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투명도를 높이라/유승삼(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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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판·검사,조직폭력배,빠찐꼬업자,국회의원이 얽히고 설킨 대전 술자리합석사건은 공직사회의 도덕적 눈금이 어디에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 날의 모임 자체는 지극히 사적이고 우연한 것이었는지 모르나 이 사회에서 내노라 하는 권력을 쥔 공직자들이 사회의 지탄을 받는 부류의 사람들과 친분을 맺고,또 설사 사전 친분이 없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심리적 저항감없이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현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짐작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들이 이번 사건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의 최고가치가 역시 「돈」이라는 점이었다. 겉으로는 그 화려하고 위풍당당한 권력자들도 마음만 내키면 은밀한 술자리에 한꺼번에 모을 수 있었다는 데서 우리는 「돈」의 위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사회의 최고가치와 현실적인 힘이 「돈」 한 가지에 모아질 때 그 사회가 가는 길은 뻔한 것이다. 사회는 계속적으로 부패해가고 그에 따라 명예나 권력과 같은 사회의 또다른 가치들은 썩은 고기에 꾀는 벌레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는 바로 사회해체의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을 인간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또는 특정인이 저지른 일과성의 사건으로 보고 넘겨서는 안 될 일이다. 또 이번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문책으로 사건을 마무리할 일도 아니다.
이번 사건을 가장 심각히 받아들여야 할 사람은 역시 최고집권자다.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서 오늘날의 적지 않은 공직자들이 국가적 사명감은커녕 맹목적인 충성심조차 없이 그저 개인적 이익추구에나 몰두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공직자들의 자세가 만약 이렇다면 이는 정권의 위기로도 연결될 수 있음을 인식해 더이상 늦추지 말고 종합적이고도 과감한 공직사회의 개혁을 단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직자들의 도덕적 타락이나 부패가 6공 들어서 생긴 것만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정부수립 이래부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뿌리가 깊은 것이다. 다만 과거의 그것과 오늘의 그것에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의 그것은 금력이 권력의 종속된 상태에서 빚어지는 것이었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금력에 권력이 종속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권력이 그 구심력을 상실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에 다름아니다. 구심력이 없는 권력은 금력의 먹이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과 금력은 다같이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분산되어도 개별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금력과는 달리 권력은 분산되면 무력해지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권력이란 달리 표현하면 하나의 구조이자 체제이기 때문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권력이 어떻게 그렇게 강력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다름아니라 나름대로의 구심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은 맹목적인 충성심에 의한 것이긴 했지만 충성하면 출세할 수 있다는 믿음만은 심어줄 수 있었기에 공직사회는 나름대로의 체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따라서 적어도 금력을 그에 종속시킬 수 있는 힘은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에 오늘날에 와서는 그것마저 사라져버렸고 권력은 파편화되었다. 파편화된 권력은 금력을 이길 만한 힘이 없기에 한조각 한조각씩 금력의 먹이가 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권력이 이제 와서 과거의 권위주의시대의 맹목적 충성심으로 재정비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그러려 해도 이미 강력해진 시민사회의 반발에 부닥쳐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게 되어 있다.
실천은 어렵겠지만 문제해결의 길은 분명해 보인다. 이 시대에서 권력이 참다운 권위를 회복하는 길은 민주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것뿐이다. 민주화를 통해 권력이 스스로를 비운다면 결과적으로는 어느 역대 권위주의 정권도 얻지 못했던 국민적 지지에 의한 권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안은 공직사회의 투명도를 높이는 것이다. 판·검사,정부 고위관리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그들이 애써 유지하려는 폐쇄성과 비밀주의에 있다. 오직 법에 입각해서 모든 일을 공개적으로 처리한다면 그들이 일반 봉급자들보다 더 큰 힘을 가질 아무런 근거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법을 오히려 울타리 삼아 그 폐쇄성과 비밀주의를 강화하고 있기에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며 거기에서 시민의 정상적인 접근은 차단되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금력에 의한 매수밖에는 권력에 접근하는 길이 없어지며 그에 따라 권력은 힘은 있되 권위는 없는 비뚤어진 권력이 되어버리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권력이 참모습과 참다운 권위를 회복하려면 마치 금연을 하려는 사람이 주위에 금연결심을 선포함으로써 그것에서부터 흡연욕구의 억제력을 얻듯 권력의 내용을 과감히 공개해 스스로 사회의 억제력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거기에서 얻어진 권력이야말로 깨끗할 것이며 그 권위는 높을 것이다.
한 가지 더 바란다면 그 권위를 바탕으로 공직자들이 열정을 바칠 수 있는 국가적 목표를 최고집권자가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이르지 않아도 좋다. 대통령이 권력의 투명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결재서류를 시민들에게도 내보일 각오만이라도 갖는다면 공직사회의 분위기는 일신될 수 있을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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