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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RE100 한다” 선언했지만…기업들 고민 커지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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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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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지의 대기업 A·B사는 수년 전 각각 업계에서 국내 처음으로 글로벌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 ‘RE100’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RE100을 주관하는 클라이밋그룹(The Climate Group)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행 가능성에 자신감이 서지 않아서다. 대기업 C사도 내부적으로 RE100 가입을 논의했으나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란 판단이 나오자 ‘눈치작전’에 들어간 상태다.

17일 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RE100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RE100은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신재생 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A사 관계자는 “국내에서 신재생 에너지 수급이 쉽지 않아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했으나 마땅한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B사 측도 “글로벌 기업의 참여도 일부에 그치다 보니 ‘우리가 굳이 먼저 해야 하나’ 하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기업 중 ‘RE100 기업’은 80곳뿐

중앙일보가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한국에너지공단의 ‘RE100 가입기업 현황’(지난달 말 기준)에 따르면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 중 RE100에 가입한 기업은 80개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세계 선도 기업 중 RE100을 실천하겠다고 가입한 기업이 16%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국가별로는 미국 기업이 25개로 가장 많았고, 한국·일본이 9개로 뒤를 이었다. 이어 영국 8개, 독일·스위스 7개, 프랑스 6개 등이었다.

김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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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RE100 가입 기업 414곳을 분석해 보면 재생 에너지 보급률이 가장 높은 유럽에 소재한 기업은 84개로 20% 수준이었다. 연도별 가입 기업 수도 감소세다. 2014년 12개 가입을 시작으로 32(2017)→65(2020)→66개(2021년)까지 늘어났지만 지난해 58개→올해 7월 21개 등으로 집계됐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산업계에서는 ‘RE100 무용론’ 목소리도 나온다. 신재생 에너지 수급 환경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유럽·미국 등에서도 기업의 가입이 눈에 띄게 줄고 있어서다. 미국·유럽연합(EU) 등이 신재생 에너지 전환·탄소 감축 같은 ‘비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RE100을 추진에 나섰던 국내 대기업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한무경 의원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제조업 비중이 가장 높고, 산업용 전력 사용량도 상위권”이라며 “RE100 이행을 위해 재생 에너지 사용을 강제할 경우 국내 산업 전반에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5월 무탄소 전력 캠페인인 ‘CFE 포럼’을 출범하는 등 ‘RE100 대항마’ 띄우기에 나섰다. 유엔 에너지는 2021년 일주일 24시간 ‘무탄소 에너지’ 사용하자는 취지의 ‘24/7 CFE’를 출범했는데, 이는 재생 에너지 사용을 표방하는 RE100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원전까지 무탄소에너지원에 포함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도하는 ‘CFE 포럼’엔 삼성전자·LG에너지솔루션·SK하이닉스·포스코·GS에너지·두산에너빌리티 등 주요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중고를 호소한다. 민간 캠페인 RE100이 사실상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정부가 ‘CFE 포럼’을 띄우면서 상황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해외 파트너 중심으로는 RE100 이행 요구를, 한국 정부는 CFE를 강조하면서 에너지 정책 수립에 스텝이 꼬였다. 두 개 모두 충족하려다 보니 어려움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김경식 고철연구소장은 “RE100의 바탕엔 후발 주자와 격차를 벌리기 위한 선진국의 의도가 깔렸다”며 “국내 기업들은 떠밀리듯 가입하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송·배전망을 개방하는 등 에너지 시장 구조를 바꿔야 국내 재생 에너지 활성화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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