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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압박 아니다" 한·미 돌연 '관리모드'…중국도 호응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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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18일(현지시간)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직후 한미 양국의 대중 메시지는 경쟁이 아닌 협력에 방점이 찍혔다. 연합뉴스

지난 18일(현지시간)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직후 한미 양국의 대중 메시지는 경쟁이 아닌 협력에 방점이 찍혔다. 연합뉴스

최근 한·미 양국의 대중(對中) 접근은 냉·온탕을 오간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중화인민공화국(PRC·중국)’을 명시해 압박 기조를 드러내고, 불과 며칠 만에 중국을 향한 유화 제스쳐를 취하는 식이다. 얼핏 말과 행동이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저지하면서도 경제 등이 긴밀히 얽혀 있는 중국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는 관리해야 하는 외교적 셈법이 작용한 결과다. 눈길을 끄는 건 이에 대한 중국의 반응 역시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경쟁 승리" 외친 美, 이젠 "공동이익" 강조

미 상무부는 지난 21일 수출 통제 전 단계인 ‘미검증 리스트’에서 중국 기업 27곳을 제외했다. 앞서 지난 2~3월 상무부는 중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이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우려 등 “국가 안보상의 이유”를 앞세워 중국 기업을 리스트에 추가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오는 27일 중국을 방문해 양국 경제 협력 과제를 논의한다. UPI=연합뉴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오는 27일 중국을 방문해 양국 경제 협력 과제를 논의한다. UPI=연합뉴스

하지만 상무부는 제품의 최종 소비자와 관련한 검증, 즉 전용 여부에 대한 확인이 마무리됐다며 불과 5개월만에 조치를 해제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해제 이튿날인 지난 22일 셰펑(謝鋒) 주미중국대사를 만났고, 오는 27~30일 중국을 방문한다.

이와 관련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2일 “러몬도 장관은 미국이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나 경기 침체를 원한다는 중국 일각의 시각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며 “미국은 우리의 국가안보를 보호하고 공급망을 보호하며 중국과 경제적 관계를 지속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중국은 즉각 환영했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22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기자와 문답 형태의 입장문에서 "중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노력해 중국 기업 27곳이 최종적으로 미검증 명단에서 제외됐다"며 "이것은 중·미 양국 기업이 정상적인 무역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고, 양측의 공동이익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명단 제외 조치 전 양국이 긴밀히 협의한 사실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명단 지정이나 해제는 사법적 절차에 준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봤을 때 해당 협의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전부터 이뤄졌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무·재무·상무 방중, 한국도 '中 관리 모드'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중 간 해빙을 언급한 이후 미 고위급 인사의 연쇄적 방중이 성사됐다. 연합뉴스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중 간 해빙을 언급한 이후 미 고위급 인사의 연쇄적 방중이 성사됐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안보 전략의 핵심 목표로 내걸었던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기조에 변화가 포착된 건 지난 5월부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아주 조만간 (미·중 관계가) 해빙되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변화 기류는 곧장 현실화했다. 미국의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중국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난 데 이어, 경제 사령탑인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까지 고위급 인사의 연쇄적 방중이 이뤄졌다.

미국에 이어 한국도 대중 접근법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냉각기를 깨고 협력과 소통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중 메시지가 이어지면서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

미국에 이어 한국도 대중 접근법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냉각기를 깨고 협력과 소통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중 메시지가 이어지면서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

미·중 관계가 ‘관리 모드’로 진입하며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이 논란이 된 이후 냉각기를 거쳤던 한·중 관계 역시 전환을 도모하는 모양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1일 연합뉴스TV에 출연해 “우린 중국과 성숙하고 건강한 관계를 원한다. 앞으로 소통을 통해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해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대중 압박 문구가 담긴 것에 대해선 “특정 국가를 배제하거나 특정 세력을 겨냥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를 운용하는 데 중국이든 러시아든 같이 갈 수 있으면 더 좋다”고 덧붙였다. 정부 차원의 메시지 발신에 이어 여당 역시 하태경·이용호 의원 등 방중단이 지난 21~23일 중국인민외교학회가 주최한 한·중고위지도자포럼에 참석했다.

APEC이 미·중-한·미 관계 분수령

한국의 유화 메시지에 중국도 호응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2일 박 장관의 발언에 대해 “한국 측이 중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이 중국 및 지역 국가와 함께 진영 대결의 낡은 모델을 거부하고 아시아태평양 협력의 새 전망을 열길 바란다”며 한국과의 협력 강화 의지를 내비쳤다. 중국 역시 관영매체 등을 동원해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는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전선이 확대되는 것은 원치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셈이다. ‘헝다발 부동산 위기’ 등으로 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국내적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오는 11월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언급된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에서 별도의 미중 정상회담을 개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F=연합뉴스

오는 11월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언급된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에서 별도의 미중 정상회담을 개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F=연합뉴스

러몬도 상무장관의 방중 결과와 오는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향후 미·중 관계의 방향성을 예측할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APEC 정상회의 계기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고, 양국 해빙 무드가 한층 진전된다면 자연스럽게 한·중 관계에도 훈풍이 불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순회의장국 정상 자격으로 올 연말 한·중·일 정상회의를 주최하고, 이를 발판 삼아 중국을 방문하는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초유의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은 현재로썬 중국과의 전면적 대결이나 갈등 격화는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고, 최근의 대중 행보 역시 전면적 충돌에 따른 신냉전 구도가 아닌 전략적 협력을 추구하는 방향”이라며 “한국 역시 대중 압박 정책의 최전선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 실용적 관점에서 협력 분야를 발굴하고 상호 신뢰를 강화하기 위한 소통 중심의 대중국 접근법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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