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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알이 죽여놓고 50만원 주네요"...물건으로 치는 반려견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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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아파트 단지 내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14살 말티즈 콩알이. 김서연(58)씨는 십여년 전 펫샵에서 버려진 콩알이를 데려와 자식처럼 길렀다. [독자 제공]

지난 1일 아파트 단지 내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14살 말티즈 콩알이. 김서연(58)씨는 십여년 전 펫샵에서 버려진 콩알이를 데려와 자식처럼 길렀다. [독자 제공]

서울 옥수동에 사는 김서연(58)씨는 지난 1일 아파트 단지에서 반려견을 산책 시키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지나가던 차가 운전 미숙으로 인도를 덮치면서 14살 몰티즈 ‘콩알이’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가해자측 보험사는 “강아지는 현행법상 ‘대물(물건)’로 치기 때문에 별도의 위로금 지급은 불가능하다”며 50만원 안팎의 금액을 보상금으로 제시했다. 김씨는“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는데 사과 한 번 안 하는 운전자도 괘씸하고, 콩알이가 죽는 순간까지 물건 취급을 당하는 것도 속상하다”며 “돈 때문이 아니라 억울해서라도 민사소송을 제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제 소송에 나선다면 김씨는 콩알이의 죽음을 ‘재산상 손실’ 이상의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최근 각종 반려동물 사망 사고를 둘러싸고 반려동물 상실에 따른 정신적 손해 배상, 즉 위자료 인정 여부와 그 적정선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여름휴가 기간, 애견호텔에 맡긴 푸들이 사망한 뒤 민사소송을 제기한 김승환(37)씨는 최근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민사12단독 서범준 판사는 지난달 “위탁업체의 책임이 인정된다”며 “위로금 성격의 배상금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타인의 개에 물려 사망한 견주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치료비·장례비 외에 위자료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결론 낸 2020년 수원지법 판결에 비해 더 큰 배상액이 인정된 것이다. 서 판사는 “반려견이 민법상 물건에 해당하긴 하지만, 반려견 소유자는 반려견과 정신적 유대감·애정을 나눈다. 재산적 손해배상만으로는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봐야한다”고 이유를 붙였다.

최근 법원이 반려견 사망에 따른 정신적 손해를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지만 반려인들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관련 소송을 다수 맡았던 조찬형 변호사는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는 50만원~500만원 사이여서 소송 비용 등을 감안하면 반려인 입장에선 실익이 없다”며 “소송 결과에 충격을 받는 경우가 적잖다”고 말했다. 울며겨자먹기로 소송보다는 합의로 기우는 반려인들이 많은 것도 그래서다. A씨는 3월 한 애견 업체에 닷새간 반려견을 맡겼다가 반려견이 슬개골이 다친 걸 발견했다. A씨는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 업체 측 잘못도 확인했다. 하지만 “소송비 빼면 남는게 없다”는 얘기를 듣고 수술비를 받는 선에서 업체 측과 합의했다.

반면 위자료를 올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 역시 만만치 않다. 남양주시에서 애견호텔을 운영하는 B씨는 “사고 한 번 날 때마다 위자료 수백만 원씩을 물어주고 나면 손해가 극심하다”며 “무턱대고 위자료를 높이면 노견이나 병이 있는 강아지를 업체가 위탁받는 걸 꺼리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교통사고로 피해자가 사망해도 유족에게 인정되는 위자료가 1억원이 채 안되는 재판 관행을 감안하면 반려동물 사망시 인정되는 위자료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홍완식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국민 중에 동물에 대한 반감을 가진 사람도 분명히 있고, 판사 입장에서 이런 국민 법감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에 맡기기 보다는 입법을 통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물법을 전공한 함태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본적으로는 민법에 사람과 물건의 중간 개념인 동물을 추가해야 한다”며 “한국 사회에 반려가구가 급속히 늘고 있는 만큼 관련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선진국처럼 법체계를 동물 친화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실제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 등에선 민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3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신설하는 민법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법무부도 같은 해 10월 같은 내용이 담긴 법안을 내놨다. 하지만 당시 법원행정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영업상 사육하고 있는 동물 등 다양한 종류나 관리 형태의 동물이 존재해 일률적으로 물건성 여부를 규율할 수는 없다”는 등의 이유로 법 개정에 대한 ‘신중검토’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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