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과연 ‘이익 카르텔’이 문제의 본질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요즘 개혁의 화두는 ‘반(反) 이익 카르텔’인 것 같다. 부실 건물은 건설공무원과 LH공사 직원들의 이익 카르텔 탓이고, 사교육 광풍은 사교육 업체 공무원과 교사들의 카르텔이 원인이며, 과학계 연구개발 과제의 부실한 성과는 연구·개발(R&D) 카르텔 때문이라는 프레임이다. 그러니 개혁이 성공하려면 이익 카르텔의 실체를 밝히고 이 카르텔을 해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이익 카르텔은 나쁘고, 당연히 해체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카르텔이 해체되면 문제가 해결되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슈다. 만일 이익 카르텔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 아니라면, 많은 힘을 들여 카르텔을 해체하더라도 문제는 그대로 남게 된다. 결국 아까운 개혁 동력을 엉뚱한 일에 소진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개혁 화두로 떠오른 이익 카르텔
카르텔 해체하면 문제 사라질까
교육과 R&D는 정책이 근본 문제
대담한 정책 변화가 필요한 시점

먼저 교육 분야의 사교육 카르텔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 문제는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의 교육개혁 보고 중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킬러 문항)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에서 배제하라”는 지시와 함께, “교육 당국과 사교육이 한편이란 말이냐”고 지적하면서 시작됐다. 그 후 교육부는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를 설치했고,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도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주요 혐의는 수능 출제에 참여했던 교사들이 사교육 업체의 돈을 받고 모의고사 문제를 내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행위는 교사 윤리 규범에 어긋나는 일이고, 관련자는 법에 따라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과연 사교육 광풍은 잦아들었을까.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우선 문제 된 교사나 사교육 종사자들은 정책 결정자가 아니다. 그들은 존재하는 사교육 열풍을 부당하게 이용한 사람들이지, 사교육 열풍을 만든 사람은 아니다. 한국 사교육 열풍의 원인은 정책 당국이 치열한 대입 경쟁을 완화하는 데 실패한 탓이다. 그동안 정책 당국은 사교육을 억제하고 입시 공정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대입제도를 수없이 바꾸어 왔다. 하지만 많은 경우 대입제도 변화는 오히려 사교육을 팽창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필자도 교육부 공무원과 사교육 업자의 결탁이 있지 않나 의심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마도 진실은 카르텔적 결탁보다는 고위 공무원 및 정치인의 무능과 무책임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근본 대책은 대입에서 한 줄 세우기를 지양하고 궁극적으로는 경쟁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담한 정책변화가 필요하다. 이미 수능의 절대평가와 자격시험화, 지역대학에 대한 획기적 지원을 통한 대학의 상향평준화 등 많은 아이디어가 제안돼 있다.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는 이런 제안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시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태까지 고위 정책결정자들은 이런 대담한 개혁은 정치적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논의조차 회피했다. 대신 손쉽게 대입 제도만 바꾸려고 했으니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사교육 열풍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아직도 수능의 기술적 변화나 일부 교사들의 일탈을 카르텔로 지목하고 이들 처벌에만 집중한다면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일이 될 것이다.

과학기술계의 R&D 카르텔 문제도 비슷하다. 이 문제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불거졌다. 그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는 중소기업 R&D 정책자금과 단기현안성 R&D 사업 등이 거론되었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 정부 연구개발사업의 비효율성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비중이 미미한 일부 사업의 문제점을 가지고 전체 과학기술계의 카르텔을 거론하는 것은 지나치다. 진정한 문제는 국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대형연구개발사업에서 획기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는 카르텔이 원인이라기보다 후진국형인 과학기술 정책 탓이다. 과거 선진국을 쫓아가던 시절의 과학기술 정책을 아직도 고치지 못하여, 실패를 용인하는 과감한 과제 선정이 안 되는 것이다. 또한 법과 규정이 국내과학자 위주로 되어 있어서 외국의 우수 연구자들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협력을 강조한 것은 시의적절하지만 급하게 몰아붙여서 될 일은 아니다.

물론 ‘이익 카르텔’이 문제의 근본 원인인 경우도 많다. 소위 ‘순살 아파트’는 전·현직 건설공무원과 LH 직원의 카르텔이 원인으로 밝혀지고 있다. 또한 과거부터 논란되어 온 ‘법조 카르텔’의 폐해도 대장동 사건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이 따로 있는 사안도 많다. 이 경우에도 이익 카르텔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적 분노의 대상을 찾아내어 처벌하는 데 그친다면, 마치 세월호 사건 때 수많은 조사를 통해 관련자들을 처벌했지만 오히려 그 후 해난 사고는 늘어난 것처럼 문제 해결에는 큰 도움이  안될 것이다.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