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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잼버리 화장실’의 재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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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주필

최훈 주필

새만금 잼버리 직후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이런 말을 했다. “영국 대표단이 캠프 철수를 정당화하기 위해 화장실 문제를 더욱 부각시킨 것 같다.” 행사 초반 현장의 한덕수 총리가 화장실을 거론하자 곁의 김현숙 공동조직위원장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화장실 문제, 그건 (조직위의 거버넌스 혼선 등에 비해) 마이너한 문제다.” 과연 그런 것일까.

가장 복잡, 불안한 심리 공간의
첫인상에서 잼버리 운명 결정돼
인간 원초적 욕구의 현장 못챙긴
공직 사회, 반면교사로 성찰하길

잼버리의 종주국 영국은 개막 닷새 만에 4400여 명의 스카우트들을 가장 먼저 캠프에서 철수시켰다. 맷 하이드 영국 스카우트연맹 대표는 직후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철수의 일성으로 화장실을 거론했다. “청소가 충분히 자주 이뤄지지 않아 걱정스러웠다. 비누도 없고, 안전하지도 않았으며,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영국은 잼버리뿐 아니라 수세식 양변기 화장실의 종주국이다. 근대적 수세식 변기를 1596년 영국의 존 해링턴 경이 처음 고안했다. 윗부분에 물통이 있고, 물을 흘러가게 하는 손잡이, 배설물을 분뇨통으로 흘려보낼 밸브로 구성됐다. 밑에서 올라온 냄새가 심한 게 단점이었다. 1775년 영국의 시계제조공인 알렉산더 커밍스가 요즘 우리가 보는 S자형 밸브 같은 구부러진 배수 파이프를 보완했다. 분뇨를 밀어낸 파이프 중간엔 새 물이 고여 악취를 차단했다. 200여 년에 걸친 개량으로 ‘배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 영국이었다.

영국인들에게 “인류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이 뭔가”를 물었다. 놀랍게도 화장실이 산업혁명 시대를 연 ‘열기관(10위)’을 누른 9위였다. 역시 배설의 욕구와 관련된 두루마리 휴지가 22위, 기저귀는 62위.(닉 해즐럼, 『화장실의 심리학』) 두루마리 휴지는 기차·펜·신발보다 위였다. 기저귀는 식빵(70위), 페이스북(82위)보다 더 소중했다. 일상의 기본 욕구를 편리, 편안하게 도와준 게 가장 소중하다는 얘기다. 화장실에 관해선 할 말이 꽤 많을 선진 영국의 청소년들이 이역 만리의 불결을 마주친 첫인상에서 이미 잼버리의 운명은 결정됐다.

화장실은 매우 복잡한 심리의 공간이다. 기본 욕구를 해소하며 생각을 정리해 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릴 수도 있는 나만의 공간이다. 서양에서 휴식의 공간(rest room)이라 부른 이유 같기도 하다. 동양에서는 정랑(淨廊), 정방(淨房), 매화간(梅花間)이라는 고상한 이름도 붙여주었다. 불교 사찰의 해우소(解憂所, 근심을 해소하는 장소)야말로 절정이다. 요즘은 화장실의 첫인상이 거꾸로 그 레스토랑 요리와 숙소 주인의 품격을 일러준다.

반면 과민성대장증후군, 변비 등의 질병과 병균 등 위생에 초점이 옮겨가면 화장실은 순식간에 불안의 공간이 돼 버린다. 집 안에서조차 “양변기 깔개를 왜 안 올리느냐”는 다툼이 가정 평화를 깨트리곤 한다. 이게 공중화장실로 옮겨가면. 그 불안감은 폭증한다. 상상 속의 찝찝함 탓이다.

다시 새만금. 인간의 하루 평균 용변은 6분씩 4~7회. 6회로 잡고 4만2000여명의 스카우트와 8000명의 자원봉사자 등의 하루 화장실 이용은 30만 번이 넘는다. 그런데 설치한 건 달랑 354개. 이 불쌍한 화장실 한 개가 하루 1000회 가까운 용변을 버텨내야 했다. 관리 인원은 70명. 2개 조이니 1인당 10개씩 관리다. 2019년 새만금개발청이 참관한 웨스트버지니아 잼버리의 화장실은 8배에 가까운 2700여 개. 전문관리요원들이 함께 배치됐다. 우리 공무원들? 가서 보곤 그냥 끝이다. 그러니 여기서 터졌다.

한덕수 총리가 다급하게 점검에 나섰다. 변기 청소하는 장면이 보도됐다. 예전 시대 같으면 “74세 고령 총리가 오죽 답답했으면 직접 나섰겠는가”다. “솔선수범” “현장 행정”으로 상찬받을 일이었다. 그런데 달라진 시대의 여론은 초점이 달랐다. “얼마나 공직사회가 영(令)이 안 서고, 안 움직이고, 현장 챙기는 이도 없으면 총리가 변기 오물까지 닦는 지경인가”였다. 전북 주변 공무원들 청소 동원령이 내려지자 공무원 노조에선 “우리가 뒤처리 공노비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부랴부랴 일당 20만원의 화장실 청소 알바를 급구하면서 오랜 공문서 양식대로 ‘경력자 우대’를 병기했다. “정말 코미디 같은 공직자들”이란 조소가 나왔다. 충격이 컸던지 한 총리가 상암 월드컵경기장 폐영식에 가장 먼저 들른 곳도 화장실이다.

‘공(公)’자 들어간 것치고 괜찮은 게 없어진 사회다. 뭔가 좀 모자라고 갑갑한 상태의 상징인지 오래다. ‘공무원스럽다’ ‘관공서 일처리하듯’ ‘공공 화장실 냄새’ ‘공교육’ ‘공립학교 교실’ ‘LH 순살 공공 주택’ 등등. 심지어 ‘공영방송’도 “볼 게없다”며 받은 외면 한참이다. 치열한 경쟁과 자기 혁신 속의 ‘민간’과 갈수록 대척이다. 그런데도 기득권·규제 등 공(公)이 누리는 것은 물론 그대로다. 우리 공직 사회가 진정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게 이 ‘잼버리 화장실’이다. 작은 일 못하는데 어찌 큰일 해내겠나. 성찰 없이 무슨 미래가 있나. 전북지사님, 여가부 장관님께 되묻는다. “화장실이 진짜 철수의 핑곗거리인지” “그렇게도 마이너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