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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포츠 지원이 저출산 정책? 51조 예산 부풀리기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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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저출산. [일러스트=김지윤]

저출산. [일러스트=김지윤]

프로스포츠 인재 지원, 소상공인 재기, 로컬크리에이터 지원, 군인 인건비 증액, 국내 관광 활성화…. 지난해 ‘저출산 예산’에 포함됐지만, 정작 저출산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사업들이다. 매년 반복되는 부풀리기 지적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는 올해부터 실효성 있는 정책 중심으로 본격적인 ‘예산 다이어트’에 나설 계획이다.

15일 국회예산정책처의 ‘2022년 저출산 대응 사업 분석·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저출산 대응 예산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따라 2006년 2조1000억원을 시작으로 2012년 11조1000억원, 2016년 21조4000억원, 2021년 46조7000억원 등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났다. 지난해엔 51조7000억원으로 50조원을 돌파했다. 서류상으로는 지난 17년간 총 300조원이 넘는 예산이 저출산 대응 정책에 쏟아진 셈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그러나 세부 사업들을 세세히 뜯어보면 저출산 대응과 상관관계가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주최단체 지원사업’(10억원)은 프로스포츠 분야 종사를 희망하는 우수 인재를 발굴하거나 인턴 채용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예컨대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주관으로 프로야구·프로축구·프로농구·프로골프 등 프로단체 및 구단에서 인턴 활동을 진행하는 등의 사업으로, 저출산 정책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외에도 문체부에서 추진하는 ‘국내관광 역량강화’(110억원), ‘지역문화 진흥’(21억원) 등의 사업도 저출산 예산으로 잡혔다.

다른 부처에서 추진된 일부 사업들도 저출산 정책과 거리가 멀었다. 재창업 교육 등을 포함한 소상공인 재기지원 사업(317억원), 군인·군무원 인건비 증액 사업(987억원), 학교 태양열 설비 설치를 지원하는 그린스마트스쿨 사업(1조8293억원), 청년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1조3098억원), 민관 창업자 발굴 육성 사업(526억원), 로컬크리에이터 지원(69억원) 등이다. 이렇게 예정처가 지적한 사업만 약 4조원 규모로, 지난해 전체 저출산 예산의 7% 수준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이같은 예산 부풀리기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21년엔 게임 및 만화·웹툰 지원 사업도 저출산 예산에 포함됐지만, 국회 지적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예산에선 제외됐다. 과거엔 템플스테이, 수도원 체험, 대학 학사구조 개편, 인문학 육성 사업 등이 저출산 예산에 포함됐다가 조용히 사라지기도 했다. 예정처는 “저출산 예산에 대한 착시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짚었다.

일차적인 원인은 기본계획 목표의 모호함에 있다. 가령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 출산율 회복’과 같은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 보니 개별 사업도 구체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예정처는 “예컨대 ‘일자리’는 청년의 안정적인 삶의 기반에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그렇다면 청년 일자리 대책에 포함된 모든 사업을 저출산 예산으로 볼 것이냐는 질문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중앙부처마다 정의하는 저출산 정책 범위가 다른데, 저출산위가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 역할을 못 하다 보니 검증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반 사업에 저출산 꼬리표를 붙이면 상대적으로 예산 통과가 용이하다는 점도 한 몫을 차지한다.

이에 예정처는 기본계획과 시행계획을 수립할 때부터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OECD 기준 가족지원 예산과 같이 저출산 대응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사업으로 저출산 예산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출산위도 올해부터 본격적인 ‘거품 걷어내기’에 나설 계획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그동안 ‘저출산’이라는 명목으로 아무 사업이나 갖다 붙여서 예산을 따내는 관행이 있었다”며 “앞으로 저출산위가 중심을 잡고 불필요한 사업은 모두 정리해서 저출산 정책을 효율적으로 실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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