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이 자신의 생활 기반인 가족 관계와 혈연 관계까지 파괴하는 결과를 감내하면서까지 살인을 감행했다고 볼 수 있으려면 그만큼 강렬한 범행 유발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소아과 전문의 등의 진술에 비춰볼 때 피고인이 피해자의 건강 상태가 양호하지 못하는 사실을 인식하는 걸 넘어 피해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의 사망을 예견하였다고 인정하기엔 부족합니다.”
열두 살 의붓아들을 학대해 숨지게 한 계모에 대해 1심 법원이 살인죄가 아닌 치사죄로 보고 유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이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했던 사건이다.
인천지방법원 형사합의15부(부장 류호중)는 25일 이모 군을 50차례 학대해 살해한 혐의를 받는 계모 이모(43)씨에게 징역 17년을, 친부 이모(40)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두 사람 모두 구속 상태서 재판을 받아왔다.
계모 이씨는 이날 구치소 수감 중 출산한 신생아를 아기 띠에 메고 와 선고를 듣는 동안 매만졌다. 재판부는 “이씨는 친자식 2명에게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애정을 보였는데, 피해 아동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만을 살인을 통해 벗어나고자 했다고 보기에는 가정을 파괴하려 할만한 동기도 부족하다고 보인다”라고 했다.
검찰은 이씨에게 아동학대살해죄가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달 14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 이씨는 피해자를 분노 표출의 대상으로만 봤다. 범행 수법이 잔혹했다”며 “이 사건과 사실관계가 유사한 ‘정인이 사건’을 참고해 구형을 정했다”며 재판부에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날 “판례나 관련 증거를 비춰볼 때 이씨가 피해자를 살해하려는 고의가 미필적으로라도 있었다는 점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이 아동학대치사죄 등은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치사죄는 유죄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남편의 전처를 닮았다거나 자신이 유산한 원인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학대를 시작했다”며 “보호와 양육의 대상인 피해자를 자신의 분노 표출 대상으로 삼아 사망하게 한 행위는 그 자체로 반사회성과 반인륜성이 크다”고 밝혔다. 친부 이씨에 대해선 “아내의 학대 행위를 인지하고도 친부로서 피해자를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고 학대에 동조했다”며 “아동학대치사 혐의는 받고 있지 않아 사망에 따른 형사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피해자 방임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죄책이 무겁다”고 밝혔다.
선고가 내려지자 방청석에선 고성이 튀어나왔다. 한 남성은 “이 판결은 잘못됐다. 판사는 부끄럽지 않냐”고 소리쳐 류호중 부장판사가 “나가세요”라며 퇴장을 명령했다. 피고인들도 일시적으로 퇴장했다가 법정이 조용해진 후 다시 들어왔다. 류 부장판사는 이씨 부부에게 “피고인의 지속적인 학대로 피해자가 느꼈을 좌절과 슬픔은 알기 어렵다. 죄에 상응하는 기간 잘못을 참회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군의 친모는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에게 “어떻게 해야 살인죄가 인정되느냐”며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고 너무 힘들다”며 눈물을 쏟았다.
계모 이씨는 지난해 3월 9일부터 지난 2월 7일까지 11개월 동안 인천 남동구 자택에서 의붓아들 이군을 반복해서 때리는 등 50차례 학대해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그는 이군이 성경 필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자주 무릎을 꿇린 채 장시간 벌을 세웠고, 연필로 허벅지를 찌르거나 알루미늄 봉 등으로 온몸을 때리기도 했다. 이군은 숨지기 이틀 전 옷으로 눈이 가려진 채 16시간 동안 커튼 끈으로 의자에 손발이 묶여있었다. 친부 이씨도 2021년 4월부터 지난 1월까지 드럼채로 이군을 폭행하는 등 15차례 학대하고, 아내의 학대를 알고도 방임했다. 장기간 반복적으로 학대를 당하면서 38㎏(10살 당시)이던 이군의 몸무게는 사망 당일엔 29.5㎏으로 줄었다. 사망 당시 이군의 온몸에선 멍과 상처도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