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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지영의 문화난장

‘개콘’ 부활… 유쾌한 시사풍자 살아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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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유튜브 채널 ‘스낵타운’의 이재율(왼쪽)과 강현석이 25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유튜브 채널 ‘스낵타운’의 이재율(왼쪽)과 강현석이 25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다른 플랫폼이 없으면 길거리에서라도 코미디를 할 생각이었다.”
 지난 17일 서울 서교동 메타코미디 사옥 지하 스튜디오에서 만난 ‘스낵타운’ 이재율(29)은 3년 전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2020년 6월 ‘개그콘서트’(이하 개콘)가 기약 없는 중단 선언을 하면서 KBS 마지막 공채 개그맨인 그는 활동 무대를 잃었다. 중학생 때부터 개그맨을 꿈꿨다는 그는 2018년 7월 개콘 ‘봉숭아학당’의 얌전한 모범생 ‘얌생이’ 캐릭터로 11명의 동기 중 가장 먼저 데뷔했다.이후로도 ‘전지적 구경 시점’ ‘봉시리’ ‘그럴 수 있어’ 등 개콘의 몇몇 코너에 출연했지만 그의 얼굴은 시청자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한때 35.3%(2003년 8월 31일 방송)까지 기록했던 개콘의 시청률이 2018년 5%대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재기 시험대에 선 TV 코미디
정치팬덤·젠더갈등 장벽 많아
tvN ‘코빅’은 내달부터 중단
TV 떠난 개그맨 유튜브 성업

이지영 논설위원

이지영 논설위원

이날 이재율은 2인조 만담 유튜브 채널 ‘스낵타운’의 또다른 멤버 강현석(31)과 함께 25일 개막하는 제11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하 부코페)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스낵타운’은 이번 페스티벌 기간 유튜브 채널 ‘빵송국’의 곽범ㆍ이창호와 함께 두 차례 ‘만담어셈블@부코페’ 공연을 한다.

이재율의 주무대는 이제 유튜브다. 지난해 1월 개설한 ‘스낵타운’의 구독자는 52만8000명, 지금까지 업로드된 618개 동영상의 총 조회수는 7억3500만 회다. 2019년 무렵 홍대 앞 소극장에서 코미디 공연을 하며 만난 강현석과 티키타카 펼쳐내는 만담이 메인 콘텐트다. 인지도와 수입 모두 개콘 시절보다 훨씬 높아졌다. 다음달부터는 전국 6개 도시를 돌며 ‘스낵타운’ 단독 공연도 펼칠 예정이다.

강현석은 개콘 출현이 꿈이었던 개그맨 지망생이었다. 스무 살 때부터 방송사 개그맨 공채에 계속 도전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개콘이 21년 역사를 뒤로 한 채 폐지됐을 때 너무 허탈했다고 했다. 하지만 한 문이 닫혔다고 생각한 그 순간, 또 다른 문이 열렸다. ‘피식대학’ ‘숏박스’ ‘장삐쭈’ 등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코미디 기획사 ‘메타코미디’의 정영준 대표가 개콘 시절 눈여겨봤던 이재율에게 채널 개설을 제안했고, 그와 소극장 생활을 함께한 강현석이 만담 듀오로 합류한 것이다.

개콘 없는 3년 동안 한국 코미디계는 지각 변동을 겪었다. 중심축이 완전히 유튜브로 옮겨갔다. 구독자 224만 명의 ‘피식대학’이 20일 공개한 ‘피식쇼’ 게스트는 손흥민이다. 업로드 사흘 만에 조회수는 300만 회를 넘어섰다. 그 직전 ‘피식쇼’(8월 13일 공개)의 게스트는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였다. 방송사를 능가하는 섭외력이다. 반면 유일한 TV 공개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남아있던 tvN ‘코미디빅리그’는 다음달 13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지기를 갖기로 했다. 시청률 1% 벽까지 무너진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다.

제11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포스터. 25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등에서 열린다. '숏박스' '빵송국' '등 인기 유튜브 채널에서 활동하는 개그맨들도 대거 참여한다. 사진 BICF

제11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포스터. 25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등에서 열린다. '숏박스' '빵송국' '등 인기 유튜브 채널에서 활동하는 개그맨들도 대거 참여한다. 사진 BICF

TV 코미디가 맥을 못 추는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다. 그 배경을 두고 공개 코미디란 ‘포맷’이 수명을 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일상을 사실감 있게 묘사해 웃음을 끌어내는 ‘하이퍼리얼리즘’ 코미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캐릭터를 설정해 연출된 연기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기존 코미디와 본질은 같다.

우리나라 최초의 TV 코미디 프로그램은 1969년 방송을 시작한  ‘웃으면 복이 와요’(MBC)다. 1985년 종영한 이후 두 차례 재개됐지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했다. 2005년 방송된 시즌3는 당시 대세였던 공개 코미디 형식을 가져왔는데도 시청률 난항에 시달리다 7개월 만에 종영하고 만다. 형식이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개콘도 올가을 복귀를 알렸다. 오는 11월 5일 첫 방송되는 개콘 시즌2는 다음달 3일 부산 해운대 영화의전당 부코페 폐막식 무대에서 파일럿 개념의 공연으로 선을 보인다.

개콘 공백기 유튜브 등에서 보여준 개그맨들의 역량은 그동안 이들이 TV 무대에서 얼마나 손발이 묶여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 됐다. 시청자가 직접 선택해 찾아보는 유튜브 콘텐트에 비해 보편적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소재와 표현 수위의 제약이 훨씬 많다. 정치인 팬덤의 눈치를 보느라 정치 풍자가 설 자리를 잃었고, 사회 양극화와 젠더 갈등, 혐오 문제 등이 심화하면서 아무한테도 욕먹지 않을 코미디 소재 찾기는 점점 힘들어졌다. 이 엄연한 현실 속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며 재미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웃음이 절실한 시대, TV 코미디의 부활이 시험대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