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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하이엔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여행하고 요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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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글로벌 패션 브랜드 구찌가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이태원에 열자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이름은 ‘구찌 오스테리아 다 마시모 보투라 서울’. 레스토랑은 예약이 개시되자마자 ‘3분 컷’ ‘5분 컷’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좌석이 빠르게 매진됐다. 단순한 음식이 아닌 ‘구찌’라는 '브랜드의 맛’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려든 것이다. 브랜드 DNA를 패션에서 음식으로 확장해 사람들에게 경험시키겠다는 똑똑한 전략이었고, 전략은 제대로 성공을 거뒀다.

구찌 오스테리아 다 마시모 보투라 서울
이곳의 마시모 보투라 셰프를 만나다 

지난 8월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구찌가옥 6층에 있는 '구찌 오스테리아 다 마시모 보투라 서울'에서 만난 마시모 보투라 셰프. 장진영 기자

지난 8월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구찌가옥 6층에 있는 '구찌 오스테리아 다 마시모 보투라 서울'에서 만난 마시모 보투라 셰프. 장진영 기자

구찌는 자신의 레스토랑을 만들기 위해 이탈리아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프렌체스카나’로 미슐랭 3스타를 받은 마시모 보투라 셰프와 협업했다. 구찌와 보투라 셰프는 2018년 이탈리아 피렌체를 시작으로 미국 LA 비버리힐스(2020년), 일본 도쿄 긴자(2021년), 서울(2022년)까지 총 4개의 레스토랑을 열고 운영하고 있다. 서울점 오픈 당시 방한했던 보투라 셰프가 지난 8월 14일 다시 한국을 찾았다. 최근 여름 신메뉴를 내놓은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에서 그를 직접 만났다.

"영혼 회복시킬 수 있는 공간 되길"

보투라 셰프는 서울점을 맡고 있는 전형규, 다비데 카델리니 헤드셰프와 매일 연락하며 긴밀하게 소통해 왔다. 하지만 메뉴나 레스토랑의 운영 등에 대한 지시를 내리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두 셰프가 주인"이라고 말하는 보투라 셰프는 이들이 주방에서 자신들의 창의성을 한껏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보투라 셰프의 철학이 녹아들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할 뿐이다.
"레스토랑을 하나 만들 때마다 나는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비즈니스적인 접근이 아니라 이탈리아에 있는 프란체스카나의 확장된 가족으로 본다. 그런 의미에서 전 셰프와 카델리니 셰프 역시 가족이고, 두 셰프가 자신의 창의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점을 이끄는 전형규(왼쪽), 다비데 카델리니 헤드셰프. [사진 구찌]

서울점을 이끄는 전형규(왼쪽), 다비데 카델리니 헤드셰프. [사진 구찌]

구찌 오스테리아 다 마시모 보투라 서울의 내부 모습. 고풍스러운 가구와구찌의 상징물들로 꾸몄다. [사진 구찌]

구찌 오스테리아 다 마시모 보투라 서울의 내부 모습. 고풍스러운 가구와구찌의 상징물들로 꾸몄다. [사진 구찌]

인정하고 믿어서일까. 두 셰프가 만든 지금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은 보투라 셰프가 처음 서울점을 계획했던 모습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지금 서울점의 모습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아름답고, 깨끗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직원들이 있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 환대의 힘이 있는 장소 같다. 나는 전형규, 카델리니 셰프에게 늘 '고객에게 두 사람이 늘 여기에 있는 모습을 꼭 보여줘라'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손님을 환대하며 맞이하고, 손님들이 이곳에서 영혼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도록 만들어 주길 원했다."

"요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여행"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1위로 꼽히는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의 오너 셰프인 그는 지금까지 받은 미슐랭 스타만 7개에 달한다. 세계 곳곳에 자신의 식당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요리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 일이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항상 나의 마음과 눈, 길을 열어 놓고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그리고 상대방이 속해 있는 창의적인 문화를 배우게 되는데 그것이 결국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보투라 셰프는 "이 일을 하는 것은 여행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하며 인터뷰 내내 열정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철학을 풀어냈다. 장진영 기자

보투라 셰프는 "이 일을 하는 것은 여행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하며 인터뷰 내내 열정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철학을 풀어냈다. 장진영 기자

보투라 셰프는 마르코 비자리 전 구찌 회장이 직접 선물한 니트 셔츠를 입고 있었다. 소맷부리엔 그가 받은 미슐랭 3스타를 상징하는 별과 그의 별자리인 천칭자리, 이름 이니셜인 'M.B.'가 세겨져 있다. 그는 "천칭의 양 끝에 있는 두 얼굴은 하나는 현재의 내 모습, 또 다른 하나는 앞으로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장진영 기자

보투라 셰프는 마르코 비자리 전 구찌 회장이 직접 선물한 니트 셔츠를 입고 있었다. 소맷부리엔 그가 받은 미슐랭 3스타를 상징하는 별과 그의 별자리인 천칭자리, 이름 이니셜인 'M.B.'가 세겨져 있다. 그는 "천칭의 양 끝에 있는 두 얼굴은 하나는 현재의 내 모습, 또 다른 하나는 앞으로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장진영 기자

그는 자신의 가족과 같은 셰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여행하지 않는다면, 무언가에 정말 깊이 빠져들지 않는다면, 그리고 당신의 문화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하는 게 예술이든 요리든 진정한 발전은 없을 거다. 진짜 컨템퍼러리 요리라는 것은 전통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미래의 방식으로 다시 한번 바꾸는 것이다. 가장 동시대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필터링을 통해 전통을 다시 보는 것, 그것이 컨템포러리 요리를 완성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세상에 나를 노출시켜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해서 전통으로부터 더 발전해서 더 깊게 들어가야 한다."

보투라 셰프가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꼭 필요한 식재료만 구해 사용하고, 남은 재료는 인턴 셰프들이 요리 공부를 할 때 사용할 수 있게 한다. 그가 사는 이탈리아 모데나에선 이달 말 새로운 식당 '갸토 베르데(Gatto Verde)'를 오픈하는데, 그는 "세계에서 가장 확실한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는 바비큐 레스토랑"이 될 것이라고 했다. 카본(숯) 필터로 여과한 지하수로 관계용수를 사용하고, 태양열 패널을 통해 충전한 열을 사용하는 등 식재료뿐 아니라 식당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이 지속 가능한 자원으로만 구성했다. 구찌 역시 지속 가능성을 기업 문화로 가지고 있으니 그와 구찌는 참 잘 어울린다.
"보통 지속 가능성이라고 하면 요식업에선 '채식주의'만을 생각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한 지속 가능성은 바로 마인드다. 어떻게 해야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하는 방식 말이다."

일요일 저녁은 한식, 금요일엔 김치 토핑 피자

한국 문화는 그에게 친밀하다. 그의 남동생이 한국 자동차 브랜드의 유통 담당자로 1년에 20여 차례 한국을 오간다고. 또 그의 주방에 있는 한국인 셰프는 매주 일요일 저녁 직원용 식사로 한식을 만들어 준다.
"한식은 나에게 '축제' 같은 식탁이다. 김치는 물론이고 10가지 이상의 반찬을 한꺼번에 상에 내서 먹는 방식이 놀랍다. 어떤 요리는 맵고, 어떤 것은 짭짤한데 이런 여러 가지 맛의 요리를 한꺼번에 원하는 데로 먹을 수 있다. 또 두 번 튀긴 프라이드 치킨을 한국인 셰프가 가끔 만들어 주는데, 그 조리 방식이 새롭고, 맛도 기가 막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금요일 저녁엔 직원 식사로 주로 피자를 먹는데 토핑으로 종종 김치를 올려 먹는단다. 피자 도우를 반만 굽고 위에 모차렐라 치즈를 넓게 깐 뒤, 그 위에 한국 스타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토핑을 얹고 김치도 종종 올려서 먹는다. 그러면 "여러 식재료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풍미가 좋다"는 게 보투라 셰프의 설명이다. 또 주방에선 한국산 흑마늘발효기를 사용해 발효시킨 사과로 파이를 만든 뒤, 이를 푸아그라와 함께 낸다.

국내산 보라성게에 관자, 랍스터, 한치, 캐비어를 조합한 메뉴 '딥 퍼플 해이즈(Deep Purple Haze)'.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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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그림 같은 메뉴 '앱스트랙트 익스프레션(Abstract Expression)'. 미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의 작품을 오마주한 것으로, 보섭살(한우)과 초당옥수수 퓌레, 비프 발사믹, 깻잎 오일을 사용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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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체리, 키안티로 만든 디저트 '찰리 트래블즈 투 블랙 포레스트(Charley Travels To Black Forest)'.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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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오스테리아 다 마시모 보투라 서울은 내년 2월 미슐랭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미 피렌체, 베벌리 힐스, 긴자에 있는 구찌 오스테리아는 모두 미슐랭 스타 1개씩을 땄다. 보투라 셰프는 “서울점은 마지막으로 오픈한 막냇동생 같은 곳으로, 아직 심사를 받지 않아서 없는 것뿐 별은 딸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본인 레스토랑의 제1 비평가로서 모든 플레이트(요리)를 해체하고 냉정하게 평가한 결과다.
“나는 내 식당의 요리 하나하나에 항목을 나눠 세밀하게 평가한다. 맛이 좋았는지 아닌지를 먼저 확인하고, 그다음에 요리가 흥미로운지 아닌지, 셰프의 개성이 잘 드러났는지 아닌지, 그리고 식자재는 무엇을 사용했는지를 꼼꼼히 따져보고 셰프들에게 말해준다. 이 모든 것을 확인한 결과 서울점은 미슐랭 스타를 1개는 받을 거라고 예상한다. 최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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