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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웹툰 번영 속 위기: 네이버·카카오 천하 글로벌 플랫폼에 애플·아마존 등 참전. 종주국 지위 지키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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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3호 12면

한국 웹툰 번영 속 위기

8월 18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스크걸’이 공개됐다. 고현정·나나·이한별이 3인 1역을 하는 독특한 드라마로서,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 디즈니플러스에서는 카카오 웹툰 ‘무빙’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드라마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웹툰을 자양분으로 한 K콘텐트의 강세는 여전하다. 문제는 넷플릭스 같은 강력한 글로벌 플랫폼의 부재다. 지난 12일 ‘한국 영화 명가’ CJ ENM의 2분기 연속 적자 소식 이후 ‘K콘텐트 위기론’ ‘글로벌OTT 하청기지 전락설’ 등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구원투수를 자처한 쪽 또한 웹툰계다. 웹툰, 즉 스크롤을 내리며 세로로 보는 온라인 디지털 만화는 한국에서 2000년대 초반 탄생한 것으로, 한국이 글로벌 플랫폼을 주도하는 거의 유일한 콘텐트 분야다. 2020년 본사를 아예 미국으로 옮기고 내년 미국 증시 상장을 목표로 하는 네이버웹툰의 김준구 대표는 지난 1월과 4월 기자간담회에서 이미 네이버웹툰의 북미 점유율이 압도적이어서, 경쟁자는 다른 웹툰 플랫폼이 아닌 “넷플릭스 같은 다른 콘텐트 플레이어”라며 “이용자의 시간 점유를 놓고 거대 글로벌 플랫폼과 싸움을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다”고 밝혔다.

네이버웹툰은 이미 한국 작품의 번역·수출을 넘어서서 넷플릭스처럼 현지 콘텐트를 적극 발굴하는 단계에 와 있다. 뉴질랜드 작가 레이첼 스마이스의 로맨스 판타지 ‘로어 올림푸스(Lore Olympus)’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달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미국 아이스너상(Eisner Awards)의 웹만화 부문을 2년 연속 수상했다.

네이버웹툰 북미 플랫폼이 발굴한 뉴질랜드 작가 레이첼 스마이스 작가의 ‘로어 올림푸스’. 미국의 3대 만화상이라 불리는 '아이즈너상' '하비상' '링고상'을 모두 휩쓸었으며, 그래픽노블 출판본도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한국 네이버웹툰에서도 연재 중인데, 영어권 국가들에서의 큰 인기에 비해서는 인기가 적은 편이다. 이는 웹툰 현지화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사진 네이버웹툰]

네이버웹툰 북미 플랫폼이 발굴한 뉴질랜드 작가 레이첼 스마이스 작가의 ‘로어 올림푸스’. 미국의 3대 만화상이라 불리는 '아이즈너상' '하비상' '링고상'을 모두 휩쓸었으며, 그래픽노블 출판본도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한국 네이버웹툰에서도 연재 중인데, 영어권 국가들에서의 큰 인기에 비해서는 인기가 적은 편이다. 이는 웹툰 현지화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사진 네이버웹툰]

네이버웹툰 북미 플랫폼이 발굴한 영국 작가 마이크 버첼의 디스토피아 웹툰 '에브리띵 이스 파인'의 그래픽노블 출간본. 현재 한국 네이버웹툰에서도 연재 중이며 한국에서는 '로어 올림푸스'보다 인기가 많다.  [사진 아마존]

네이버웹툰 북미 플랫폼이 발굴한 영국 작가 마이크 버첼의 디스토피아 웹툰 '에브리띵 이스 파인'의 그래픽노블 출간본. 현재 한국 네이버웹툰에서도 연재 중이며 한국에서는 '로어 올림푸스'보다 인기가 많다. [사진 아마존]

뿐만 아니라 후보에 오른 총 5개 작품 중 ‘로어 올림푸스’, ‘만나몽’(미국), ‘스포어스’(캐나다) 등 3개 작품이 네이버웹툰의 아마추어 작가 플랫폼 ‘캔버스’에서 발굴된 것이었다. 지난 11일 발표된 하비상 (Harvey Awards) 후보에는 이 상을 이미 2번 수상한 ‘로어 올림푸스’와 함께, 캔버스를 통해 발굴된 디스토피아 웹툰 ‘에브리띵 이즈 파인(Everything Is Fine)’이 올라가 있다.

한편 카카오가 운영하는 웹툰 플랫폼 ‘픽코마’는 2023년 상반기 모바일 앱 소비자 지출 순위에서 일본 1위에 올랐다. (데이터·분석 플랫폼 데이터닷에이아이(data.ai) 집계) 지금 일본 만화 앱 시장에서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약진은 세계 만화 시장에서 아직 웹툰이 보편화되지 않아서 막강한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디지털만화 판매는 2021년 기준 1억 7000만 달러(2280억 원)로 전년보다 증가했지만 아직 미국 전체 만화 시장의 8%에 불과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 『2022 만화산업백서』) 한국의 경우 같은 해 온라인 만화 매출이 1조832억원으로 출판 만화 매출의 약 2배인 것과 대조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콘텐츠산업 조사’)

그러나 북미를 포함한 세계 웹툰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는 추세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스페리컬 인사이츠 & 컨설팅에 따르면 글로벌 웹툰 시장은 2021년에 47억 달러(약 6조 원) 규모에 이르렀으며 연평균 41%씩 성장해서 2030년에는 601억 달러(약 80조 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웹툰에서 파생된 영화·드라마 시장까지 감안하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진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글로벌 경쟁자 등장의 명암

이런 가운데, 만화를 ‘제9의 예술’로 부르며 중요시하는 프랑스가 웹툰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올랐다. 지난 7월 중순 파리에서 열린 만화·게임 축제 ‘재팬 엑스포-어메이징 페스티벌(사진)’에서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픽코마는 세로로 보는 만화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축제 한 달 전인 6월에는, 프랑스의 디즈니 만화 라이선스 잡지 ‘픽소 매거진’이 모바일 앱 ‘덕툰’을 신규 출시했다. 미키마우스와 도널드덕 등 디즈니 대표 캐릭터의 만화를 웹툰 형태의 세로 만화로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글로벌 빅테크인 애플과 아마존도 웹툰 시장에 뛰어들었다. 애플의 전자책 앱 애플북스는 지난해 12월 한국의 웹툰 창작 스튜디오 케나즈와 3년 독점 계약을 체결하고 올해 4월에 일본에서 애플북스 ‘세로로 읽는 만화(縦読みマンガ)’ 페이지를 신설했다. 또한 이 서비스를 하반기 북미를 비롯해서 51개 국가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마존은 3월에 웹툰 형식의 ‘플립툰’ 서비스를 일본에서 시작했다.

“글로벌 빅테크의 참여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고 홍익대학교 경영대학원의 고정민 교수는 말했다. “이들은 ‘웹툰’이라는 용어를 배제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이 만든 ‘웹툰’ 단어가 사라질 위험에 있다. 또한 지금 적자를 기록하는 있는 한국 웹툰 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을 우려가 있다. 반면에 빅테크의 참여는 결국 콘텐트 제작자인 작가들에게 이익이며, 웹툰이 주류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이 웹툰 종주국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웹툰을 작가뿐만 아니라 스튜디오·에이전시·플랫폼 등으로 구성된 기업 생태계로 이해하고 고도의 전문화·분업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고 교수는 더붙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웹툰 상생 생태계 구축

또한 현재 웹툰시장의 번영 속에 잠재한 위험 요소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한다. 첫째는 작가와 다양한 웹툰 기업들 간의 ‘상생’ 생태계 문제다. 네이버·카카오는 수익의 60-70%를 콘텐트 제공자에게 배분해 작가친화적이라고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작가가 네이버·카카오 등 플랫폼과 직접 계약을 맺고 연재를 하던 것과 달리 최근 연재작들은 대다수가 콘텐트 제작사(CP)를 통해 제작되는데, CP가 이 수익을 작가에게 어떻게 분배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콘진원이 발표한 ‘2022 웹툰 사업체·작가·불공정 계약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 작가 59%가 불공정 계약이나 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와 관련해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은 “갑질과 불공정 등 부정적인 면만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며 “웹툰산업이 오히려 다른 문화산업보다 서면계약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체부가 추진 중인 웹툰 표준계약서 제·개정에 대해서 “표준계약서 자체에 반대하지 않으나 웹툰은 제작 주체의 기여도 비중이 작품마다 크게 다르기 때문에 이 다양함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AI 웹툰은 피할 수 없는 흐름

한국 웹툰계의 둘째 리스크는 웹툰 생태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생성형 인공지능(AI) 문제다. 고 교수는 한국이 웹툰 종주국 위치를 지키려면 “AI를 선제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작가들이 AI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만화평론가인 박세현 팬덤북스 대표는 “AI에 대해 작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갈린다”며 “이미 인기 있는 작가나 대량 생산 작가들은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 AI를 적극 받아들인다. 반면 신규 작가들은 AI에게 생계를 빼앗기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일례로 만화 거장 이현세 작가는 자신의 그림체를 AI에게 학습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네이버웹툰의 인기 작가들은 자신의 그림체를 AI에게 학습시켜 사진을 그림으로 바꿔주는 ‘툰필터’ 서비스 출시에 동의했다. 반면에 지난 5월 신규 네이버 웹툰 ‘신과 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이 AI 생성 이미지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퍼지면서 독자들이 분노의 별점 테러를 하고 아마추어 작가들이 도전만화에서 항의 릴레이를 펼치는 사건이 있었다. 오는 24일 네이버가 초거대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할 계획이라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박 대표는 “작가들의 심정과 우려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술의 발전을 피할 수는 없다”면서 “이미 웹툰 스튜디오에서 분업화·전문화가 돼 있고 클립스튜디오(채색), 포토샵, 스케치업(3D 모델링) 등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성형 AI는 그 연장선이 될 것이다. 이미 웹툰 생성 AI 프로그램을 만든 곳이 몇 군데 있다. 자연스러운 연속 장면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과제지만 발전 속도가 빨라 내년부터 서서히 상용화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박 대표는 “물론 작가협회와의 논의와 조율 등이 필요할 것”이라며 “작가들은 AI가 무작위로 데이터베이스를 학습하는 데 따른 저작권 침해를 걱정하는데, 이러한 원천 저작권이 어느 정도까지 존중될 수 있는가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미 (독창적인 웹툰과 양산형 웹툰의) 시장은 나뉘어 있고 독창적인 쪽은 별로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7월 프랑스 파리 '재팬 엑스포-어메이징 페스티벌'에 참가한 네이버웹툰의 부스에서 '툰필터'를 체험해보는 관람객들. [사진 네이버웹툰 제공]

지난 7월 프랑스 파리 '재팬 엑스포-어메이징 페스티벌'에 참가한 네이버웹툰의 부스에서 '툰필터'를 체험해보는 관람객들. [사진 네이버웹툰 제공]

지난 6월 네이버웹툰 '도전만화'에서 작가들이 AI 웹툰에 항의하는 릴레이를 벌이고 있다.  [네이버웹툰 화면 캡처]

지난 6월 네이버웹툰 '도전만화'에서 작가들이 AI 웹툰에 항의하는 릴레이를 벌이고 있다. [네이버웹툰 화면 캡처]

다양성을 위한 유튜브식 플랫폼 도입

한국 웹툰계의 셋째 리스크는 양산형 웹툰이 늘어나는 가운데 콘텐트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김은권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가 한 가지 예로 제시하는 것은 네이버웹툰 북미판의 캔버스의 수익화 시스템이다. 캔버스는 네이버웹툰 한국판의 ‘도전만화’에 해당하지만, 수익화 시스템이 다소 다르다. 도전만화의 아마추어 작가는 정식 연재 작가로 발탁되기 전에는 수익을 얻을 수 없다. 반면에 캔버스에서는 유튜브 크리에이터처럼 팬을 일정 수 이상 확보하면 광고 이익 분배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기고한 칼럼에서 “기성품 느낌이 나는 스튜디오 작품과는 다른 과감하고 독특한 도전과 실험을 보기 위해 이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네이버는 올해 말 캔버스의 수익화 시스템을 국내 도전만화 서비스에 도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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