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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빼고 공장 다 짓는다"…돌아온 '반도체 거인' 인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1일 말레이시아 페낭 산업단지에서 인텔의 반도체 후공정 신규 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이희권 기자

21일 말레이시아 페낭 산업단지에서 인텔의 반도체 후공정 신규 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이희권 기자

말레이시아 서쪽 끝 페낭섬. 이국적 정취와 다채로운 볼거리로 ‘동양의 진주’라 불릴 만큼 세계적인 관광지로 꼽히는 곳이다.

하지만 도심을 지나 자동차로 30분만 달리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21일(현지시간) 찾은 페낭 첨단산업단지엔 입구부터 보쉬‧히타치‧도시바‧웨스턴디지털 등 쟁쟁한 기업들의 공장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인에게는 낯설지만 말레이시아는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나라다.

‘반도체 후공정 허브’ 말레이시아

반도체 공급망에서 설계·장비 분야는 미국과 유럽, 소재는 일본,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한국과 대만이 주도한다. 말레이시아는 후공정(ATP, 조립·테스트·패키징) 분야에서 국가별 시장 점유율 13%를 차지하는 주요 플레이어다. 세계 각지에서 만들어진 칩을 조립(어셈블리)하고, 시장에 내놓기 전 테스트하는 반도체 생산의 마지막 작업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후공정 거점으로 점찍으면서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세계 6위 반도체 수출국에 올랐다.

21일 말레이시아 페낭 산업단지에서 인텔의 반도체 후공정 신규 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인텔이 독자 개발한 3D 반도체 패키징 기술 ‘포베로스’가 도입될 계획이다. 이희권 기자

21일 말레이시아 페낭 산업단지에서 인텔의 반도체 후공정 신규 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인텔이 독자 개발한 3D 반도체 패키징 기술 ‘포베로스’가 도입될 계획이다. 이희권 기자

산업단지 한가운데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약 2만 평으로 축구장 10개 크기에 달한다. 미국 인텔의 새로운 패키징 공장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하얀색 방진복을 머리부터 발끝부터 덮어 입은 직원들이 쉴 새 없이 오가며 칩을 조립하고 테스트하고 있었다. 테스트에 통과한 칩은 전 세계로 수출돼 고성능 서버, 노트북, PC 등에 들어간다. 말레이시아 페낭·쿨림 공장은 인텔의 첫 해외 거점이자 최대 반도체 후공정 기지로 꼽힌다. 인텔이 후공정 라인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첨단 패키징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후공정 기지의 중요성 역시 커졌다. 내년부터 미국에 이어 말레이시아에서도 인텔이 독자 개발한 차세대 3차원(3D) 패키징 공정이 도입된다. 인텔은 자사 제품에 첨단 패키징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물론, 패키징을 포함한 후공정만 따로 떼어 고객사에 별도의 파운드리 서비스로 내놓기로 했다.

인텔 말레이시아 페낭 후공정 공장에서 직원이 조립 공정을 끝낸 칩을 테스트하고 있다. 사진 인텔

인텔 말레이시아 페낭 후공정 공장에서 직원이 조립 공정을 끝낸 칩을 테스트하고 있다. 사진 인텔

이를 위해 2032년까지 말레이시아에 총 140억 달러(약 18조7700억원)를 투자한다. 인텔은 지난해 패키징 투자액에서 TSMC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스티브 롱 인텔 아시아태평양 총괄 부사장은 “말레이시아가 전 세계로 수출한 반도체의 5분의 1 이상이 인텔 제품”이라 말했다.

돌아온 ‘반도체 거인’…세계로 공장 확장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2021년 ‘종합반도체기업(IDM) 2.0’이라는 비전을 내놓고 파운드리에 재진출한 이후 인텔은 급속도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시장에서는 인텔의 복귀로 파운드리 시장이 향후 TSMC와 삼성전자, 인텔 ‘3강 체제’로 재편될 것으로 본다.

21일 말레이시아 페낭 인텔 공장에서 스티브 롱 인텔 아시아태평양 총괄 부사장이 취재진에 인텔의 파운드리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인텔은 내년까지 1.8나노(㎚·1㎚=10억 분의 1m)급 공정으로 점프해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 삼성전자를 제치고 기술 리더십을 되찾겠다고 밝혔다. 이희권 기자

21일 말레이시아 페낭 인텔 공장에서 스티브 롱 인텔 아시아태평양 총괄 부사장이 취재진에 인텔의 파운드리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인텔은 내년까지 1.8나노(㎚·1㎚=10억 분의 1m)급 공정으로 점프해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 삼성전자를 제치고 기술 리더십을 되찾겠다고 밝혔다. 이희권 기자

“1등 되찾을 때까지 쉬지 않겠다”

무엇보다 투자 행보가 심상치 않다. 최근 인텔이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짓거나 확장하겠다고 발표한 곳만 미국, 독일, 폴란드, 말레이시아 등 10여 곳에 이른다.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 패키징, 조립, 테스트까지 각 과정을 담당하는 공장을 세계 곳곳에 나눠서 짓고 있다. 사실상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대륙에 자체 공급망을 두는 셈이다. 대부분의 주력 시설을 본사가 있는 한국과 대만에 집중시킨 삼성전자, TSMC와는 대조적인 행보다. 인텔 관계자는 “갈수록 기술이 발달하고 반도체 생태계도 커지고 있다”면서 “복잡해지는 시장에 대응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 사진 인텔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 사진 인텔

초미세 공정에서도 치열한 3파전이 시작됐다. 인텔은 내년까지 1.8나노미터(㎚·1㎚=10억 분의 1m)급 공정으로 점프해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 삼성전자를 제치고 기술 리더십을 되찾겠다는 전략을 제시한 상태다. TSMC와 삼성은 2025년 2㎚급 공정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인텔 관계자는 이날 “1.8㎚ 구상은 문제 없이 순항 중”이라고 밝혔다. 팻 겔싱어 CEO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인텔이 다시 리더의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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