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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머리 쪼고 반려견 물고…도심 야생동물 잡으면 안된다 왜

중앙일보

입력

산책 중인 반려견을 갑자기 공격하고, 길 가던 시민의 머리를 쫀다. 누군가에겐 징그러운 몸뚱아리를 보여주며 놀라게 한다. 인적이 드문 산속 깊은 곳이 아닌, 서울 안에서 야생동물에 의해 일어난 피해 사례들이다. 이런 사례들이 늘면서 야생동물이 점점 ‘도심 골칫거리’가 되는 분위기다.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를 보장하는 지자체 안심보험도 등장했다.

충남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있는 너구리의 모습. 전민규 기자

충남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있는 너구리의 모습. 전민규 기자

반려견 등 공격하는 너구리 

18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서울에서 야생 너구리로 인한 피해는 모두 7건으로 조사됐다. 이 중 6건이 너구리가 반려동물을 공격한 사례다. 나머지 한 건은 사람이 너구리에 물린 경우다.

너구리가 호전적인 동물은 아니지만, 3~4월쯤 새끼를 낳은 뒤 먹이를 찾는 과정에서 도심에 출몰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한 예로 지난해 6월 서울 도봉구, 그해 7월 송파구에서 각각 너구리가 나타나 시민과 반려견을 공격했다는 내용의 신고가 접수되기도 했다.

큰부리까마귀의 모습. [사진 환경부]

큰부리까마귀의 모습. [사진 환경부]

까마귀가 행인 머리 쪼고 

하늘에선 까마귀가 기승을 부린다. 지난해 1월부터 지난 4월까지 서울에서 큰부리까마귀로 인한 피해 사례는 모두 65건으로 조사됐다. 서울 자치구 곳곳에서 까마귀들이 먹이를 찾아 쓰레기장을 헤집는 경우 등이 자주 목격되면서 ‘울음소리가 시끄럽다’ 등의 민원이 40건 들어왔다. ‘시민을 위협하거나 공격했다’는 민원은 25건에 달했다. 지난 5월 서울 노원구에선 까마귀가 행인의 머리를 쪼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가에선 뱀이 나온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울에서 뱀 관련, 119대원이 출동한 건수는 271건으로 집계됐다. 벌써 지난 한해 출동 건수(245건)를 넘겼다. 뱀은 변온동물이다.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이 없다. 바깥 온도에 체온이 변하는데 동면(冬眠)에 드는 겨울철에 비해 기온이 따뜻해지는 봄·여름철에 출몰이 잦다. 올해 뱀 관련 신고 271건 중 240건(88.6%)이 5~7월에 몰렸다.

민원 들어와도 포획은 못 해

주민들 민원과 실제 피해 사례도 있지만, 자치단체로선 포획 등 직접적인 조처는 하지 못한다. 떼까마귀나 일반 까마귀와는 달리 최근 도심 출몰 빈도가 잦은 큰부리까마귀는 유해조수(해로운 야생동물)로 지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너구리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뱀 종류인 대륙유혈목이나 누룩뱀 등은 법상 포획 금지 야생생물이다. 이런 야생동물들은 야생동물구조센터의 구조를 받아 야생으로 돌려보내거나 아니면 폐사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야생동물 관련 민원이 있다 하더라도 포획하거나 살상 등의 방법을 해선 안 된다”며 “119 등과 함께 현장으로 가 쫓아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유해조수 목록을 현실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자연 생태계와의 상생은 고려해야 할 지점이란 주장도 만만치 않다. 유해조수 지정 등을 통한 포획 등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박창득 국립생태원 전임연구원은 “뱀이 오히려 사람들을 무서워한다”며 “기후변화에 따라 야생동물도 사람처럼 더위를 피해 다니는 만큼 출몰하면 가까이하지 않고, 관계기관에 신고하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동면에서 깬 누룩뱀의 모습. [사진 변산반도국립공원사무소]

동면에서 깬 누룩뱀의 모습. [사진 변산반도국립공원사무소]

안내판 설치하고, 기피제 뿌리고

서울시는 각 자치구에 야생동물 주요 출몰 지역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기피제 등을 곳곳에 살포하는 식의 조처를 하고 있다. 뱀이 자주 보이는 한강 변이나 지천엔 시민들이 다니는 길목 주변에 현수막을 설치하고, 뱀과 동선을 분리하게끔 했다. 야생동물 실태 조사 및 관리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용역도 추진 중이다.

와중에 일부 지자체들은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 보상에 나섰다. 서울 성동구가 대표적이다. 100만원까지 의료비 등을 보장하는 항목을 구민안심보험에 넣었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구민이 다른 지역에서 야생동물로부터 피해를 본 경우에도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까마귀가 행인을 쪼는 사례가 있었던 노원구도 야생조수 피해보상을 통해 피해를 본 구민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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