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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경쟁력 약화…잘나가던 독일 ‘유럽의 병자’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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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독일이 고령화와 수출 경쟁력 약화 등으로 침체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독일 베를린의 할인 마트 모습. [AFP=연합뉴스]

독일이 고령화와 수출 경쟁력 약화 등으로 침체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독일 베를린의 할인 마트 모습. [AFP=연합뉴스]

유럽 최대이자 세계 4위 경제 대국인 독일이 ‘유럽의 병자’가 될 위험에 놓였다는 경고음이 이어지고 있다. 고령화와 수출 경쟁력 약화 등 독일의 구조적인 문제가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고금리 같은 글로벌 변수와 맞물리면서 독일 경제가 침체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22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독일 중앙은행은 독일 경제가 올해 3분기에도 저조한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의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 분기 대비 0%(속보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0.4%)와 올해 1분기(-0.1%) 이어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하지 못했다.

글로벌 경제분석업체 컨센서스이코노믹스는 올해 독일 GDP가 전년보다 0.35%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2024년 성장률 전망치도 연초 예상했던 1.4%에서 0.86%로 하향 조정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이코노미스트 등 주요 외신은 독일 경제의 위기에 주목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말까지 독일 경제가 24% 성장할 때 영국은 22%, 프랑스는 18% 성장했다”면서 “유럽의 리더였던 독일이 이제는 후발 주자”라고 경고했다.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타블로이드 신문인 빌트 자이퉁은 최근 기사에 “도와주세요, 경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을 썼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독일 경제에 경고음이 커지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FT는 “인구 고령화, 노후화한 인프라 등 오랜 기간 이어진 구조적 문제가 우크라이나 전쟁, 전 세계적인 금리 상승 및 무역 위축 등과 맞물려 더욱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과 맞물려 독일에서는 필요한 인재가 점점 더 부족해지고 있다”고 했다.

독일은 제조업이 GDP의 20%가량을 차지한다. 미국, 프랑스 및 영국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수출 의존도도 높다. 높은 에너지 가격 탓에 독일의 화학·유리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의 생산이 지난해 초 이후 1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시장에서 독일의 주요 산업 경쟁력도 약화하고 있다는 평이다. 대표적으로 자동차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전기차 업체가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인건비 상승, 높은 세금, 관료주의, 공공 서비스의 디지털화 부족도 독일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꼽힌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 경쟁력 순위에 따르면 독일은 10년 전까지 64개국 가운데 상위 10위권이었지만, 현재는 22위까지 떨어졌다.

독일 경제의 반등을 기대하려면 구조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독일 은행 코메르츠방크의 요르그 크래머 수석 분석가는 “코로나19 위기를 제외하면 독일 경제의 부진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고 짚었다. 네덜란드 ING은행의 카르스텐 브르제스키 글로벌 매크로 책임자는 “독일은 포괄적인 구조 개혁 및 투자 계획이 필요하지만, 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독일의 경제 상황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짚는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제조업과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독일과 한국의 공통점”이라며 “신산업으로 전환하는 지금 같은 시기에는 기업들의 투자 리스크를 줄이는 정부의 산업 정책이 중요하다”고 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출산·고령화로 인력이 부족해지는 것에 대비해 이민 정책을 정비하고, 고등교육에 투자해 인적 자본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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