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반지하 세 모녀 숨진뒤…"관두겠다" 베테랑 예보관들이 찾아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유희동 기상청장이 2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서울청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유희동 기상청장이 2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서울청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기상청 근무 34년 차인 유희동(60) 기상청장에게 지난해 여름의 폭우는 가슴 아픈 경험으로 남아 있다. 서울 동작구에 시간당 141.5㎜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고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세 모녀가 숨졌다. 그 사건 이후 기상청의 예보국 주요 직책자들이 “예보직을 그만두겠다”며 그를 찾아왔다. 그들은 예보직 선배인 유 청장에게 “우리의 지식과 경험이 향후 예보에 방해가 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 청장은 지난 2일(대면)과 13일(전화) 진행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전하며 최근의 기상이변과 접하는 기상청 사람들의 애환을 토로했다. 유 청장은 “베테랑 예보관들이었다. 전날 서울에 시간당 최대 80㎜, 당일 오전 최대 100㎜의 폭우가 쏟아질 수 있다고 예보했을 때, 외부 기상 전문가들은 너무 과한 예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1년 치 강수량의 10분의 1 수준의 비가 1시간 동안 내린다는 얘기였으니까. 그런데, 다음 날 시간당 141.5㎜의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고 설명했다. 유 청장은 “예상을 초월하는 폭우와 피해 소식에 후배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어르고 달래 후배들을 다지 자리에 앉혔다. 나도 정말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예보관도 두려울 정도의 이상기후 

기상청의 ‘전쟁’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이례적인 극한호우와 폭염,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덮쳤다. 유 청장은 “이례적이고 처음 보는 양상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주요 문답.

10일 오후 대구 군위군 효령면 한 마을 진입도로가 태풍 '카눈'이 쏟아낸 호우에 유실된 모습. 사진 연합뉴스

10일 오후 대구 군위군 효령면 한 마을 진입도로가 태풍 '카눈'이 쏟아낸 호우에 유실된 모습. 사진 연합뉴스

카눈은 첫 한반도 종주 태풍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이례적이다. 올해는 장마도 정체전선이 한반도 위아래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광범위한 지역에 강한 비를 짧은 기간에 쏟아냈다. 극한 호우가 아니라 ‘극한 대우’라는 말을 써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태풍 카눈은 보통 태풍 수명의 세배를 살아남았고, 두 차례의 큰 방향 전환 끝에 한반도를 수직으로 관통할 뻔했다. 모두 이례적이고 처음 보는 양상이다.
유희동 기상청장이 2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서울청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유희동 기상청장이 2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서울청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국회에서 “현재의 예보 기술로 기후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고 했다
수퍼 컴퓨터의 수치예보 모델 분석 결과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올해 강수량을 예측하지 못했다. 7월 집중 호우 기간에만 충청권과 전라권에서 400, 500㎜의 비가 내렸는데 전 세계 최고라는 유럽 예보모델도 70~80㎜ 수준을 예측했다. 예보관들은 각국 수치예보 모델 결과를 토대로 분석을 더해 공식 예보를 내놓는다. 올해 예보관들이 해당 지역에 매일 400㎜ 수준의 강수량을 예보했다. 쉽지 않은 일을 해냈다.

“대기를 방정식으로 푸는 데는 한계 있어”

수퍼 컴퓨터도 한계가 있나
수퍼 컴퓨터는 7개의 물리 방정식으로 이뤄진 수치예보 모델로 대기를 분석하고 예측한다. 그런데 이 물리 방정식은 대기의 상황을 전부 담지 못한다. 방정식에 넣는 관측 자료는 현재와 과거의 기록으로 구성된다. 컴퓨터가 전에 없던 기상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100년이 지나도 대기를 방정식으로 완벽하게 풀어내는 예보 모델은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예보관이 중요하다
수도권과 강원도 등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아침까지 제6호 태풍 '카눈'의 영향을 받는 가운데 1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걸어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수도권과 강원도 등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아침까지 제6호 태풍 '카눈'의 영향을 받는 가운데 1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걸어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올해 기상청이 처음으로 호우주의 재난 문자를 보냈다
기상청 직원들은 인명피해가 발생하면 죄책감을 느낀다. 한계가 있다는 걸 알지만, 어떻게든 인명피해는 막고 싶다. 지난해 신림동 사건을 놓고 시뮬레이션을 수도 없이 했다. 그 결과, 현재 기술로 세 모녀가 처음 119에 신고한 시간보다 20분 먼저 대피하라는 문자를 보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문제는 어떻게 이런 전달 시스템을 구축하느냐다. 일단 다른 부서에서 인력을 끌어와 위험 상황을 안내하는 업무를 맡겼다

“상세한 예보는 우리의 꿈…장소·시간 특정 어려워”

‘기상중계청’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는데
국가의 재난 대응 체계는 기상청 특보에서 시작한다. 더 정확하고 더 상세한 예보는 우리의 꿈이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대기 상황을 분석해 어느 지역에 어느 정도의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는지를 예측하는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을 하루 전에 특정할 수는 없다. 극한 상황에선 20분이라도 일찍 경보를 할 수 있다면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기상청 ‘날씨 알리미’ 애플리케이션을 작년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안내를 고도화하려고 한다
“비 온다더니 안 온다”는 불만도 많다 
‘서울시 동작구에 비가 온다’는 예보도 상당히 상세한 예보다. 그런데 이제는 동작구 안에서도 비가 오는 곳과 오지 않는 곳이 있다. 예보를 볼 때, ‘강수 확률’을 참고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강수 확률이 50%라는 얘기는, 같은 대기 조건에서 그동안 비가 10번 중 5번 왔다는 뜻이다. 외국에선 자신만의 기준을 가진 사람들을 봤다. 강수 확률이 30%일 경우, 양복을 입으면 우산을 챙기고 운동복을 입을 때는 안 챙기는 식이다.
유희동 기상청장이 2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서울청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유희동 기상청장이 2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서울청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북태평양 고기압 연구 국제 공조 필요”

예보를 고도화하기 위한 계획은
예보 역량에 영향을 주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관측 역량은 양질의 관측 자료가 들어와야 한다. 둘째는 수치예보 모델의 고도화, 셋째는 예보관의 역량이다. 세 가지가 동반 상승해야 예보 역량이 올라간다. 관측과 수치예보 모델 고도화를 위해 북태평양 고기압 구조를 파악하는 국제 공조 연구를 추진하려고 한다. 한국 여름의 폭염·비·태풍의 진로는 모두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이게 왜 확장하는지 아직 모른다. 관련국들의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
기상청장으로서 가장 큰 어려움은?
예보관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지난 2015년 중소도시에 있던 기상대를 없애고 그 인력을 예보에 투입했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내부 이동으로 예보 인력을 늘리고 있는데, 분석해야 할 데이터는 점점 많아진다. ‘과잉 예보’에 대한 비판이 있을 땐 걱정스럽다. 오클라호마에서 공부할 때 토네이도 경보가 10번 중 3~4번 맞았다. 몇십㎞를 운전해 대피한 사람들이 토네이도가 오클라호마에 상륙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환하게 웃으며 집에 돌아가더라.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대기 상황이 관측될 때, 예보관들은 부담을 안고 예보를 낸다. 과잉 예보 비판으로 예보관들이 위축되지 않게 지켜주셨으면 좋겠다

유희동 기상청장은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졸업하고 미 오클라호마대에서 기상학 박사를 취득했다. 1990년 기상연구사로 기상청 입사해 예보상황과장, 수치모델개발과장, 예보정책과장, 기후과학국장, 기상서비스진흥국장, 관측기반국장, 예보국장, 부산지방기상청장, 기획조정관 등 예보와 기상관측, 행정직을 두루 거쳤다. 2021년 1월 기상청 차장이 됐고 지난해 6월 기상청장에 취임했다. 한국의 독자적인 수치예보 모델의 필요성을 주창해 개발을 이끌기도 했다. 2020년 한국은 독자적인 수치예보모델(KIM) 개발을 완료해 전세계서 9번째로 자체 수치예보모델을 가진 국가가 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