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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올해 확 늘어난 현수막, 쓰레기 대신 가방·파우치로 만들어요

중앙일보

입력

현수막은 특정 주장을 알리는 선전문, 어떤 요구나 주장을 간결한 형식으로 표현한 구호문 등을 적어서 길거리·건물 등에 걸어 놓은 천입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통행하는 공개된 장소에서 항상 또는 일정 기간 계속 노출되는 현수막은 일종의 옥외광고물로, 간판·디지털광고물·입간판·벽보·전단과 함께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의 규제를 받죠.

오윤서(왼쪽)·구시연 학생기자가 폐현수막을 활용한 업사이클링에 대해 배우고 폐현수막 에코백·파우치를 장식해봤다.

오윤서(왼쪽)·구시연 학생기자가 폐현수막을 활용한 업사이클링에 대해 배우고 폐현수막 에코백·파우치를 장식해봤다.

거리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다양한 종류의 현수막을 볼 수 있는데요. 2023년 상반기, 길거리에서 본 현수막이 2022년보다 늘어난 것 같지 않나요. 왜냐하면 실제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환경부가 전국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보고받은 철거 현수막을 집계한 결과 2023년 1분기(1~3월) 발생한 현수막은 1314.7톤에 달했어요. 가로로 길게 이어 붙이면 약 1만㎞로 지구 둘레의 1/4 수준이며, 넓이로 계산하면 여의도(면적 2.9㎢)를 3번 덮고도 남죠. 2023년 1분기에 사용된 현수막의 양은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1~4월에 발생한 현수막 1110.9톤보다 훨씬 늘어난 수치입니다. 보통 선거철에 현수막이 더 많이 거리에 걸리는 것을 생각하면 의아한 결과인데요. 여야가 정당 정책을 알리겠다는 명분으로 2022년 12월 옥외광고물법을 개정한 것이 영향을 미쳤죠.

원래 현수막을 공공장소에 걸려면 신청인이 해당 시·군·구에 현수막 게재 사실과 게재 기간을 신청하고, 허가(신고)증을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해요. 게재 기간이 끝난 현수막은 철거되죠. 이번에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정당이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하여 표시·설치한 현수막은 신고·허가가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수량과 규격에 대한 제한도 없어요. 실제로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등 중앙당은 옥외광고물법 개정 이전 6개월(2022년 6월 10일~12월 10일)과 비교했을 때, 법 통과 이후 6개월(2022년 12월 11일~2023년 6월 11일)간 훨씬 더 많은 현수막 시안을 시·도당에 하달했죠.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당 홍보, 지자체 정책 홍보, 업장 홍보용 현수막은 재활용이 어려워 대부분 소각·매립되는 쓰레기가 된다. 중앙포토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당 홍보, 지자체 정책 홍보, 업장 홍보용 현수막은 재활용이 어려워 대부분 소각·매립되는 쓰레기가 된다. 중앙포토

정당 현수막 외에도 업장 홍보, 지자체 정책 홍보, 각종 구호 등 다양한 용도로 길거리 곳곳에 현수막이 걸렸는데요. 이렇게 늘어난 현수막은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걸려 유용한 정보를 알려줄 때도 있지만, 너무 많은 현수막으로 인해 표지판이나 신호등이 가려지기도 합니다. 주요 교차로에 집중적으로 설치되거나 지나치게 낮게 설치되어 국민 안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는 거죠.

공해 수준으로 늘어난 현수막에 대한 민원이 증가하자 행정안전부는 2023년 5월 정당 현수막의 인정 범위를 명시하고, 정당 현수막 설치를 15일 이내로 제한하며, 교통신호기·도로표지를 가리거나 사고 취약지역인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에 설치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어디까지나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은 없죠.

폐현수막을 업사이클링해 패션 잡화를 만드는 브랜드에서 제작한 가방. 앙코르 프로젝트 홈페이지

폐현수막을 업사이클링해 패션 잡화를 만드는 브랜드에서 제작한 가방. 앙코르 프로젝트 홈페이지

무분별한 현수막 남용의 해악은 거리 미관을 해치거나 안전사고를 유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현수막은 주성분이 플라스틱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터로, 폐기되면 소각·매립됩니다. 하지만 플라스틱 성분이기 때문에 매립 시 잘 분해되지 않으며, 소각하면 온실가스·발암물질 등 유해 물질이 다량 배출됩니다. 게다가 현수막은 재활용 비율도 낮아요. 환경부의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분기에 발생한 현수막 1314.7톤 중 330.5톤, 즉 25.1%만 재활용됐어요.

이런 폐현수막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우리가 직접 업사이클링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오윤서·구시연 학생기자가 폐현수막 업사이클링을 배우기 위해 홍수아 길리길리 대표를 만났어요. 홍 대표는 업사이클링 제품과 친환경 소재로 만든 제품 제작·판매 및 업사이클링 교육을 진행하는 친환경 브랜드 길리길리를 운영하고 있죠.

폐현수막으로 만든 에코백을 생분해성 수지로 제작한 봉투로 포장한 모습. 이 봉투는 폐기 시 스스로 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간다. 길리길리

폐현수막으로 만든 에코백을 생분해성 수지로 제작한 봉투로 포장한 모습. 이 봉투는 폐기 시 스스로 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간다. 길리길리

시연 학생기자가 "대표님이 업사이클링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라고 궁금해했어요. "업사이클링은 쓰임을 다한 물건을 그냥 버리지 않고 아이디어와 기술을 더해 다른 물건으로 바꾸는 것을 말해요.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의 유행으로 밖에서 쇼핑하기 힘든 환경이었죠. 그래서 인터넷으로 쇼핑을 많이 했는데 내가 산 물건의 크기에 비해 포장재가 너무 많은 거예요. 즉, 내가 가지는 물건보다 버리는 물건이 많았죠. 그게 아깝기도 했고, 제 일곱 살 아들이 어른이 되면 이런 쓰레기들이 얼마나 많아질지 짐작도 안 돼서 무서웠어요. 저는 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에 버려지는 소재·물건들을 업사이클링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접근이 쉬웠어요. 이걸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면 50~100년 후 지구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업사이클링 교육을 시작하게 됐죠."

폐현수막을 활용해 만든 부채. 폐현수막은 재질이 두껍고 방수도 잘되기 때문에 부채 제작에 적합하다. 길리길리

폐현수막을 활용해 만든 부채. 폐현수막은 재질이 두껍고 방수도 잘되기 때문에 부채 제작에 적합하다. 길리길리

홍 대표의 설명을 듣던 윤서 학생기자가 "현수막으로 어떤 물건을 만들 수 있나요?"라고 물었어요. "현수막은 플라스틱 소재이며 길거리 등 외부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위생용품을 만들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만들 수 있어요. 가방·파우치·부채는 물론 쓰레기를 담을 수 있는 마대, 비가 왔을 때 하천의 범람을 막는 모래주머니 등도 현수막으로 만들 수 있죠."

실제로 현수막은 유명 패션 브랜드 제품의 재료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스위스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 국내 패션 브랜드 코오롱에서 런칭한 래;코드(RE;CODE), 패션 잡화 등을 제작하는 브랜드 앙코르 프로젝트의 공통점은 폐현수막, 재고 의류, 낙하산, 타이어 속 공기 튜브 등 생활 속에서 버려지거나 쓸모없어진 소재를 가방·액세서리·의류 등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라는 것이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지구와 환경 보호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폐현수막으로 만든 에코백·파우치를 장식해 봤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지구와 환경 보호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폐현수막으로 만든 에코백·파우치를 장식해 봤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이들처럼 폐현수막을 활용해 에코백과 파우치를 만드는 과정을 알아봤습니다. 두껍고 뻣뻣한 현수막의 특성상 안전을 위해 직접 재단·바느질을 하는 대신, 홍 대표가 에코백·파우치를 보여주며 폐현수막을 활용해 제작되는 과정을 설명했죠. "현수막으로 에코백·파우치 등을 만들려면 먼저 현수막에 붙어있던 각목·스테이플러침 등을 제거하고 필요한 면적만큼 자른 뒤 세척합니다. 원하는 에코백·파우치 모양으로 종이로 틀을 만든 다음 그 위에 현수막을 올려서 자른 뒤 바느질해요. 그러면 여러분이 지금 눈앞에서 본 에코백·파우치가 탄생하죠."

현수막 앞면에는 사진이나 문구를 인쇄한 뒤 코팅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에코백·파우치를 만들 때는 현수막 뒷면이 에코백·파우치의 표면이 되도록 합니다. 윤서·시연 학생기자는 천에 지워지지 않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패브릭 마카와 천으로 만든 스티커인 와펜을 이용해 에코백·파우치를 각자의 취향에 맞게 장식해 보기로 했어요.

폐현수막으로 만든 에코백·파우치는 패브릭 마카나 와펜 등을 활용해 자신의 취향에 맞게 꾸밀 수 있다.

폐현수막으로 만든 에코백·파우치는 패브릭 마카나 와펜 등을 활용해 자신의 취향에 맞게 꾸밀 수 있다.

윤서 학생기자는 업사이클링 실천을 통해 지구상의 여러 동물과 공존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에코백 표면에 하늘색 돌고래와 옥빛의 작은 고래를, 파우치에는 자신의 이니셜인 Y.S를 패브릭 마카로 그렸죠. 시연 학생기자는 에코백 표면에 업사이클링을 통해 지구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지구를 구합시다(Save the earth)"라는 문구를, 파우치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Wish you all the best)"라는 문구를 적었죠.

패브릭 마카로 원하는 그림·문구를 그리고 적은 뒤에는 와펜을 에코백이나 파우치 표면에 붙입니다. 파우치는 에코백에 비해 한 단계 더 품이 드는데요. 곰돌이 얼굴 모양 와펜를 붙인 뒤 고무줄끼우개로 파우치 입구에 미리 뚫어둔 구멍에 마끈을 넣고 조여줘야 해요. 소중 학생기자단을 지켜보던 홍 대표가 "파우치의 경우 와펜을 입구 쪽과는 좀 떨어진 곳에 붙이는 게 좋아요. 입구 부분은 끈을 넣어서 조여줄 거니까요"라고 말했죠.

폐현수막으로 만든 파우치는 고무줄끼우개로 파우치 입구에 마끈을 넣고 조이면 제작이 끝난다.

폐현수막으로 만든 파우치는 고무줄끼우개로 파우치 입구에 마끈을 넣고 조이면 제작이 끝난다.

"이렇게 만든 가방·파우치는 집에 가서 미지근한 물에 바디워시·주방세제를 소량만 넣고 세척해서 사용하는 게 좋아요. 폐현수막이 가방·파우치를 만들기 위해 제작된 천이 아니다 보니 처음 세탁할 때는 염료가 좀 빠질 수도 있거든요."

폐현수막으로 만든 에코백을 살펴보는 오윤서 학생기자. 폐현수막을 업사이클링할 때는 각목·스테이플러침 등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폐현수막으로 만든 에코백을 살펴보는 오윤서 학생기자. 폐현수막을 업사이클링할 때는 각목·스테이플러침 등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소중 학생기자단처럼 업사이클링용 폐현수막을 구하려면 지자체에서 설치 기간이 끝난 현수막을 시민들에게 무료로 가져갈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공고를 참고하면 돼요. 다 쓴 현수막이라도 소각·폐기하는 것보다 한 번 더 사용하는 것이 자원을 절약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니까요. 홍 대표는 현수막에서 각목·스테이플러 침을 제거한 뒤 용도에 맞게 재단하거나 바느질할 때는 안전을 위해 꼭 부모님 등 어른의 도움을 받으라고 당부했습니다.

구시연 학생기자가 폐현수막으로 만든 파우치를 들어 보였다. 쓰레기가 될 뻔했던 현수막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구시연 학생기자가 폐현수막으로 만든 파우치를 들어 보였다. 쓰레기가 될 뻔했던 현수막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지난달 학교 수업 시간에 헌 옷으로 에코백 만드는 활동을 하면서 업사이클링에 관심이 생겼어요. 마침 이번 취재가 업사이클링과 관련된 주제여서 더욱 기대했죠. 특히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현수막으로 업사이클링을 통해 예쁜 에코백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현수막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 쓰레기로 분류되어 소각장에서 태워지는데 이때 다이옥신과 같은 오염물질이 발생하여 환경오염의 주범이 된다고 해요. 홍수아 대표님께서 미래의 아이들이 더 깨끗한 환경에서 뛰어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일을 시작하셨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이번 취재를 통해서 업사이클링에 대한 생각의 폭이 넓어졌고 앞으로 환경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우리 모두 환경을 지키기 위한 가장 쉬운 일부터 차근차근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업사이클링이 그 시작이 되었으면 해요.

구시연(서울 월촌초 6) 학생기자

요즘 길거리에서 현수막이 자주 보입니다. 이 현수막들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수명이 다하면 대부분 쓰레기가 되기에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본 적 없어요. 현수막으로 가방·파우치·지갑 등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못 했죠. 제가 이번 취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환경문제입니다. 폐현수막처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땅에 매립된 후에도 분해되는 데 몇백 년이 걸리고, 분해된 뒤에도 미세 플라스틱으로 남아 자연과 동·식물 속에 남게 된다는 것이죠. 또 우리나라에 수많은 쓰레기 산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지금 우리가 편하게 사용한 플라스틱 제품들로 훼손된 지구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순 없지 않을까요?

오윤서(서울 원명초 6)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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