경우 보험료율을 점진적으로 높여가도 미래세대가 짊어질 부채는 줄이기 어렵다. 미래세대에는 더 큰 ‘재앙’을 넘겨주게 된다.”
10월 말 국회 제출 때까지 개혁안 도출
- 기금이 고갈 돼도 국가가 책임진다고 하던데.
- “1988년 출범한 국민연금은 당시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조건을 내세웠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연금 보험료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영국은 25%, 독일은 18.6%, 일본은 18.3%, 중국은 16% 수준인데 우리는 9%다. 거기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저출생·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출생률 0.78(2022년 기준)은 70만~100만명 세대를 약 25만명 세대가 부양해야한다는 의미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나라가 존재하는 한 지급한다’며 안심시켜왔는데, 결국 적자분은 다 미래의 빚이다. 미래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과도하게 커지면 국가 전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크다. 우리나라는 지난 25년 동안 보험료율은 단 1%도 올리지 못했다. 기성세대는 당장 먹고 살기 힘들다며 단 1%도 올리지 않았으면서, 30∼50년 뒤의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미래 세대에게 2~3배의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하게만 보인다. 우리 미래 인구 구조 등을 고려하면 OECD 평균이 아닌, 가장 강력한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다.”
- 지금이라도 개혁하면 국민연금이 지속가능한 제도가 될 수 있나.
- “안타깝게도 연금 개혁의 골든타임은 지났다. 한국전쟁 뒤 1955~63년에 출생한 이른바 ‘베이비부머’ 약 720만명이 대부분 은퇴를 하고 이미 ‘연금을 내는 사람’에서 ‘연금을 받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조금만 시간이 지체되면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8~1974년) 약 687만명마저 노동시장을 떠나기 전에 연금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 연금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 “적어도 지금 젊은 세대들이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공적 연금은 적절한 노후 보장을 해주면서도 다음 세대까지도 지속 가능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향후 보험료를 15%까지 올리고, 수급연령을 3년 뒤로 늦춰도 재정 안정을 달성하기 어렵다. 그래도 보험료율을 9%에서 15%로 높이면서 현행 소득대체율을 유지할 경우 향후 70년간 누적적자 감소 폭은 약 3700조 가량 줄어든다. 개혁이 늦은 만큼 모든 세대가 고통을 분담한다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
- 역대 정부의 연금 개혁은 어떠했나.
- “1998년에 소득대체율을 10%포인트 낮추고, 수급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늘린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김대중 정부에서 통과됐지만 시작은 김영삼 정부였다. 당시 연금 개혁을 높게 평가한다. 노무현 정부의 연금 개혁도 과감했다. 노무현 정부는 애초 ‘용돈연금’이라는 비난을 고려해 공약에서 연금개혁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결국 어려운 개혁을 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노무현 정부는 당시 국민연금의 미적립 부채를 숨기지 않았다. 하루 800억씩 부채가 쌓이는 시한폭탄임을 알리고 개혁을 추진한 것이다. 그처럼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빚을 파악하는 것은 연금 개혁의 출발점이다. 부채 규모를 정확히 알아야 연금 적립금이 얼마나 부족한지, 개혁을 어느 강도로 해야 할지 추진 동력을 얻을 수 있다.”
- 과연 이번에 연금 개혁이 가능할까.
-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개편안을 4개나 내다보니, 국회(정치권)도 무엇을 선택하지 못하고 개혁이 흐지부지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가급적 개혁안을 최소화해 개혁 가능성을 높이자는 언급을 했다. 그런데 현재 18개의 시나리오가 병렬식으로 제시되며, 연금개혁은 더 산으로 간 형국이다. 이번에도 시기를 놓치면 과거 문 정부 때보다 재정 안정화를 위한 보험료율 인상 폭이 적어도 5%포인트는 높아지게 된다. 10월 말까지 국민연금 개혁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까지 가급적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종합적인 방안을 도출했으면 한다.”
윤석명. 고려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텍사스 A&M대에서 미국 사회보장제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연금학회장을 지냈으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18년째 1급 연구위원을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