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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도 녹인 하와이 산불…"사망자 하루 20명씩 쏟아질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하와이주(州) 마우이 섬의 산불 사망자 수가 100명에 육박했다. 이런 가운데 앞으로 열흘간 하루 사망자 수가 20명씩 쏟아져 나올 것이란 비극적 전망까지 나왔다.

'100년만의 최악의 산불'이란 평가와 함께 경제적인 피해가 4조~10조원에 달할 것이란 추산도 나왔다. 불에 타 신원 확인조차 어려워 사고 수습도 난항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 섬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로 지난 10일(현지시간) 주요 관광지인 라하이나 지역의 화재 피해 현장. AP=연합뉴스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 섬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로 지난 10일(현지시간) 주요 관광지인 라하이나 지역의 화재 피해 현장. AP=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하와이주정부 당국이 밝힌 이번 산불 사망자 수는 이날 오후 기준 99명에 달했다. 산불 피해 면적이 넓다 보니 정확한 사망자 집계도 늦어지고 있다.

실제로 산불이 발생한지 일주일 째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는 실종자도 1300여명에 이른다.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는 이날 "수색 대원들이 하루에 10∼20명씩 (사망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비극적인 이야기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AP 통신, CNN 등에 따르면 수습된 사망자 가운데서도 신원이 확인된 시신은 극히 일부다. 존 펠레티에 마우이 경찰서장은 "이번 산불의 위력은 금속을 녹일 정도의 강도"라며 "(사체가 심하게 불에 타) 신원 확인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시신 훼손이 심해 면봉 등을 활용한 일반적인 DNA 검사로는 빠른 신원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마우이 카운티 당국에 따르면 지금까지 집계된 희생자 100여명 중 단 2명만 DNA 테스트를 통해 신원이 확인됐다.

존 펠레티에 마우이 경찰서장이 14일(현지시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존 펠레티에 마우이 경찰서장이 14일(현지시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1일부터 주요 피해 지역 현장에선 미 연방 재난관리청(FEMA) 소속 수색 구조팀이 사체 탐지견을 투입해 구조물 내부 수색을 벌이고 있다. 이날 그린 주지사는 "피해 지역의 25%를 수색했다"고 밝혔다.

경제적 비용 최대 10조원 달해 

역대 최악의 대형 산불을 겪은 마우이 섬이 감내해야 할 경제적 비용이 최대 75억 달러(약 1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금융정보 조사업체인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이날 "파괴적 산불이 천문학적인 경제적 영향을 미치고 심각한 지역 경기 침체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정치에 따르면 경제적 피해는 30억~75억 달러(4억~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애덤 카민스 무디스 애널리틱스 연구원은 "마우이 섬의 연간 생산 규모가 100억 달러(13조4000억원)라는 점을 고려하면 천문학적인 수치"라고 설명했다.

허리케인 등 이전 자연재해와 달리 이번 산불이 인구 밀집 지역을 삽시간에 강타했기 때문에 피해 규모는 더 컸다. 이와 관련, 카민스 연구원은 "마우이 산불 여파로 하와이 전체 관광 일정을 취소하면 하와이 전체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관광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짧지만 심각한 지역 경제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마우이 산불과 관련해 현지 전력회사인 하와이안 일렉트릭 인더스트리에 대한 소송도 제기됐다. CNN은 이번 산불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마우리 라하이나에 사는 한 부부가 이 전력회사와 자회사 3곳을 상대로 중과실 등의 혐의를 내세워 소송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허리케인 '도라'로 인해 강풍이 마우이섬에 불어 닥쳤을 때 송전선이 끊겨 날리면서 스파크를 일으켰고, 그것이 산불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와이안 일렉트릭과 자회사가 전신주와 전선이 넘어져 초목이나 땅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전력을 끊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리처드 비센 마우이 카운티 시장도 전력이 공급되는 송전선이 도로로 떨어졌다고 언급한 바 있지만, 산불의 공식적인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 시작된 산불로 일대가 잿더미가 된 가운데, 한 구조 대원이 12일 사체 탐지견을 앞세워 수색에 나서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 시작된 산불로 일대가 잿더미가 된 가운데, 한 구조 대원이 12일 사체 탐지견을 앞세워 수색에 나서고 있다. AP=연합뉴스

워싱턴선 정쟁 도구 되기도 

마우이 산불 재난을 놓고 워싱턴 정가는 설전을 오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휴가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마우이 산불 사망자 수 증가에 따른 대응 조치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노 코멘트(아무런 답변을 취하지 않음)' 한 것을 두고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마우이 산불 이후 13일 델라웨어주 르호보스 해변 인근 케이프 헨로펜 주립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손을 흔들고 있는 장면이 언론에 노출되자 친트럼프 인사와 공화당 의원 일부는 SNS를 통해 공격에 나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자신의 SNS에 "(이런) 똑같은 일을 전임자(트럼프 전 대통령)가 했다면 언론의 폭풍 질타를 면치 못했을 것"이라며 "신은 백악관에 새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비난에 백악관은 즉각 반응했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14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지난 10일 하와이를 연방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신속한 복구 지원을 약속하는 등 FEMA와 긴밀히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재 참사를 입은 마우이 섬은 현재 희생자 수색과 구호 작업이 우선"이라며 "당장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은 예정돼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지난 13일(현지시간) 휴가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르호보스 해변 인근 케이프 헨로펜 주립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며 지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3일(현지시간) 휴가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르호보스 해변 인근 케이프 헨로펜 주립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며 지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선의 악용 사기 사이트 주의

산불 피해를 입은 마우이 섬의 재건을 돕기 위해 여러 단체가 기부금을 모아 구호의 손길을 뻗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고펀드미(GoFundMe)는 14일 오후까지 미국 50개주뿐 아니라 전 세계 100개국 17만5000명으로부터 2200만 달러(약294억원)를 모금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요리사 리사 호세 안드레스가 설립한 비영리, 비정부 단체 '월드 센트럴 키친(World Central Kitchen)'도 마우이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단체는 재난 이후 제대로 먹거리를 해결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무료로 식사 등을 제공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12일(현지시간) 하와이 마우이섬의 중부 마알라에아 베이에 배를 정박하고 물 등 구호 물품을 내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원봉사자들이 12일(현지시간) 하와이 마우이섬의 중부 마알라에아 베이에 배를 정박하고 물 등 구호 물품을 내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 같은 선의(善意)를 악용한 사례도 등장했다. 앤 로페즈 하와이주 법무부 장관은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소액 간편 송금 앱인 벤모(Venmo), 각종 기프트 카드 등을 이용해 기부를 지나치게 독려하는 것에 속아 섣불리 기부하지 말라"며 "자신이 낸 기부금이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 곳에만 적절히 기부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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