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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시간대별 행적' 남긴 프랑스에 충격…세계 10년 떠돌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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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뉴욕, 파리, 카이로, 타슈켄트, 룽징, 멕시코시티, 서울….

이원혁(64) 항일영상역사재단 이사장이 독립운동 유적지와 애국지사의 목소리를 영상으로 기록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누빈 도시들이다. 모두 100여년 전 순국선열의 항일 독립운동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방송사 PD 출신인 이씨가 2013년부터 국내외 20개국을 다니며 카메라에 담은 독립유적지 관련 영상이 400여건,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의 증언 영상은 150여건에 달한다.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난 그는 “사라져가는 독립운동사(史)를 기록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게 소명”이라고 말했다.

2013년부터 전 세계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직접 방문해 영상 기록으로 남긴 이씨가 10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만해 한용운과 미얀마 승려 독립운동가 우 옥다마의 독립운동을 비교하는 미얀마 현지 언론 보도를 설명하는 모습. 이영근 기자

2013년부터 전 세계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직접 방문해 영상 기록으로 남긴 이씨가 10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만해 한용운과 미얀마 승려 독립운동가 우 옥다마의 독립운동을 비교하는 미얀마 현지 언론 보도를 설명하는 모습. 이영근 기자

이씨의 부친은 1942년 학생운동을 한 혐의로 도쿄에서 3년간 복역하고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에도 참여했던 故 이정현 선생이다. 그러나 이씨는 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고등학생이 된 무렵에서야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됐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 만년을 독립운동을 찾는 데 보내게 된 것도 꼭 아버지 때문은 아니었다고 한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건 2009년 9월 프랑스 파리의 한 문서보관소를 방문했을 때라고 말했다.

무엇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나
2009년 9월 임시정부 수립 90주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의 한 문서보관소에 방문했다. 한 층 통째로 고문서가 보관된 곳이었다. 임시정부가 중국 상해(上海) 프랑스 조계지에 있었기 때문에 보관된 자료들이었다. 거기엔 프랑스 경찰과 외교관이 우리나라 임시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찰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예컨대 김구 선생이 오전 9시에 누구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이후 11시에 무엇을 했는지 등이 시간대별로 기록돼 있었다. 선진국의 기록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전공을 살려 영상으로 독립운동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준비 과정을 거쳐 2013년 재단을 설립했다.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들의 첫 정착지인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있는 정착 기념비와 고려인을 이원혁 이사장이 지난 2019년 5월 촬영하는 모습. 사진 이원혁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들의 첫 정착지인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있는 정착 기념비와 고려인을 이원혁 이사장이 지난 2019년 5월 촬영하는 모습. 사진 이원혁

10년을 바칠 만큼 독립운동이 매력적인 주제였나
유적지엔 보석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상해 ‘황포탄 의거’를 예로 들어보자. 1922년 의열단원 3명이 일본군 대장을 피습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무고한 미국 여성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독립운동 세력은 난리가 났다. 그래서 김규식 박사의 부인인 김순애 여사가 사죄의 뜻을 담은 편지와 자수를 그 여성의 남편에게 전했다. 거기에 큰 감동을 한 남편이 의열단원을 선처해달라는 편지를 일본 당국에 보냈다. 이런 이야기들이 나를 계속 잡아당긴 것 같다.  
사라지는 유적지도 많을 텐데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게 유적지다. 최근 한·중 관계가 악화한 후 폐쇄된 곳들도 안전하지 않다. 안중근 의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다롄 ‘뤼순(旅順) 감옥’ 내 안중근 전시실은 지난 4월부터, 지린 성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에 있는 ‘윤동주 시인 생가’도 지난 7월부터 폐쇄됐다. 갖가지 이유로 사라지는 곳이 많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 영상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난관도 많았을 것 같다
2018년 중국 헤이룽장에서 대전자령 전투 현장을 촬영하다 공안에 체포된 적이 있다. 대전자령 전투는 한·중 연합군이 1933년 일본군을 격파한 쾌거다. 당시 공안은 북한 지역을 촬영한다고 오해한 것 같다. 카메라도 다 빼앗기고 10명 넘는 인원에 둘러싸여 취조를 받았다. 공안에 대전자령 전투를 차분히 설명했더니 취지를 이해하고 석방해줬다. 십년감수한 기분이었다.  
독립운동가 이태준이 왕실의 주치의로 일하던 몽골 울란바토르의 옛 왕궁을 2014년 기록에 남긴 뒤 촬영팀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이원혁

독립운동가 이태준이 왕실의 주치의로 일하던 몽골 울란바토르의 옛 왕궁을 2014년 기록에 남긴 뒤 촬영팀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이원혁

작업과 활동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는지
그간 모은 사비로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재단이 보훈부에 공식 등록은 돼 있지만 그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거나 누군가로부터 기부금을 받은 적은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2018년 1월 미얀마 현지에서 만해 한용운과 미얀마 승려 독립운동가인 우 옥다마를 비교하는 세미나를 진행한 적이 있다. 두 분이 같은 해에 태어나 비슷한 항쟁 이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들의 생애와 사상, 투쟁 방식을 비교했다. 뜻밖에도 미얀마에서 큰 반향이 있었다. 독립운동과 역사를 통해 민간 외교를 한 셈이라 뿌듯한 기억이다.  
앞으로 목표는
10년간 콘텐트는 충분히 쌓았다고 생각한다. 이를 대중들에게 쉽게 알리기 위해서 VR, 웹툰 등 콘텐트로 가공해 제공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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