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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건도 '맛집 앱' 투자하는데…이런 콜라보, 한국선 막힌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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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미국 최대은행이자 글로벌 투자은행(IB)인 JP모건체이스는 지난해 7월, 여행업 진출을 선언했다. 여행이 가장 큰 만족을 주는 소비라는 판단에 여행 사업을 통해 장기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JP모건체이스는 지난 2021년 세계적인 식당 정보 업체인 저갯(Zagat)을 보유한 인패츄에이션을 인수했다. 저갯은 미슐랭처럼 식당 리뷰를 공유하는 일종의 맛집 플랫폼이다. 또 같은 해 1월에는 여행·항공·호텔의 포인트와 마일리지를 관리하는 시엑스로열티(cxLoyalty)도 사들였다. 또 지난해에는 부유층을 상대하는 여행 컨설턴트를 2000명 이상 확보하기도 했다.

맛집앱·중고차…글로벌 은행 신사업 경쟁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글로벌 은행들이 본업에서 벗어나 새 영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전통적인 금융과 비금융업의 경계가 사라지는 이른바 ‘빅블러(업종 간 영역이 모호해지는 것)’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어서다. 빅테크 업체가 디지털 기술을 앞세워 금융 영역에 침투하면서, 예전 방식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글로벌 은행들은 자본력과 네트워크가 우수해 새 사업 진출이 다른 기업보다 용이하다. 직접 사업을 하지 않아도 투자·제휴하는 방식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싱가포르 최대 은행인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은 “직접 모두 다 진출하지 않고 선도 기업과 협력(콜라보)한다”는 이른바 ‘오픈 콜라보레이션’ 전략으로 생활 플랫폼 사업에 발을 뻗치고 있다. 예를 들어 항공업체 및 여행·보험사와 제휴해 여행 플랫폼을 만들고, 중고차 판매 스타트업과 손잡고 자동차 판매와 자동차 담보 대출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플랫폼 진출 은행, 수수료 인하 등 경쟁 유도

신한은행 배달앱 ‘땡겨요’ 라이더 22명이 출시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스1

신한은행 배달앱 ‘땡겨요’ 라이더 22명이 출시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스1

은행들의 사업 영역 확대는 은행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도 필요하지만, 업계의 경쟁을 자극해 기업과 소비자의 효용을 높이는 효과도 가져온다. 특히 대표적인 것이 플랫폼 분야다. 통상 많게는 한두 개 업체가 독과점적 지위를 형성하고 있는 플랫폼은 자본과 고객이 달리는 신규 업체 진출이 어렵다.

이런 경쟁 제한은 플랫폼을 이용하는 소비자는 물론이고, 플랫폼에 입점하는 기업에게도 불리하다. 하지만 많은 자본과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은행이 플랫폼 사업에 진출하면, 일종의 메기 역할을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신한은행은 배달 플랫폼인 ‘땡겨요’를 만들면서, 입점 업체 결제 수수료를 2%로 낮췄다. 기존 플랫폼이 3%라는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 조치다. 또 정산주기(1일)도 다른 플랫폼(4~5일)보다 짧다.

기업 지원·기반 사업 투자해 새 영역 창출

새로운 사업 영역을 구축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일본 미쓰비스UFJ은행은 지난해 7월 ‘미쓰비시 트레이딩’이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기업의 재고를 싼값에 사들인 뒤, 차익을 붙여 되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기업이 어려울 때 자산의 유동화를 돕는다는 측면에서 공익적 성격까지 지닌 사업이란 평가를 받았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폭스바겐의 전기차 충전 자회사인 일렉트릭파이 아메리카와 파트너십을 맺고, 전기차 충전소를 전국 은행지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호주뉴질랜드은행은 태양광 회사에 금융을 지원하거나 자사 소유 건물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등 태양광 인프라에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규제 막힌 국내은행, 신산업 진출 제자리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하지만 국내 은행은 신한은행의 배달 중개 서비스와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을 제외하고는 전통적 은행 업무를 벗어난 사업 진출이 전무하다. 은행의 비금융분야 진출을 막아 놓은 규제 때문이다. 현행법은 비금융권의 부실이 금융권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고, 금융사의 과도한 산업지배력을 차단하기 위해 은행의 비금융업 진출을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금융당국은 은행의 신산업 진출을 위한 제도개선 논의에 착수한 상태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며, 올해 3분기 내 은행의 비금융업 진출과 관련해 세부방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핀테크라는 이름으로 정보통신(IT) 기업의 금융 진출이 활발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금융과 비금융의 영역을 나눌 필요는 없는 것 같다”면서 “은행의 투자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유연하게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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