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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마다 헤드폰과 엽서·연필...오픈런 '성수동 카페'의 비밀 [비크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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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나 카페 문을 열었을 때 지나친 소음에 문을 닫고 되돌아 나온 경험이 있나요? 시각적 즐거움도 좋지만, 청각적 편안함을 주는 공간을 찾는 이들이 많아요.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다 보니,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때만큼이라도 ‘조용한 쉼’을 원하기 때문이죠.

공간으로 트렌드 읽기

소리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들이 주목받고 있다. 한 방향을 바라보도록 설계된 공간에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 사진 바이닐성수

소리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들이 주목받고 있다. 한 방향을 바라보도록 설계된 공간에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 사진 바이닐성수

그래서일까요. 최근 이렇게 ‘소리’에 공을 들인 공간들이 늘고 있어요. 오래된 LP 음반을 트는 카페나, 음악 선곡에 공을 들인 뮤직 바(BAR) 같은 곳이죠. 영화관 중에서도 유독 음질에 집중한 사운드 특화 극장이 있는가 하면, 휴식을 위해 찾는 리조트에 소리로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기도 해요. 오늘은 이렇게 소리가 주인공인 공간들을 둘러보고, 지금 왜 이런 공간들이 주목받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음악 들으며 ‘필담’ 나누기

서울 성수동 뚝섬역 인근의 ‘바이닐 성수’는 주말이면 긴 웨이팅 리스트가 생길 정도로 인기인 카페예요. 하지만 여느 카페와는 다른 점이 있어요. 커피나 음료를 팔고, 편안한 자리에 앉아서 즐기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공간에 ‘적막’이 흐른다는 점이죠.

비결은 자리마다 있는 턴테이블과 헤드폰입니다. 모두가 창가를 바라보고 나란히 놓여있는 의자들도 한몫하고요. 이곳에 입장하는 손님들은 2시간 동안 자유롭게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어요. 뒤쪽에 진열된 LP판 중에서 마음에 드는 음반을 골라 자리에서 헤드폰으로 ‘자신만의 BGM(배경음악)’을 틀어놓고 감상하는 시스템입니다. 모두가 헤드폰 속 음악에 집중하다 보니, 어떤 카페보다도 조용한 것이 특징이에요.

자리마다 놓여있는 턴테이블을 2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다. OST부터 K팝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반이 구비되어 있다. 유지연 기자

자리마다 놓여있는 턴테이블을 2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다. OST부터 K팝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반이 구비되어 있다. 유지연 기자

주로 커플들이 많이 찾는다는 이곳만의 특별한 소통 방식도 있어요. 바로 카운터에 마련된 작은 엽서와 연필이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는 헤드폰을 낀 채 ‘필담’을 나누면 되는 거예요. 물론 혼자 와서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요.

이곳은 성수동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평일에만 평균 200여명, 주말이면 하루 400여명이 찾는다고 해요. 오전 11시 오픈하자마자 100여석의 좌석이 빠르게 차 긴 대기 줄이 늘어서는 것은 물론이고요.

서촌의 숨겨진 음악 감상실

서울 경복궁 인근의 ‘온그라운드 뮤직바’는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기 위한 ‘힐링’ 장소로 제격이에요. 서촌 작은 골목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도로변 카페 건물 뒤로 지하로 통하는 입구가 있어요. 간판도 없어서 아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스피크 이지 바’ 같은 곳이죠. 지하 계단을 따라 들어간 내부도 비밀스러운 아지트 같은 분위기에요. 누군가의 응접실에 초대된 듯 아늑하면서도, 어른의 공간 같은 세련된 멋이 흘러요.

실제로 이곳은 조병수 건축가의 건물로, 처음부터 일반에 공개된 1층 카페와 달리 지하 1층 음악 감상실은 개인적으로 음악을 듣는 장소로 쓰려고 만들었다고 해요. 벽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스피커를 두고, 또 한쪽 벽에는 즐겨 드는 LP 음반으로 가득 채웠죠. 약 2년 전부터 개방되면서, 누구나 들러 편안하게 음악을 듣고, 음료도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이 됐어요.

간판없는 서촌의 음악감상실 온그라운드 뮤직바 전경. 사진 온그라운드 뮤직바

간판없는 서촌의 음악감상실 온그라운드 뮤직바 전경. 사진 온그라운드 뮤직바

온그라운드 뮤직바는 정적이 감도는 조용한 공간은 아니에요. 오히려 음악으로 꽉 찬 공간이죠. 하지만 좋은 스피커로 재생되는 질 좋은 음악이 공간을 가득 채우다 보니, 다른 소리가 차단되는 효과가 있어요. 간접조명만 드문드문 켜져 있는 낮은 조도와 건축가의 응접실답게 르 꼬르뷔지에·임스 등 거장 디자이너의 아트 피스들에 몸을 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죠.

영화를 듣다

‘보기 위한’ 영화관이 아니라 ‘듣기 위한’ 영화관도 있어요.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사운즈 5층의 ‘오르페오’가 그곳이죠. 음향을 기반으로 다양한 공간을 운영하는 ‘오드(ODE)’가 만든 음악 콘텐트 전문 상영관이에요. 오드는 하이엔드 및 라이프스타일 오디오를 국내에 소개하고 있는 사운드 플랫폼입니다.

160년 전통의 그랜드 피아노 제조사 스타인웨이앤드선스와의 합작으로 화제가된 덴마크 하이엔드 시스템 스타인웨이 링돌프로 구성되어 있는 오디오 시스템. 사진 오르페오

160년 전통의 그랜드 피아노 제조사 스타인웨이앤드선스와의 합작으로 화제가된 덴마크 하이엔드 시스템 스타인웨이 링돌프로 구성되어 있는 오디오 시스템. 사진 오르페오

약 30여석으로 구성된 소규모 영화관 오르페오의 강점은 ‘음향’입니다. 덴마크 하이엔드 사운드 시스템 스타인웨이링돌프를 비롯해 무려 34개의 하이엔드 스피커가 공간 곳곳에 자리하고 있죠.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는 내내 음악이 몸을 관통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야말로 압도적인 ‘사운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죠. 김형민 오르페오 담당자는 “외부와 차단된 채 소리에 몸을 맡김으로써, 몰입과 집중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합니다.

오르페오는 일반 영화관처럼 상영 시간표가 있고, 인스타그램이나 카카톡을 통해 예약한 뒤 방문하면 됩니다. 물론 음향이 중요한 작품들이 주로 상영되죠. 최근에는 영화 음악의 거장, 엔리오모리꼬네의 생애를 다룬 ‘엔리오, 더 마에스트로’가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어요.

스마트폰은 잠시 쉬어도 좋습니다

잘 쉬기 위해 소리를 이용하는 곳도 있어요. 강원도 정선의 웰니스(wellness·건강) 리조트, 파크로쉬는 리조트 안에 오디오 룸을 따로 구성해뒀어요. ‘글라스하우스’로 불리는 이곳은 미국 카네기홀 등 세계적 콘서트홀에서 사용하는 메이어사운드 스피커를 설치해 섬세하면서도 웅장한 소리 속에서 진짜 ‘쉼’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공간이죠. 전면 통유리를 통해 주변 자작나무 숲을 감상하면서 공간을 꽉 채운 음악 속에서 사색을 즐기는 투숙객들이 많다고 합니다.

글라스하우스는 건강한 쉼을 위한 '사운드 테라피' 공간이다. 사진 파크로쉬

글라스하우스는 건강한 쉼을 위한 '사운드 테라피' 공간이다. 사진 파크로쉬

한동안 화려한 인테리어의 공간들이 사람들을 모았다면, 이제는 깊은 소리의 공간들이 사람들을 모으고 있어요. 시각 못지않게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음향의 효과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거죠. 시각적 화려함이 흔해진 만큼, 소리가 좋은 공간을 만드는 차별화 포인트가 됐어요.

또한 이런 소리 특화 공간은 집중력 저하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한 요즘 같은 시대에 의미를 더합니다. 요한 하리의 책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는 각종 소셜미디어와 멀티 태스킹 등으로 집중력 저하가 사회적 유행병이 되었다고 지적해요. 이 책이 지금 화제가 되는 이유는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가 시시각각 타들어 가는 집중력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죠.

소리 특화 공간은 다시 말해 소리가 없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공간을 채우는 소리를 ‘수신’하기 위해 다른 소리를 ‘발신’하지 않고 오롯이 집중한다는 점에서요. 또한 늘 손을 떠나지 않는 스마트폰도 잠시 쉬게 할 수 있죠.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따로 ‘인증샷’을 찍을 수도 없으니까요. 소음 가득한 도심에서 드문 집중과 몰입, 정신적 쉼을 얻어갈 수 있는 소리 특화 공간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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