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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중 직접 조종간 잡았다…불길 뚫고 300명 구한 영웅 정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산불로 아수라장이 된 카훌루이 공항에서 승객 300명을 싣고 무사히 섬을 탈출한 ‘영웅’ 빈스 에켈캄프. 그는 30년 간 유나이티드항공에서 조종간을 잡은 베테랑 조종사였다. 사진 홈페이지 캡처

산불로 아수라장이 된 카훌루이 공항에서 승객 300명을 싣고 무사히 섬을 탈출한 ‘영웅’ 빈스 에켈캄프. 그는 30년 간 유나이티드항공에서 조종간을 잡은 베테랑 조종사였다. 사진 홈페이지 캡처

13일(현지시간) 미국 CBS 방송등에 따르면 지난 8일 하와이 마우이섬을 덮친 산불로 카훌루이 공항은 아비규환 그자체였다. 불길과 강풍이 겹치면서 항공편이 줄줄이 취소되고 섬을 탈출하려는 승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공항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항공사들은 긴급 항공편을 띄우려고 해도 도로가 차단된 상황에서 기장과 승무원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이때 미 항공사인 유나이티드 항공 데스크로 중년의 남성이 찾아왔다.

그는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를 활용하셔도 됩니다. 제가 시간이 된다”면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는 30년 경력의 유나이티드 항공 베테랑 조종사였고,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휴가를 왔다가 공항에 발이 묶인 이들을 위해 조종간을 잡겠다고 자원하고 나선 것이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빈스 에켈캄프. 빈스는 30년 넘게 조종간을 잡았던 베테랑 파일럿으로, 현재 훈련 매니저로 일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이상 조종석에 앉았다.

미국 덴버주 출신인 빈스는 부인, 고교생 딸과 함께 마우이섬으로 휴가를 왔다가 지난 8일 새벽 3시께 호텔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창밖으로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굉음을 냈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일단 공항으로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당시 빈스 가족은 당시 막 시작된 산불이 90명 넘는 사망자를 낸 참사로 이어지리라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가족은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가고 지붕이 무너지는 아비규환의 현장을 뚫고 가까스로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공항에서는 이미 항공편이 줄줄이 취소되기 시작했으며, 긴급 항공편을 띄운다고 해도 기장과 승무원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던 상황이었다.

빈스 가족의 항공편 또한 취소되면서 다른 승객들처럼 공항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그때 빈스는 “거기에 내가 아는 후배 파일럿이 한명 있었다”면서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결국 다른 파일럿을 구하지 못한 항공사 측은 빈스에게 연락해 조종간을 맡겼고, 이튿날 그는 300명 넘게 탄 여객기를 몰고 무사히 본토에 착륙했다.

산불로 아수라장이 된 카훌루이 공항에서 승객 300명을 싣고 무사히 섬을 탈출한 ‘영웅’ 빈스 에켈캄프. 그는 30년 간 유나이티드항공에서 조종간을 잡은 베테랑 조종사였다. 사진 홈페이지 캡처

산불로 아수라장이 된 카훌루이 공항에서 승객 300명을 싣고 무사히 섬을 탈출한 ‘영웅’ 빈스 에켈캄프. 그는 30년 간 유나이티드항공에서 조종간을 잡은 베테랑 조종사였다. 사진 홈페이지 캡처

빈스는 “내가 도울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했다”면서 “하지만 나는 폴로 셔츠에 반바지, 테니스화 차림으로 비행기를 조종했다. 그건 정말 편안했다”고 말했다.

비행기에는 빈스의 부인과 딸도 함께 탔다. 그는 “집에 돌아와 안심됐다”면서도 “하지만 우리 마음은 마우이에 남아있다. 그곳은 처참했다. 산불 피해가 하루빨리 복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커다란 퍼즐의 한 조각이었을 뿐”이라며 “마우이에 필요한 것은 너무나 많고 내가 한 일은 극히 작다. 내가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덧붙였다.

“제발 휴가오지 마세요”…하와이 주민 호소

13일(현지시각) 대형 산불이 휩쓸고 간 하와이 마우이 섬 라하이나에서 불에 탄 주택과 건물이 보인다. AP=연합뉴스

13일(현지시각) 대형 산불이 휩쓸고 간 하와이 마우이 섬 라하이나에서 불에 탄 주택과 건물이 보인다. AP=연합뉴스

화재로 인해 100여명 가까이 사망자가 발생한 하와이 마우이섬의 주민들이 당분간 휴가를 위한 섬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마우이섬에서는 지난 8일 시작된 산불로 해변까지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100여 명 가까운 사망자가 나왔다. 현재까지 사망자는 93명으로 파악됐고, 건물 2200채 파괴 등의 재산 피해도 집계됐다.

현지 주민들이 미국 정부의 미숙한 재난 대비는 물론 느린 구호 조치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마우이섬의 산불 참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주민들은 정부 구호 지원품이 도달하기에 앞서 서로의 힘에 의지하며 불편함을 견뎌내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0일 하와이를 연방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신속한 복구 지원을 약속했지만 현지에선 지원의 손길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마우이섬에는 이재민들이 지낼 임시 숙소도 부족한 상황이다.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는 “현재 1400명이 긴급 대피소에 머무르고 있는 가운데, 산불로 집을 잃은 주민들을 위해 호텔 방 1000여 개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라하이나 카운티 관리들은 “아직도 피난처가 필요한 사람이 450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그린뉴딜네트워크의 카니엘라 잉은 소셜미디어에 “생존자들을 위한 호텔 방이 필요하다”며 “마우이 휴가 계획을 취소하고 지역사회에 치유할 시간을 달라”고 호소했다.

현지 관리들도 “필수적인 목적이 아닌 여행객들에게는 마우이섬을 떠나고, 섬 방문 계획이 있다면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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