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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미군 함정·항공기 한국서 정비할 수 있게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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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문근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문근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2019년 5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의 이즈모급 항모 가가(加賀)함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했다. 필자는 당시 이런 것이 바로 미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주고받기’(Give and Take) 외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가함은 1941년 12월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 공습에 참여한 함정으로 미국인에게는 악몽 같은 함정의 후신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적국의 항모에 승선해 일본이 염원해온 군사 대국화의 길을 터줬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일본은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해 F-35 전투기 105대를 추가 구매하기로 약속해 미·일의 ‘빅딜 외교’가 성사됐다.

관련법 손질하면 큰 문제 없어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 기대
전력 공백 줄이고 경비도 절감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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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정상회의가 오는 18일(현지 시각)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된다. 북핵 대응 공조, 반도체 공급망 구축,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이슈에서 3국 연대 방안 등이 의제에 오를 전망이다.

별도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안보와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의제가 꼭 추가되길 바라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해본다. 한국 방문 미군 함정과 주한미군 항공기 정비를 한국에서 하자는 것이다. 뜬구름 잡는 제안이 아니라 한·미 양국의 관련법을 개정하면 충분히 ‘윈윈’이 가능한 방안이다.

미국 국방부와 해군은 중국이 매년 1000척 이상의 함정을 건조하는데 미국은 200척 정도밖에 건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고 호소해왔다. 이에 따라 중국과의 전함 건조 경쟁에 발맞춰 ‘존스 법(Jones Act)’을 폐기해야 한다고 언론과 정치권에 호소하고 있다. 존스 법이란 미국 본토 이외 지역에서 미국의 군함 등 전략물자의 생산이나 정비를 할 수 없게 규정한 법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월 미국 해군 수상함 사업 책임자인 토머스 앤더슨 해군 소장이 한국의 대형 조선소를 방문했다. 그는 “우리는 세계적 수준의 조선소를 찾으러 왔고 (한국에서) 그것을 찾았다”며 한국 조선업계의 군함 건조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2021년 남중국해에서 작전 중 함수 부분이 파손된 채 미국으로 이송된 시울프(Seawolf)급 공격 원자력 잠수함은 인력과 시설 부족으로 수리하기까지 20개월이나 기다려야 했다.

향후 미국 국내법이 개정되면 한국에서 수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장기간 수리로 인한 전력 공백 해소는 물론 예산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다. HD현대중공업은 뉴질랜드와 필리핀에 전투함 10여 척을 수출했거나 수출을 진행 중이고, 한화오션은 인도네시아·영국 등에 잠수함과 전투함 10여 척을 수출했다. 두 업체는 수출 함정에 대해 정비유지보수(MRO)까지 확장해 추진 중이다. 미국 측이 원하면 신형 함정 건조도 가능한 역량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한미군 항공기의 정비유지보수 문제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한국 업체는 지난해까지 약 9700대의 항공기 창정비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 공군을 대상으로 정비유지보수 임무도 수행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투기와 헬기의 기체 정비도 이미 대한항공이 수행 중인데, 미군은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한국 기업들의 능력을 고려해 미국 본토에서 수행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전투기·헬기에 대한 창정비도 한국에서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주한 미군 전투기·헬기는 약 200여 대인데, 매년 약 30대의 엔진 창정비 소요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관련법의 제약으로 한국에서 정비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주한 미군 항공기를 국내에서 창정비를 수행할 경우 연간 300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는 보고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13년 한국에서 미군 항공기 기체 정비만 했을 때도 방위비 분담금에서 정비비 800억원 중 약 220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미국의 함정·항공기를 한국에서 정비할 수 있게 되면 미국 전략자산의 가동률 향상, 미국 본토 수송비 절감, 한·미 방위비 분담금의 효율적 집행 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가 군사협력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실익도 챙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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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