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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소연의 시인이 사랑한 단어

이승훈 ‘형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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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소연 시인

김소연 시인

시에 담긴 내용이 아니라 시의 형태와 평생을 싸워왔노라 고백했던 시인이 있다. 이승훈의 ‘나를 쳐라’라는 시에는 ‘결국 그동안 난 시를 쓴게 아니라 형태를 찾아 헤맸지’라는 문장이 있다. ‘형태를 찾아 헤맸’다는 표현은 ‘내용’을 등지려고 애써왔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로 읽어도 될 듯하다. 메시지를 제거한 언어가 어떤 식으로 시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실험했다는 고백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하다.

이승훈 시인은 시의 내용에 등을 돌리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 노력은 시인이 남긴 숱한 메타시(시에 대한 시)를 통해 빼곡하게 드러난다. 특히 서정을 믿지 않았고, 시의 전통이라 믿어온 것에 대하여 그 허구성을 짚어내는 글을 자주 남겼다. 이승훈은 이 세계에 가시적으로 대두되어 인류가 추구해온 거의 모든 것에 대한 공허함을 피력했다. 어쩌면 공허함 자체를 탐구했다고도 볼 수 있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그는 또한 우리 삶에 깃든 하루하루의 기쁨을 낯설고 날것인 문장으로 숱하게 시에 담았다. 그 시편들 속에서 시인은 자주 웃었다. 깊이도 무게도 넓이도 없이, 모래알처럼 자그마한 기쁨을 놓치지 않고 시에 남겼다. 그랬기 때문일까. 그의 시는 더없이 맑다. 아이의 눈동자처럼 투명하다.

‘나의 목적은 목적을 없애는 것이다’라 했던 그의 선언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시는 언어를 질료로 하는데, 언어에 목적이 없다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할 것이다. 가능성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불가능성을 목적으로 두는 일. 이것이 시의 본성임을 시인은 믿었고, 그 믿음을 추구했다. 이승훈은 한국 시인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목적에 다다르지 않았고 또한 완성을 추구하지 않았던 시인이었다. 무목적과 비완성-미완성이 아니다-이 그의 시정신이었다. 온전한 놀이로서의 시. 시의 욕망이 얼마만큼 순수해야 하는지, 이승훈의 시편을 다시 읽을 때마다 환기되고는 한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